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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군 Nov 27. 2019

부모의 빈자리에도 잘 크는 이유

일찍 자립할수록 하고 싶은 게 뭔지 알게 된다

"제가 무엇을 집느냐에 따라서 많은 게 달라지거든요? 아주 많이요.
지금까지 초콜릿은 좋은 것도 있었고 나쁜 것도 있었지만
그 상자는 제 거고 어차피 제가 다 먹어야 하는 거니까요.
언제 어느 걸 먹느냐 그 차이뿐이겠죠."

_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 중에서



상황이 열악할 때면 자주 생각했다. 어떤 것도 무의미한 것은 없다고. 이번엔 쓴 초콜릿 상자를 열었지만 그만큼 달콤한 초콜릿 상자가 더 많이 남았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낙관하면서 버티니까 오히려 그렇게 쌓인 시간들이 기회를 물어왔다. 쓴 초콜릿도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돌에 걸려 넘어진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금덩이였던 셈이다.


저자 에크하르트 톨레의 《삶으로 다시 떠오르기》를 읽으면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접했다. 기억나는 대로 적어보자면 대략 이렇다.


한 사내가 교통사고로 입원을 하자 지인들이 병문안을 왔다. 왜 자네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냐며 안타까워했다. 그런데 입원해 있는 동안 사내의 집을 큰 태풍이 휩쓸어 갔다. 다시 찾아온 지인들은 교통사고가 난 덕분에 목숨을 건졌다며 다행이라 안도했다. 하지만 사내는 사고가 나고 태풍이 지나갔을 때도 동요하지 않았다.


이처럼 당장의 불행이라 여겼던 일이 시간이 지나서도 여전한 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일어난 일에 대해서 잘된 일인가 잘못된 일인가 하는 판단은 무용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우리에게 닥친 불행이나 결핍들은 이겨낼 수만 있다면 나에게 있어 중요한 게 무엇인지를 알려주곤 한다.


엄마의 빈자리로 인해 어떤 문제가 생길 때마다 직접 해결해야 했다. 여자아이가 성장하면서 겪는 변화라던가 진로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 주위에 물어보거나 전화해보거나 책을 찾아보는 등 정보를 수집하는 능력이 길러졌다. 그래서 오히려 낯가림이 많이 사라졌고 같은 또래가 아닌 다양한 사람들과 대화를 할 기회가 많아지면서 그런 것들을 즐기게 되었다.


그런 성향이 종잡을 수 없는 나의 감정을 이해하기 위해 심리, 번아웃, 명상, 뇌과학 등 다양한 책들을 찾아 읽게 했다. 10대에는 심리상담에 대해 관심이 없었지만 어른들과 대화가 더 잘 통하고 애늙은이 기질이 있어서인지 종종 나에게 고민상담을 요청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그런데 20대가 되어보니 그동안 알게 모르게 많은 상담을 받아온 걸 알게 되었다. 선생님께 고민을 털어놓은 것, 비밀로 하고 싶으면 타로점을 보러 갔던 것, 친구와의 대화 속에서도 상담이 있었다.


여태 상담사를 고민을 해결해주는 사람이라고 이해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결국 선택하고 행동하는 건 내담자였다. 그 과정에서 지치지 않고 먼 길 헤매지 않게 필요한 질문들을 던져주는 사람이 상담자라는 게 내 결론이었다.


어떤 진지한 고민들은 혼자서 고민하면 합리화에 빠지기 쉬웠지만 상담사는 그것을 막기 위해 객관적으로 판단하도록 도와주었다. 그대로 인식하고 결론을 내릴 수 있게 도와주는 존재였다.


엄마의 치매는 또 다른 치매 가족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가족 안에서 기댈 곳이 없었던 나의 경험으로 가족 밖에서라도 존중하고 믿어주는 한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러자 힘든 시간을 겪고 있는 아이들에게 그런 존재가 되어주고 싶다는 사명감을 품게 되었다. 나에게 있어 더 중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알게 된 것이다.


처음부터 하고 싶은 꿈이 명확하면 얼마나 좋을까.


면접관이 왜 파티시에가 되었냐는 물음에 삼순이는 도서관에서 디저트에 관한 책을 집어 들었기 때문이라고 답한다. 아마 병아리 감별에 관한 책을 집었다면 병아리 감별사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면서.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서점에 가서 나의 눈에 들어온 책은 한의학에 관한 책이었다. 하지만 한자가 어려우니 양의학이 좋겠다고 결정했다.


그런데 지금 돌아보니 내 방 책장엔 온통 삶의 고민들에 관한 책들이다. 리포터가 되고 싶었으나 여태 읽지 않은 책 한 권뿐. 온통 성찰에 관한 책들이다.


내 책장이 뭘 원하는지 말해주고 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독서를 좀 더 일찍 시작할걸 그랬나 보다.


 어쩌면 뭘 좋아하는지 알기 위해 여러 가지 시행착오를 겪어 봐야 하는 건 순간순간 마음이 가는 일을 하다 보면 결핍이 중요한 것들을 만들어주기 때문은 아닐까.


부모님의 역할을 떠나 아이를 믿고 존중하는 단 한 사람만 있다면 오히려 그 결핍은 삶의 의미를 가져다주는 것 같다.


_ 사진 영화 <포레스트 검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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