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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군 Nov 26. 2019

위로해줄 문장을 아직 만나지 못해서다

핸드폰 배경화면 뭘로 해두세요?

그런 생각 많이들 하지 않는가. 기왕 할 거면 제대로 완벽하게 해내고 싶은 마음.
그런 마음이 스스로를 괴롭힐 수는 있을 것 같다.
너무 자신에게 완벽함을 요구하는 것보단
하는 것에 의미를 두고 스스로를 격려해주는 게 좋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지만 자꾸 드는 생각은, 좀 더 온전한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싶다는 생각.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이해하고 나서 나에게 우선순위인 것에 초점을 맞춰 나 자신을 걸고 싶었다.
또, 나 자신의 행복의 길을 알고 그렇게 살아냄으로써 분명 좋은 영향을 주는 사람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이 길이 나의 우선순위인지 확신도 없으며, 무엇보다 지금의 나는 부족하다.
다른 이에게는 이렇게 말해 주겠지, 지금 너 자체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너 스스로를 믿으라고.
자주 느끼는 거지만 나는 나 자신에게는 너그럽지 못한 것 같다. 게다가 책임감이 달린 문제라고 보니까.
나에 대해 이해하는 것은 조급하게가 아니라 시간을 들여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고 보는데
그 과정을 온전히 거치지 못하고 임상에 나가 환자를 보게 될 것 같다.

그런 부족한 내 모습으로 잘 해낼 수 있을까.
부족한 모습이더라도 좋은 마음가짐과 감사함과 책임감을 가지고 임하는 것 또한
중요한 것이 될 수 있는 걸까.

- 2016년 5월 졸업반의 생각이 많은 저녁


물리치료과에 원서를 낼 때까지만 해도 이 직업에 대해 잘 몰랐다. 핫팩 얹어주고 전기치료해주는 영역만 알았지 중환자들의 재활을 돕고 도수치료를 하며 갖은 치료 기법을 익히는 줄은 몰랐다.


내가 근무했던 병원의 뇌손상 환자분들은 짧게는 한두 달에서 길게는 7년도 넘게 입원생활을 하는 분들이었다. 같은 질환으로 진단을 받아도 뇌손상은 워낙에 케바케의 영역이다. 그래서인지 치료를 하다 보면 내가 한 치료가 도움이 된 건지, 환자에게 안 맞는 치료인지를 즉각적으로 알아차리기가 어렵다.


그렇다 보니 고가의 교육을 주말마다 듣기도 하고 임상 경험이 많은 선생님들께 조언을 구할 일도 많다.


이런 직업인지 처음 알게 되었을 때 진지하게 휴학을 고민했다. 왜냐하면 이 직업에서의 근무시간이 가족에게서 느낀 감정의 연장선일 것 같다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교육과정 중 치매에 대해 배웠기 때문에 엄마에게 치매 판정이 필요하다는 확신을 가졌다. 그러나 엄마에겐 조현병이 있었기 때문에 치매 판정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었다. 그런 사정을 몰랐던 나는 치매센터, 여성가족부, 모자보호센터 등 곳곳에 전화하며 수소문했다.


수없이 전화를 시도한 끝에 들은 결론은 병원에 가서 코드번호를 받아야 한다는 상담사의 답이었다. 코드번호가 뭐냐고 되물었다. 병원에 가면 의사 선생님이 코드번호를 확인할 거란다. 반나절에 걸쳐 걸고 끊고를 반복했던 나는 지쳐 있었고 자세한 설명 없이 무성의한 태도에 잔뜩 화가 났다.


결국 엄마를 데리고 병원에 찾아갔다. 의사는 치매에 걸리는 여러 원인들이 있는데 그중에 엄마는 정신질환으로 인한 치매로 '코드번호'가 분류되어 있어서 확실치 않으므로 판정해 줄 수 없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그래서 조현병 약을 처방받던 병원으로 돌아가 이러한 상황을 설명했더니 도와줄 수 있는 게 없단다. 집 나가서 실종 신고할 정도면 입원해야 되는 거 아니냐며 입원하겠냐고 되묻는다. 치매의 진행을 늦출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그런 걸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을 아느냐는 나의 물음에 정말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내가 학교에서 배운 건 이게 아니었다. 전문가는 환자를 돕고 필요하면 다른 전문가를 추천해줘야 한다고 배웠다. 그 날 내가 만난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무책임하게만 느껴졌다.


그런 기억을 잊지 못하는 내게 물리치료사가 된다는 건 무겁게만 느껴졌다. 병원비에다 간병비까지 하면 그 부담이 상당하다는 것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에 더더욱이나 직업의식 없이 이 직업으로 돈을 벌고 싶지 않았다.


모든 직업은 책임이 뒤따른다. 하지만 누군가의 생계에 영향을 미칠 만큼이나 큰돈과 건강이 걸려있는 문제에 개입하고 싶지 않았다. 가족 안에서 보호자 역할이 싫어 뛰쳐나왔는데 다시 걸어 들어가고 있었다.


휴학에 실패하고 핸들을 돌리지 못한 나는 어느 날 소설《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읽게 되었다.


읽고 난 후 놀랍게도 이 직업으로 일해보겠다는 용기가 생겼다. 책은 나에게 말하고 있었다. 그저 노력하고 진심이면 충분하다고. 내가 한 노력이 설령 그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더라도 중요한 건 진심으로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이라고. 그 사람의 잠재력이 그를 좋은 방향으로 이끌어 갈 거라고. 그렇게 내게 말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의 깊은 고민의 시간마다 책이 있었다.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사람의 말에 상처 받을 때면 책 《미움받을 용기》가 있었고 나 자신에 대해 귀 기울여야 할 땐 《오제은 교수의 자기 사랑 노트》에 도움을 받았고 번아웃으로 힘들 땐 《최고의 휴식》을 통해 명상을 알게 되었으며《새는 날아가면서 뒤돌아 보지 않는다》, 《좋은지 나쁜지 누가 아는가》,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 《여덟 단어》 등 모든 순간에 책이 있었다.


어디서 들은 문장, <내 이름은 김삼순> 명대사, <여덟 단어>에서 알게 된 파우스트의 명대사까지 오래 기억하고 싶다.


나를 살아가게 하는 문장들이 차곡차곡 쌓였다. 책 속의 문장은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대신 나의 관점을 바꿔 놓았고 더 이상 괴롭지 않게 도와주었다. 그렇게 글이 주는 힘을 믿게 되었다.


내가 힘든 건 나를 위로해줄 문장을 아직 만나지 못해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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