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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군 Nov 28. 2019

모순이라는 굴레

망각은 꼰대를 부른다

"헤어졌던 사람들이 다시 만날 확률이 82%래. 근데 그렇게 다시 만나도 그중에서 잘되는 사람들은 3% 밖에 안된대. 나머지 97%는 다시 헤어지는 거야. 처음에 헤어졌던 거랑 똑같은 이유로."
그녀의 말에 헤어진 남자 친구가 답한다.

"너 그거 알아? 로또 있잖아. 당첨될 확률이 814만 분의 1 이래. 근데 그게 매주 일등이 몇 명씩 그렇게 나오잖아. 814만 분의 1인데. 그러니까 3%면 되게 큰 숫자야. 엄청나게 큰 거야."

- 영화 <연애의 온도> 중에서


그러니까. 왜 영화 명대사를 가져왔냐면. 아주 인상 깊은 부분 때문이다. 다시 만나서 잘될 확률이 낮은지 로또 당첨 가능성 보단 높은지가 흥미로웠다기 보단. 무엇보다도 헤어지는 이유가 똑같다는 것.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다시 만난 연인은 '이렇게 좋은데 우리 왜 헤어졌었지?' 하고 잊어버린다. 그리고 반복하고서야 기억이 되살아난다. 아 이래서 우리가 그만 만나기로 한 거였지.


그런데 어쩐지 저 망각은 연애에서만 해당하는 것은 아니 듯하다. 우리가 부모를 닮아가거나 그렇게도 욕하던 상사와 같은 꼰대 짓을 하고서야 흠칫 기억이 되살아난다.


그도 그럴 것이 보고 배운 그대로를 반복하는 건 가장 쉬운 방법이다. 이상적인 롤모델이 없었다면 더더욱. 나는 똑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노라 다짐했다면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내 안의 모순을 늘 염두에 둬야 한다. 그만큼 악습이 가장 쉬운 선택지임은 틀림이 없다.


그러다 때론 그 사람과 닮은 나의 모습을 발견하고서야 그를 이해하게 된다. 아 그래서 나한테 그랬구나. 여기서부터가 어렵다. 그가 왜 그랬는지 마침내 이해가 되었지만 치를 떨었던 지난 내 모습을 밀어내느냐 당기느냐 하는 문제가 남았다.


쉬운 선택지를 뿌리치지 못하면 예전의 나와 꼭 닮은 자녀가, 후배가 꼰대라며 치를 떠는 광경을 보게 된다. 그럼 말하겠지. 너도 내 나이 되어봐. 너도 나만큼 일해보라구.


꼰대 문화는 고대 문명 때부터 전해오는 전통이다. 기원전 1700년 경 수메르 점토판에도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 버릇이 없다고 새겨져있었다 한다. 그 정도면 전통보다 인간의 본능으로 보아야 할까.


결국 익숙한 것을 떼어내려면 악습을 떼어낸 내 모습이 익숙해질 때까진 모순을 지켜봐야 한다.


뭘 몰라서 그러는 거다. 아직 철이 안 들었다. 버릇이 없다. 사춘기인가 봐. 이런 말들로 서로 간의 혼선을 손쉽고 그럴듯하게 정리한다.


공부를 제외한 영역에서 비상한 내 기억력은 어릴 적 들었던 생각을 여태 간직하는 데 성공했다. 한 때 이런 생각을 했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 왜 어른은 아이의 의사와 상관없이 반말하지? 나는 그러지 말아야지. 그리고 어른이 된 나는 약국에서 일을 하게 됐다. 소아과에서 오는 손님들이 많았기 때문에 올해는 살면서 가장 많은 아이들을 보는 해구나 생각했다.


웬걸. 약사는 아이들에게 말을 높이는 내가 불친절하다며 지적했다. 그녀는 아이의 엄마가 없는 틈을 타 아이가 어디 유치원에 무슨 반이며 어디 아카데미를 다니는지 호구조사를 시작했다. 아이가 약을 들고 있으면 엄마가 돌아오기 전에 약을 먹여주기까지 했다. 마침내 돌아오면 호구 조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아이를 칭찬하기 시작했다.


요즘엔 이미지가 중요해서 이런 서비스를 해야 한다나. 내 어린 시절을 곱씹어 봐도 기억 속에 지금까지 이런 서비스는 없었다. 이것은 친절인가 가식인가. 무튼 일을 잘하지만 아이들에게 불친절(?)하다는 이유로 잘렸다.


예상치 못한 권고사직 첫 경험에 꽤 오랫동안 머릿속에 남은 질문이었다. 친절은 받는 사람 기준이 아니었나. 입사 때부터 그리 교육받았다면 모르겠는데 그만 나오라는 통보를 듣고서야 직장의 방침을 알게 되었다.


아아. 내 생각은 전통 속에서 소수의 의견에 불과하구나. 하지만 3%의 가능성으로 이 문화가 청산되는 날도 오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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