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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r 07. 2020

특수학급 보조교사의 일반학급 파견근무

서툰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일하는 한국 아줌마의 미국 학교 생존기


생존 영어로 미국 학교의 특수학급에서 보조 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가 

미국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생존의 기술, 그리고 그 몸부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 달 전부터 우리 학교 TK(Transitional Kindergarten) 일반학급으로 파견을 나가고 있다.

매일 한 시간 씩 에빗이 일반 학급 아이들과 통합 수업을 경험하도록 도와주는 일명 "에빗 3번 방 졸업 프로젝트" 때문이다.

지금은 특수학급인 3번 방에 있지만 에빗은 자폐나 다운증후군 같은 장애가 아닌 개선 가능한 문제 행동만 가지고 있고 학습 능력도 동갑내기들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에빗이 새 학년에는 학군 내 공립학교에 있는 일반 Kindergarten에 갈 수 있도록 적응을 시키는 프로젝트가 시작된 것이다. 


우리 교육구에서는 장애로 보기는 어려운 문제를 가진 학생들의 경우 다양한 방법의 지원을 통해 일반학급에 통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에 따라 특수학급에서 일하는 보조교사들 뿐 아니라 문제 행동이나 학습지연의 문제를 가진 학생들이 일반학급에서 성공적으로 학업을 수행할 수 있도록 돕는 다양한 직책의 보조교사들도 있다. 

그리고 나처럼 특수학급 보조교사로 일하면서 우리 반 학생이 일반 학급에 통합 수업을 가는 경우 수행비서처럼 동행하는 파견 근무를 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에빗의 이해력과 인지능력은 지극히 정상이다.

그러나 주변 어른들의 관심 속에 에빗이 하고 싶은 대로 비위 맞춰주는 어른들 틈에서 자란 탓에 제멋대로의 최고봉이다. 

읽던 책을 치우고 수업을 하자거나 다른 친구가 발표 기회를 얻으면 바로 토라져서 교실을 마구 돌아다니거나 책상 밑으로 들어간다.

비위가 상하면 심한 경우 교실의 물건을 부수고 옷을 벗어버리기도 한다.

처음에는 난감했던 문제 행동이 3번 방에서 지내는 동안 조금씩 통제 아래 들어오게 되어서 일반학급 통합 수업을 계획했고,  에빗을 돕기 위해 내가 파견자로 지목되었다.

에빗의 성향을 너무 잘 알기에 솔직히 내키지 않았지만, 학교가 시키면 해야 하는 보조교사인 나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에빗이 통합수업을 가는 일반 TK반에는 이미 서른 명의 아이들이 있다.

교사 한 명이 네다섯 살짜리 아이 서른 명을 담임하는 교실은 당연히 분주하고 심란할 수밖에 없다.

담임이 몇 달 동안 공을 들인 일반 학급 아이들이어도 아직은 제멋대로에, 여전히 문제 행동을 가진 아이들은 있기 마련이니 말이다.


담임이 애를 써서 아이들의 관심을 유도하며 오늘 할 일을 설명하는 시간이면, 에빗은 가만히 앉아있지를 못하고 불쑥 관심이 가는 숫자나 문자를 크게 읽거나 만지고 싶은 물건들을 향해 달려간다.

에빗의 돌방행동은 꼼지락 거리고 싶은 것을 참고 있는 다른 아이들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수업 분위기를 흐트러뜨리기 일쑤다.

내가 안 된다며 달래고 얼러도 심통이 나면 교실을 뛰어다니거나 소리를 지르니, 억지로 붙잡아 둘 수 없는 제멋대로인 에빗을 다른 아이들과 함께 머물도록 하는 일은 쉽지 않다.

다행히 과제활동을 좋아해서 활동을 시작하면 대체로 잘 참여하지만, 그 와중에도 교사의 지시가 맘에 들지 않거나 다른 학생이 비위를 건드리면 그 또한 살얼음을 걷는 것 같은 돌발상황이 수시로 발생한다.

