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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효군 Nov 22. 2019

아빠를 그만 미워하기로 했다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나에게 있어 아버지와의 가장 첫 기억은 5살 정도의 나이였다.

난 그 기억을 '멜론 사건'이라고 부른다. 그 날 아버지는 멜론을 사 오셨다.


어린 나는 태어나서 처음 먹어보는 멜론을 앞에 두고 한껏 들떠 있었다.

"멜론 멜론~"거리며 거실을 뽈뽈 돌아다녔다. 기분이 좋아진 나는 불현듯 장난칠 생각에 아버지를 주시했다.

"아빠 멜롱!!"


나름의 라임 개그였는데 반응이 심각했다. 아버지는 바닥에 있던 빗자루를 쥐고 바닥을 열심히 때리기 시작했다.


 "아빠한테 메롱이 뭐꼬, 메롱이! 혼나야겠다 이리 안 오나?!"


고성과 함께 바닥을 더 적극적으로 때리며 말씀하셨다.

난 몹시 기함하여 가스불 앞에 선 엄마의 다리를 붙들었다.


저게 아버지와의 가장 첫 추억이다. 저 후로 장난은 물론이고 라임 개그를 시도하지 않았다.

나에겐 오랫동안 트라우마였지만 당사자는 물론 기억하지 못한다.


이 얘기를 왜 하는가. 아버지와의 관계를 회복하는 데 있어 자신에게 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에 기억하는 추억들은 어떤 것이었는지 말이다.


책《아들러에게 인간관계를 묻다》에서는 상대방이 나를 좋아해 주지 않으면 그 사람을 싫어하게 된다는 말을 한다. 대부분 가정에서 서로 미워하는 가족들은 처음엔 자신을 좋아해 줬으면 하는데 자신을 미워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상처 받고 싶지 않아 싫어하기로 마음을 먹는다고 한다.


나 역시 아버지와의 사이엔 존중과 신뢰가 없다고 여겼다. 간단한 문젯거리도 은행 직원이나 시장에서 과일 파는 아주머니의 말을 더 신뢰했기 때문이다. 엄마와 나의 발언이 제일 영향력이 낮은 사회였다.


멜론 사건만 보았을 땐 여느 집과 다름없는 '투닥투닥 화목한 가정이구나'라고 오해할 수 있다. 저 일이 서운했다고 이야기하면 듣는 이들은 하나같이 웃었다. 나 역시 친구 가족 얘기에 웃는 것처럼 말이다.


나 자체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느낌, 어려서부터 보호자 역할과 책임을 기대받은 것에 대한 스트레스 때문에 감정적으로 예민해져 갔고. 아버지에 대한 분노는 극에 달했다. 더 이상 그 간극을 좁힐 수 없을 것만 같았다. 나 자신을 위해 용서해야 한다는 말도 좀처럼 실행하기 어려웠다.


 부모와 자주 싸우는 상태라면, 섣불리 관계를 회복하려 시도할 필요는 없다. 먼저 예민해져 있는 자신의 감정부터 돌볼 필요가 있다. 쉽게 자주 화가 날 정도라면 이미 갈등이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는 의미이다. 그 감정이 고요해지기 전까진 관계 회복이 어렵다.


게다가 그 감정은 우리를 예민하게 만들고 가족뿐만 아니라 모든 인간관계와 상황에서도 불쑥 튀어나와 힘들게 한다.


미운 마음이 아버지와의 사이에서만 해당하는 것인지 자신은 가족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아왔는지 곰곰이 생각해본다. 필자의 경우엔 늘 책임감이 문제였다.


아버지가 나에게 하는 말들이 책임을 모두 나에게 돌리는 것 같아 억울하고 미웠다. 처음엔 내가 잘못했나 싶어 주눅이 들었는데 나도 그를 미워하면서부터 내가 더 화를 내게 되었다. 이 같은 패턴은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별생각 없이 한 말들에도 내 나름대로 억울했고 집 밖에서도 보호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었다. 하지만 처음엔 화날만하니까 화난 것이지 가족 안에서의 감정과 같은 이유에서 만들어진 감정임을 줄곧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감정에 대해 배운 적이 없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서 주인공 라일리가 겪은 갈등처럼 슬프거나 화가 나는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하는 것이 건강한 방법인지 알지 못한다. 울면 혼나기만 해 봤지 시원하게 울어버리고 싶어도 공간이 마땅치 않다.


