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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Oct 27. 2019

미국의 10월은 한 달 내내 할로윈

미국과 미국 학교의 Halloween 풍경 이야기


학생들이나 학교의 교직원들에게 제일 지루하고 무료한 달이 3월과 10월이다.

다른 달에는 여러 가지 국경일이나 명절이 있어 매일 등하교하는 무료한 삶에 잠깐의 달콤한 휴식을 맛볼 수 있는 휴일이 있는데 3월과 10월에는 공휴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3월과 10월은 다른 달보다 유난히 길고 지루하게 느껴진다.

그러나 같은 한 달인데도 다른 달에 비해 두 배쯤 길게 느껴지는 10월을 견디게 해 주고, 지루한 10월을 역동적으로 만들어 주는 특별한 날이 있다.

바로 10월의 마지막 날인 Halloween이다.


한국에서도 미국에 와서도 할로윈이 시작된 배경이 그다지 유쾌하게 느껴지지 않고 음산하고 무섭게까지 느껴지는 장식들도 탐탁지 않아서 미국이들의 유난스러운 할로윈 장식과 할로윈 이벤트에 불편한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미국에서 사는 시간이 길어지고 미국 학교에서 일하게 되면서 미국인들에게 특별한 날인 할로윈에 보여주는 그들의 문화와 할로윈을 즐기는 방식에 익숙해지고 있다.




10월이 시작되면 집집마다 할로윈 장식을 시작한다.

할로윈 장식으로 시작된 화려한 조명은 할로윈이 지난 후에는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이어진다.




10월이 시작되자 3번 방을 비롯하여 우리 학교 곳곳이 할로윈 분위기로 바뀌기 시작하였다.

학습지에도 할로윈 캐릭터인 호박이나 호박으로 만드는 Jack-O’-Lantern, 징그럽다는 이유 때문인지 할로윈 대표 동물이 된 박쥐나 거미, 그리고 할로윈 주인공들인 마녀와 유령, 해골 등이 등장한다.

아이들 미술 작품 주제도 면봉으로 해골 만들기, 호박에 스티커를 붙이거나 그림을 그려서 꾸미기, 박쥐나 거미 데코레이션 하기 그리고 커다란 호박으로 Jack-O’-Lantern 만들기 등이다.



매일 책을 읽어주는 Story Time이면  담임 Ms. K가 날마다 다른 종류의 할로윈 책을 읽어주고, 책에 나온 할로윈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뒤, 할로윈 노래를 부른다.

3번 방 꼬마들이 큰 사고 치지 않고 하루를 무사히 보내면 받는 작은 장난감들이 담긴 Treasure Box(보물 상자)에도 거미 반지, 할로윈 스티커, 섬뜩한데 애들은 좋아하는 가짜 마녀 손가락이나 무시무시한 눈알 고무공 그리고 드라큘라 이빨이나 해골 모양 북클립 같은 것들이 가득하다.

 


미국인들은 절기만 되면 집 안팎의 뿐 아니라 자동차에도 장식을 하곤 하는데, 10월에는 운전하다가 붉게 물든 가짜 손을 자동차 트렁크에 끼우고 달리는 차 뒤에 설 때면 이미 몇 번을 보았음에도 깜짝 놀라곤 한다.


10월 내내 할로윈을 기다리면서 미국인들이 즐기는 놀이가 있다.

주황색 할로윈 바구니에 사탕이나 작은 장난감, 학용품들을 담아서 몰래 현관문 앞에 두고 가면 그 집주인이 바구니 안의 물건을 갖고 다른 선물들을 담아 다른 집 앞에 몰래 갖다 두는 놀이이다.

바구니를 받은 뒤, 다시 채워서 바구니를 다른 집에 갖다 둔 집들은 현관문 앞에 "Boo"라고 불리는 꼬마 유령이 그려진 종이를 붙여서 이미 행사에 참여했음을 표시한다.

동네 주민들끼리 하기도 하고 학교에서 각 반이 돌아가면서 참여하기도 한다.

3번 방에도 할로윈 바구니가 찾아와서 3번 방 꼬마들은 장난감과 초콜릿을 나눠갖고 신이 났었다.

그날 오후, 담임 Ms. K는 다른 간식과 학용품을 가득 담아 다른 반 앞에 몰래 갖다 두었다.

그래서 3번 방 문 앞에는 "Boo"가 붙어있다.



할로윈 장식을 화려하게 한 마켓에서는 10월 내내 할로윈용 단것들과 작은 장난감들 그리고 거미나 박쥐가 얹어진 컵케이크나 머미와 호박 모양의 쿠키들이 손님들을 기다린다.

음료를 파는 가게들에서는 할로윈을 기념하는, 마시기에 꺼림찍해 보이는 색깔의 음료를 팔고 손님들은 10월에만 마실 수 있는 그 음료를 일부러 찾아 마시기도 한다.




한 달 내내 기다리던 10월 마지막 날, Holloween 날은 만나는 사람마다 "Happy halloween!"이라며 인사를 나눈다.