그럴 때면 서른 명의 고만고만한 아이들과 씨름하는 것도 어려운데  특수학급에서 온 에빗까지 받아서 고생하는 담임교사에게 미안할 뿐이다.

그래서 에빗 때문에 파견 근무를 간 것이지만 담임교사를 돕기 위해 나는 눈치껏 학습지도 나눠주고 틈나는 대로 다른 아이들도 돕곤 한다.

한 달을 지내다 보니 에빗도 나도 조금씩 타협하며 이 상황에 적응이 되어가고 있지만, 여전히 긴장의 끈은 늦출 수 없고 갈 길은 멀어 보인다.




오늘도 에빗은 담임교사가 학습 활동을 설명하는 중에 불쑥 아이들 사물함의 번호를 큰 소리로 읽기 시작했다. 

학급의 규칙을 아는 다른 아이들은 에빗에게 조용히 하라고 하기도 하고 몇몇 장난꾸러기들은 키득거리기 시작했다.

표시를 내지는 않았지만 수업을 진행하는 담임교사의 표정이 점점 굳어졌다.

조용히 에빗에게 가서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는 자리에 앉아한다며 자리로 돌아가라고 하자 갑자기 벽에 붙은 달력 표지판을 뜯어내기에 막았더니 울며 바닥을 뒹굴기 시작했다.

다행히 노련한 담임교사는 요동 없이 수업을 진행했고, 나는 친구가 나쁜 선택을 했을 때는 말 걸지 말고 내버려 두라며 다른 아이들이 담임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도록 했다.

에빗에게 나쁜 선택을 했으니 무엇이 잘못인지 생각하고 마음이 가라앉으면 사과하러 오라는 말을 남기고 나는 다른 아이들을 도와주러 갔다.

잠시 후, 아이들이 각자 과제활동을 시작하고 아무도 관심을 기울이지 않자 미적미적 다가와 사과를 하는 에빗을 담임교사에게 데리고 가서 사과를 시켰다.


오늘의 파견근무가 끝나고 다시 기분이 말짱해진 에빗과 3번 방으로 돌아가면서 한숨이 나왔다.

다른 또래 아이들에게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조금 힘들어도 참아낼 수 있는 것을 너무 어려워하는 다섯 살 아이와 실랑이를 하며 제멋대로인 아이를 교실의 규칙에 따르도록 꼬시고 달래다 보면 슬슬 기운이 빠진다.


한 두 주 후면 아마도 나의 파견 근무 시간이 두배 그리고 세 배로 늘어날 것이다.

통합수업량을 점차 늘려서 종국에 가서는 에빗이 혼자 일반 TK반에서 성공적으로 정착하게 되어야 이 프로젝트가 끝나기 때문이다.




특수학급 보조교사를 시작한 후, 날마다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배우면서 느끼는 것은 이 세상에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너무도 특별하고 특이한 아이들이 많다는 것이다.

일반 학급에 있는 장난과 호기심 가득한 동갑내기들 속에서 유난히 뛰는 에빗을 보면 그 특별히 다름을 더 실감하곤 한다.

세상에 나온 아기가 그저 평범한 아이로 자라 평범한 학생이 되는 것이 그다지 평범한 일이 아닌 모양이다.


매일 나의 기운을 뺏아가는 이 다섯 살 꼬마가 무사히 일반 학급에 진학하여 다른 아이들처럼 성장한 후에는 자신의 다섯 살 시절 매일 자신에게 기운이 빨리던 보조교사가 있었음은 기억도 못할 것이다.

오래전 어느 유명한 철학자가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말을 했다.

나는 '내일 이 특별한 꼬마가 나를 잊더라도 나는 이 꼬마가 보통 아이들이 되도록 돕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가진 특수학급 보조교사가 되어 내일도 에빗을 위해 묵묵히 파견 근무를 가야겠다.  

그런 원대한 포부도 없다면 매일 너무도 특별하고 특이한 아이들 속에서 사는 일은....... 당장 그만두고 싶어 지는 순간이 수시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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