그건 부모님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의 아버지들은 태어나서 아버지를 처음 해보는 것이고 그들 또한 슬플 때, 화가 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한 세대이다.


흔히 남자는 울면 안 된다는 지금으로썬 부당한 사회적 인식에 압박을 받아왔고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에 대한 중요성이 언급 조차 없었던 세대이다.


그래서 방법이 서툰 것이지 우리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진심으로 딸과 아들을 사랑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말들이 이미 사이가 틀어진 자녀들에게는 와 닿지 않고 거부감마저 느껴질 수 있다.


나 또한 제일 듣기 싫었던 말이 '그래도 아버지 너 생각 많이 하셔, 아버지가 불쌍하지 않니?' 같은 말들이었다. 그들이 힘들다고 해서 나의 힘듦이 사라지는 게 아니니까 말이다. 자동 반사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말들이었기에 마음을 연다는 게 도저히 쉽지가 않았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영화를 보고 아버지를 그만 미워하기로 했다. 영화가 만들어진 목적과는 다르겠지만 말이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을 배경으로 한 영화 《택시운전사》 를 보러 극장에 간 날, 아버지에 대한 미움을 그만두었고 그를 찾아가 내가 상처 줬던 말들을 사과했다.


어쩐지 나는 주인공 김사복 씨에게 아버지의 이미지가 투영됐기 때문이다.


그는 광주에서 일어나는 심각한 상황에 대해서 전혀 알지 못하는 서울의 택시운전사였다. 먹고살기에 급급해 택시 장사에만 혈안이었다. 그러던 그가 광주에서 목숨을 잃은 무고한 사람들을 보고 변화한다.


오직 가족들을 먹여 살리려고 열심히 사는 게 최선이라 여기며 살아오신 아버지의 모습이 김사복 씨에게 보였다. 자신의 눈을 가리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던 것처럼 내 아버지 또한 그러셨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김사복 씨가 광주 시민들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돌아가는 장면에서 먹먹했다.


영화의 막이 내리자, 나는 문득 아무것도 몰랐던 아버지를 죄인 취급했던 게 생각났다. 내가 상처 받지 않기 위해 더 날이 선 말들로 그의 말문을 막으려 했던 시간들이 떠올랐다.


오늘이 아니면 내가 줬을 상처에 대해 사과하지 못할 것 같아 울면서 집으로 갔다.

막상 현관 앞에 오니, 어김없이 하려던 말이 쏙 들어가 버려 한참을 우물쭈물거렸다. 용기 내 아버지께 드릴 말이 있다고 했다.


'아빠 이때까지 심하게 말해서 죄송해요, 아빠도 상황이 힘든데 열심히 사셨던 것뿐인데 제가 그걸 몰라주고 너무 나쁜 말들을 했던 것 같아요." 하며 용서를 구했다.

아버지는 조금 당황한 눈치셨다. 떨떠름해하며 안아주시고 '그래 알겠다' 하셨다.


 그 일을 계기로 크게 변화하진 않았다. 여전히 효녀 노릇하길 요구받으면 염증을 느낀다. 그렇지만 감정이 동요하는 순간마다 내 마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이전까진 나 조차도 화난 내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지만 이젠 아니었다.

불쑥 화가 나면 '지금 내 마음이 억울하구나. 하지만 상대방의 감정은 그 사람만의 문제야. 네가 그 감정에 대해 해결해주려고 할 필요 없어.'하고 나에게 말해줄 수 있게 되었다.


또한 마냥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게 되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열심히 사셨을 뿐 시대와 교육의 피해자가 아닐까 생각한다.


중요한 건 미워할 필요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부모님이 나에게 무언가 기대하지 않길 바라듯이 두 분이 내가 원하는 대로 바뀌는 것 또한 기대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우린 손을 잡아야 해.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눈을 맞춰야 해. 가끔은 너무 익숙해져 버린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_'백예린 -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 가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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