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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군 Nov 29. 2019

에필로그_당신의 인생을 허락받지 마세요

저의 10대 동안 전담 상담사는 인터넷 질문 등록 서비스였어요. 답답한 마음을 털어내기도 하고 다른 사람의 질문을 읽어보며 공감하곤 했지요.


어떻게 그들의 마음을 다 헤아리겠냐만은 저 역시도 모든 걸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찾아오곤 했으니 눈길이 갔습니다. 심각한 내용의 글을 보면 몇 년 전 글인데도 지금은 어떤지 안 좋은 상황에서 벗어났는지 걱정이 들곤 했어요.


지금도 인터넷과 유튜브 댓글난 곳곳에 많은 이들의 고민이 흔적으로 남아 있지요.


언제부턴가 고민이 생기면 비슷한 경험을 한 사람의 책을 찾아보는 습관이 생겼어요. 살아가면서 갖게 되는 질문들에 답해줄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친구들은 고민이 있으면 엄마에게 털어놓곤 하던데 저는 그럴 상황이 아니다 보니 제가 유독 질문이 많은 건가 생각했습니다.


아픈 가족이 있는데 제가 하고 싶은 선택을 해도 되는 건지 그게 효에 어긋나는 건지 억지로 효도하는 게 후회 안 하는 방법인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어요. 하지만 그 문제에 대한 답은 책에서도 인터넷에서도 금방 찾아내기가 어려웠답니다.


신간 코너에서 치매 어머니를 둔 작가님의 책을 집어 들고서 많은 게 변화했어요. 그 어디에서도 치매 부모를 둔 자식의 마음을 대변해주는 글은 없었거든요. 그녀가 겪은 경험과 생각들이 참으로 공감이 되었고 위로가 되었어요. 그리고 저자 강연회를 한다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일을 하면서도 온 관심이 저자 강연회로 쏠리더군요. 다행히 연차를 내고 참석했습니다. 그곳에 가서 저와 비슷한 경험을 한 분께 여쭤보고 싶었어요. 저희 집 상황을 설명드리고 제가 어머니를 위해서 뭘 해드릴 수 있겠냐고 물었습니다. 사실 저는 아직 23살이었고 가족을 위해 무언가를 하는 것보단 저를 위해서 하고 싶은 것들이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속내는 질문하는 동안 감춰 두었어요.


그런데 정말 예기치 않게도 제가 원하는 것들을 하라는 응원을 받았습니다. 아직 너무 젊고 어머니 또한 좋아하는 일을 따라가는 것을 원하실 거라면서요. 강연회가 마치고 같은 객석에 앉아있던 분들도 저에게 다가와 젖은 눈으로 같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제 인생은 제가 결정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 조언을 허락 삼아 듣기 위해 그곳까지 갔나 봅니다.


전 가족으로부터의 책임감을 참 미워했지만 내내 굴복해왔어요. 대구를 떠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고 휴학을 고집할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고 원하는 일로 갈 수 있었지만 그러지 못했어요. 저에게 놓인 환경은 가족 때문이기도 했지만 저의 용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들어서야 의무감으로 했던 선택들을 끊어냈어요. 제가 가족에게 처한 것들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스스로 책임을 무겁게 짊어질 필요가 없다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어요.


또한 거리를 내어주는 만큼 그들은 자생할 힘을 기를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 오랜 시간 먼 길 돌아 찾은 결론을 꺼내보고 싶었습니다.


어떤 이에겐 무엇보다 중요한 게 가족일 수도 있지만 의무감으로 함께하는 시간 끝엔 알맹이가 빈 것 같은 공허함을 느껴요. 그러니 책임에 너무 애쓰지 말라고 할 수 있는 만큼 하라고 토닥여주고 싶어요.


저와 생각이 닮은 누군가에게 이 글이 닿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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