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at. 정신 건강에 돈 아끼지 말아요)
유년시절 나는 알게 모르게 두렵고 걱정스러웠다.
“불행도 유전이면 어떡하지?”
엄마 나이가 되면 나 또한 우울증에 걸리고 환청이 보이는 게 아닐까 두려웠다.
날 아빠에게 남겨두고 병원으로 간 엄마가 그때는 자주 서운했다. 그럴 때면 내가 엄마와 함께하고 싶은 것들을 미래의 내 자식과 함께하는 상상을 했다.
너무 일찍 엄마와 떨어져서일까. 그동안의 시간들을 더 진하게 기억하게 되었다.
추운 날이면 엄마가 식혀준 자판기 율무차. 엄마와 나누어 꼈던 이어폰에서 들려오는 동물원 2집 앨범 수록곡들. ‘네가 좀 더 크면’으로 시작하는 나와 함께 하기로 했던 것들. 국물을 뜨면 엄마가 꼭 김밥을 올려줬던 가락국수 집까지. 그 모든 기억들이 자주 꺼내보기 위해 더 선명해졌다.
어린 나의 눈에는 엄마의 마음이 아픈지 전혀 몰랐다. 나에겐 그저 한없이 따뜻했던 엄마는 오랜 시간을 외로워했나 보다.
지금은 안다. 엄마에게 그때 필요했던 것들이 무엇인지. 그녀의 이야기를 묵묵히 들어줄 사람. 그녀가 마음속 응어리를 편하게 털어놓도록 마음을 열어줄 사람. 있는 그대로 존중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
하지만 안다. 내리는 비처럼 내가 그치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다만 나에게 그리고 나의 소중한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어 그 배움을 헛되게 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이 아픈 건 게임을 하거나 기분전환을 한다고 해서 치유되는 것이 아니다.
우울한 감정을 부정하거나 외면하는 것은 방 한가운데 상한 음식을 두고 지내는 것과 같다. 처음엔 물기를 빼고 수거함에 넣어 내보내면 해결되지만 본체만체 내버려 두면 공간이 오염되고 나중엔 들어가기조차 두려워진다.
처음엔 가벼운 우울감이 나중엔 잦은 짜증이 되고 어느 날엔 슬프다는 생각 없이도 눈물이 흐른다. 어쩌면 화가 나거나 병을 얻는 것은 우울한 감정을 거듭 외면하면서 무뎌진 우리에게 몸이 보내는 신호 일지도 모른다.
보다 못한 몸이 ‘나 좀 챙겨줄래?’하고 무시하지 못하게끔 점점 더 센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유전질환은 미리 대비하기 위해 검사를 한다. 조기발견과 예방을 위해서다. 감정도 마찬가지여야 한다. 하물며 범죄 피해자와 사고로 장애를 입은 분들은 어떠한가. 그들의 마음 상태가 과연 재판 결과와 재활치료로 인해 온전히 씻겨 내려갈까.
물리치료사로 일하면서 크게 들었던 의문은 ‘갑자기 걷지 못하게 되거나 신체의 일부를 잃은 분들에게 심리상담이 어째서 필수가 아닌가’였다. 전공과목 이수 과정에서 재활 심리학을 배웠다. 하지만 그 교육을 들었다고 해서 매일 30분씩 마주하여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누는 편인 물리치료사가 능숙하게 심리치료를 해낼 수 있을까?
운동을 해서 기분이 좋아질 수 있지만 심리적인 이유로 운동 자체를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표한 <정신질환 실태조사, 2016>에 따르면 캐나다 외 3개국에서 1년 중 정신건강서비스 이용률은 38.9%에서 46.5% 사이이다. 그에 비해 우리나라는 1년 단위가 아닌 평생 동안 22.2%의 이용률을 보인다고 한다.
어떤 것들이 우리나라에서 진입장벽을 구성하고 있을까. 대표적인 이유는 진료기록과 금전적인 문제가 아닐까.
나의 경험이 혹시 독자들에게 도움이 될까 싶어 공유하려 한다.
필자는 14살 때 어른들의 우려로 인해 정신과 진료를 받고 몇 개월 정도 약을 처방받았다. 하지만 그 진료기록은 지금까지 살아오는데 단 한 번도 걸림돌이 된 적이 없었다.
덧붙여서 감상평을 남기자면 약을 복용함으로 인해 우울한 장막이 걷히는 느낌은 있었다. 기분이 한결 밝아짐을 느꼈다. 몇 개월 후 더 이상 약이 필요하지 않다는 진단을 받았다.
그렇지만 약 복용은 호르몬 역할을 한 것이고 지금 생각해보면 상담 치료가 더 효과적이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책 《우울할 땐 뇌과학》을 읽고 좀 더 확신했다. 나에게 필요했던 건 기분이 좋아지는 호르몬 공급 보단 상담을 통해 나의 관점을 건강하게 변화시키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상담을 받으려면 상담카페를 이용하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됐다. 여자들에겐 심리센터 보다 타로 집이 익숙할 것이다. 하지만 단언컨대 마음을 치유하는 데 있어 타로카드의 심리치유 기능보다 상담사의 도움을 받는 것이 적합하다고 생각한다.
우울함을 해소시키기 위해 시도한 것들이 지속적인 효과가 없다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렇게 나열해보니 나는 정신과와 제법 친한 것 같다. 그리고 이게 '불행도 유전이면 어떡하나'에 대한 내 나름대로의 결론이다.
미리 발견하고 예방할 수 있는 것들은 들여다볼 것이고 내 의지대로 그치게 할 수 없는 비라면 담담히 겪어낼 것이다. 내 마음을 잘 들여다본다면 오늘의 불행은 어느새 배움이 되어 있을 테니까.
사진_영화 <인사이드 아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