어떤 학교에서는 학교 전체가 Holloween 행사를 하기도 하고 반별로 작은 파티를 하기도 한다.


드디어 Holloween의 밤이 다가오면, 해가 짐과 동시에 귀엽거나 유명한 캐릭터의 코스튬이나 섬뜩하거나 기괴한 코스튬으로 분장을 한 아이들과 그 부모들이 왁자지껄한 소리를 내며 동네 동네를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사탕을 얻기 위해 자기 동네뿐 아니라 다른 동네까지 가가호호 방문한 이들이 "Trick or treat"하고 외치면 집주인은 반가운 얼굴로 문을 열고 각자의 주머니나 바구니에 사탕을 담아준다.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 대신 지인의 집에 여러 가족들이 분장을 하고 모여 즐겁게 파티를 즐기며 사탕을 받으러오는 손님들과 신나게 인사를 주고받기도 한다.  

보통 9시 정도면 사탕을 얻으러 돌아다니던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서 친구들과 사탕을 교환하거나 누가 많이 받았는지 세어보기도 한다.

할로윈 후, 한동안 아이들 입에서는 단것이 떠나지 않는다.

가끔은 학교나 기관에서 먹고 남은 할로윈 사탕이나 초콜릿을 걷어서 필요한 곳에 기부를 하기도 한다.


할로윈 다음 날이면 단것에 하이퍼 되거나 "Trick or treat"의 여파로 피곤에 찌든 학생들이 할로윈의 기운에 물든 채 학교에 등교한다.


어제까지 온 동네와 학교를 장식했던 할로윈 분위기는 마치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사라지고, 11월에 있는 미국의 큰 명절인 Thanks Giving이 학교와 동네 그리고 마켓을 점령한다.




미국의 할로윈은 온 동네가, 어른이며 아이며 할 것 없이 모두가 즐기는 큰 파티 같은 이벤트고, 상점 주들에게는 할로윈 특수를 누릴 수 있는 훌륭한 상품성을 지닌, 매상 올리는 날이다.

할로윈에 담긴 배경이 어떠 하든지에 관계없이, 할로윈과 관련된 것들이 생각해보면 섬뜩하고 끔찍한 것들임에도 미국인들은 할로윈에 대해 거리낌이 없다.

할로윈이 끝나면 다시 어딘가에 보관해야 하는 기괴하고 음산한 할로윈 장식이 차지하는 공간이나 상업적인 술수 같은 것에 아랑곳없이, 언제나 즐길 거리가 필요한 미국인들이 당당하게 즐길 수 있는 권리를 허락받은 날인 듯하다.

남녀노소 누구나 작은 사탕이나 과자 같은 것을 마음껏 나눠 주거나 받으면서 일 년의 하루를 즐기는 날로, 번듯한 명절 같은 위상을 자랑하며 자자손손 이어져오는 연례행사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미국인들의 이러한 할로윈 문화는 아이들에게 어떤 방식으로든, 개인적으로는 긍정적이지 못할 것 같은, 영향을 끼칠 것이라 생각한다.

슬쩍 지나치면서 보면 진짜인가 싶은 해골이 동네 곳곳에 버젓이 자리 잡고 있고, 기괴하고 끔찍한 귀신이나 유령, 드라큘라나 미라 같은 것들이 친근하고 가까운 존재로, 가끔은 귀엽기까지 한 모습으로 아이들의 어린 시절부터 함께 하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자신의 어린 시절에도 할로윈이 성행했다는, 잘 큰 어른 학교 동료들을 보면 현실과 가상을 잘 구분하는 훈련이 되어서 괜찮은 것인가 싶기도 하다.

깊이 생각하면 꺼림칙하고 가볍게 생각하면 흥미로운, 할로윈을 권장하는 듯한 미국의 교육과 문화를 학교 현장에서 그리고 동네에서 접할수록 아리송해진다.




매일 할로윈 만들기나 꾸미기를 하고 집에 갈 때면 할로윈 장난감을 받으며, 틈만 나면 할로윈 코스튬에 대해 이야기하는 3번 방 꼬마들이 기다리는 할로윈이 코 앞으로 다가오고 있다.

지루한 10월을 할로윈 책을 읽고 할로윈 노래를 부르며 할로윈에 대한 기대로 기다렸던 3번 방 꼬마들은 어떤 모습으로 사탕을 받으러 다닐지 궁금하다. 하지만 궁금해하지 않기로 했다.


3번 방에서 남다른 꼬마들은 교실 구석에 매달리는 박쥐와 소파 바닥까지 기어들어가는 거미, 의자와 크레파스를 집어던지는 프랑켄슈타인, 바닥에 누우면 꼼짝을 안 하는 해골 그리고 온몸을 흐느적거리며 징징거리는 머미로 순식간에, 그리고 수시로 변신하므로 상상하지 않아도 이미 충분하다.


나의 3번 방에서의 날들은 항상 역동적이고 기대치 않은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할로윈 같은 날들이다.

3번 방 꼬마들이 언제 어떻게 할로윈 주인공들로 변신할지 모르는 위태로운 날을 살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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