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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군 Nov 20. 2019

내 사람은 예기치 못한 곳에 있다

힘든 시간을 좋은 추억으로 기억하는 법  (사진_<세 얼간이>)

누군가 당신에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없다. 모두가 원하지 않는 일들을 하며 살아간다.’고 말하며 앞을 가로막는다면 너무 서운해하지 않아도 된다. 그 말은 아마 자기 자신에게 해온 말일 것이다.


소설《연금술사》에서 주인공 산티아고는 보물을 찾아서 여행을 떠난다. 여정에서 만난 이들은 그의 계획을 듣고 저마다 다른 반응을 보인다. 마치 휴학을 해도 될지, 퇴사를 해도 될지 고민하는 우리의 주변 반응과도 닮았다. 난 그들이 산티아고에게 하는 말이 곧 그들 자신에게 하는 말임을 느꼈다.


보물 같은 건 없다며 그만두라는 이들은 보물을 찾다 포기한 사람, 끝내 찾지 못했던 경험에 따라 충고하는 사람들이었다. 응원해주는 이들은 자신 또한 긍정적인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었다.


원하는 것들을 경험한 사람들은 힘듦이 있어도 감수하겠다면 경험해보라고 조언한다. 하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히거나 저마다의 이유로 희망을 꺾은 이들은 겪은 그대로 조언한다. 현실적으로 생각하라면서.

     

 사실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답이란 게 있을까. 저마다 이미 원하는 답이 정해져 있을 뿐 누군가에게 상담을 청하고 타로점을 보고 책을 읽는 것은 답에 힘을 싣고 싶어서일 것이다.


이미 주변에는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득한데 ‘그래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이 몇 있어줘도 좋지 않을까. 나에게 감사하게도 그리 말해주신 분들이 있었다. 현실적으론 다들 만류할 것임을 알면서도 꿈을 지지하고 응원해주셨다. 어쩌면 그것이 내 형편을 낙담하지 않고 버티는 힘이란 것을 아신 게 아녔을까.


고등학생 때였다. 중학생 때 학교를 제법 빼먹은 이력 때문에 진학 선택에 자유가 없었던 나는 원하지 않던 공업고등학교를 가게 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진입장벽이 낮은 과에 다녔다.


2학년 담임선생님을 뵙기 전까지 학교에 대해 비관적이었다. 그 당시 대구에는 공고 다니는 학생에 대한 안 좋은 인식이 있기도 했고 일부 선생님들조차 하등하게 여겼다. 3학년 담임선생님의 경우 공장 취직이 아닌 대학 진학을 하려면 모의고사 성적표를 요구했고 쓴소리와 따가운 눈초리를 받아야 했다.

     

물리치료과에 들어가 첫 학기에 성적을 받고 놀랐다. 대단히 잘했다는 것이 아니라 국가 장학금을 받는 데 전혀 문제가 없었거니와, 고등학생 내내 우려했던 걱정들이 무색했기 때문이다.


내 모교의 일부 선생님들이 학생들을 얼마나 하등하게 인식하고 그런 언행을 일삼았는지 알 턱이 없는 대학 동기들에게 난 그저 같은 수업을 듣는 동기였다. 오히려 공부를 잘한다고 보여서 자주 발표자로 세워진 덕에 발표 울렁증이 완치되었다.


그 당시 모교는 자존감 깎이기 좋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그곳에 다녔기에 좋은 스승과 친구를 만날 수 있었다.


필요한 건 원하는 것을 이루기에 얼마나 지금 현실이 보잘것없는지 충고를 일삼는 사람이 아니라 뜻을 존중해주고 가만히 들어주며 진심 어린 조언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분이 그러했다.

 

얼마 전 모교에 대한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이사장의 비리와 갑질에 대한 보도였다.

그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교사 임용 대가로 금품을 받고, 교사를 왕따로 지목하여 다른 교사들과 말을 섞지 못하게 한다거나 여교사들에게 술 시중을 강요했으며 그것도 모자라 임신 포기각서를 작성하게 하고, 장애 판정을 받은 직원에게 급식 셔틀을 시키는 등 온갖 갑질과 비리를 일삼은 것이 드러났다.

그는 ‘임원취임 승인 취소’ 처분을 받았다. 하지만 처분을 무시하고 그의 후임을 결정하는 이사회 현장에도 상석으로 참석했다는 것이다.     


내 모교는 참 엉망이었구나. 선생님들이 낙관하기엔 근로 환경이 척박했다는 것을 알았다.     

나의 스승님 또한 왕따 지목을 당한 교사였다.


몇 년 전 스승의 날 찾아뵜을 때 해주신 말씀이 불현듯 떠올랐다.

"시키지 않은 것까지 너를 희생하면서 일하지 말고 되도록 힘든 길로 가지 말았으면 좋겠다.”


나는 사람들이 힘들다고 말하는 것들도 들어선 모르는 것이고 직접 겪어봐야 아는 거라 생각한다고 답했지만 굳이 힘들다는 걸 겪어서 알기엔 괴롭지 않겠느냐 답하셨다.


그땐 그저 어른들이 당신이 겪은 힘듦을 똑같이 겪지 않았음 하는 마음에 하신 조언이라 여겼다. 그런데 기사를 읽고 보니 아주 오랜 시간 동안 괴로운 시간 한가운데를 지나고 계셨겠구나 싶은 생각에 마음이 아팠다. 그리고 참으로 감사했다.


그런 힘든 상황에서도 제자들을 아끼는 마음이 한결같은 분이셨다. 생계 문제로 꿈에서 한 걸음 멀어졌을 때도 지금은 잠시 멀어져도 포기하지 말고 꿈을 기억하라 하셨다. 어떻게 보면 수치스럽고 나의 흠이라고 기억할 모교였지만 그 학교에 가서 참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오직 사람 때문이다.


내 희망을 꺼트리지 않고 더 밝게 지낼 수 있었던 건 스승님 덕이었는데.

스승님은 어떤 힘이 그 시간 속에서 낙담하지 않고 버티게 해 준 걸까. 어떤 희망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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