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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Feb 11. 2020

미국 학교에서 보조교사로서 평가받는 날

서툰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일하는 한국 아줌마의 미국 학교 생존기


생존 영어로 미국 학교의 특수학급에서 보조 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가 

미국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생존의 기술, 그리고 그 몸부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한국에서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정기적으로 공식적인 학부모 수업 참관이 있었고 그런 날 교장과 교감 그리고 동료 교사들이 수업 시간에 들어와서 교사의 교수학습방식을 평가하곤 했다.


미국 학교에는 학부모 참관 수업은 없지만, 교장이 수업에 참관하며 교사들을 평가하는 제도가 있다.

우리 교육구에서는 초임 교사들의 경우에는 6개월에 한 번 정도, 경력 교사의 경우 1년에 한 번 정도 교장이 교실에 들어와서 수업을 참관하며 교사의 수업 방식이나 태도를 평가한다.

교사들 뿐 아니라 보조교사들도 교장의 평가를 받게 된다.


보조 교사로 일한 지 3개 월쯤 되었을 때, 사무실 매니저가 자기 평가서 양식을 채워오라고 하였다.

그리고 교장이 내가 아이들하고 있는 모습을 평가하러 교실에 오겠다면서 내 하루 일정을 확인하였다.

다음 날, 담임교사와 상의한 시간에 나를 평가하겠다고 교장이 들어왔다.    

나는 보조교사이기 때문에 교사가 수업을 진행하는 동안 어떻게 아이들을 돕고 안내하는지, 내 역할에 충실한 지를 평가를 받는 것이어서 늘 하던 대로 아이들을 챙겼다.

항상 하던 대로 하는 것임에도 교실 한편에 앉은 교장이 내 동선을 주시하며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살펴본다고 생각하니 그의 시선이 몹시 의식되고 나도 모르게 긴장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30분 정도 지켜보던 교장이 인사를 하고 나간 뒤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며칠 뒤, 교장은 나를 교장실로 불렀다.

교장실에 가니 내 자기 평가서와 교장의 평가서 그리고 담임교사의 평가서가 있었다.

교장은 빠르고 신속하게 나에 대한 평가 내용을 정리하여 주고 나서 개인적인 소견과 충고를 곁들여주었다.

잘한다는 점이 고쳐야 할 것보다 많았지만 지적받은 부분이 더 크게 다가왔다.

평가받은 것에서 조금 놀란 것은 담임교사가 지적한 부분이었다.

평소에 말을 해 주었으면 고치도록 노력했을 것인데 굳이 평가서에 적었나 싶은 생각에 살짝 서운한 마음도 들었다.


보조교사로 고용된 첫 3개월은 인턴 근무와 비슷한 개념으로, 3개월 근무 후 받는 첫 평가는 교육구에서 교장과 담임교사를 통해 보조교사로서의 나의 적격여부를 심사하는 평가이다. 

교장과 담임이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정식 직원으로 고용이 확정되는 것이다.

사실, 이 평가를 통해 부적격 판정을 받는 경우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다시 3개월 후에 2차 평가를 받게 되는데, 이것은 정식 보조교사로서의 정기 평가로, 이후 6개월에 한 번 씩 정기적인 평가가 이루어진다.  

이 역시 자기 평가와 교장의 수업 참관 평가 그리고 내가 일하는 학급의 담임교사의 평가를 바탕으로 나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진다.




미리 수업 참관 시간을 사전 협의하기도 하지만 교장이 바쁜 경우, 언질도 없이 불쑥 평가를 하러 오는 경우도 있다.


지난가을, 사무실 직원이 자기 평가서를 주며 작성해오라고 하기에 평가일이 다가온 것을 짐작하였다.

그런데 며칠 뒤, 아무 생각 없이 우리 반의 강아지 소녀 이디 옆에 앉아 담임교사가 진행하는 수업에 참여하도록 돕고 있는데 교장이 불쑥 교실에 들어왔다.

교실 한 구석에 앉아 물끄러미 나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고 담임교사를 바라보는 것 같기도 하면서 뭔가를 끄적이는 교장 모습에 '나를 평가하러 온건가, 수업을 보러 오건가......' 궁금해하며 이디가 도망을 가지 못하도록 붙들고 학습지를 겨우 겨우 마쳤다.

교장이 나간 뒤 다른 보조교사와 담임이 잘했다고 웃으면서 나를 평가하러 온 것이라고 하였다. 

다행히 이디는 내가 하는 말을 좀 들어주는 척했고 덕분에 나는 냉정함을 잃지 않은 보조교사로 별 탈 없이 무사히 평가를 마칠 수 있던 날이었다.


미리 언질을 줬으면 좋았을 테지만, 긴가민가 하면서 지나가서 마음은 편했다.




우리 교실에는 보조교사가 세 명 있다.

그러니 교장이 적어도 1년에 7~8번가량 교사 평가를 하러 와서 앉아있다.

평소에도 교실에 불쑥 들어와서 기웃거리다 가기 일쑤인데도, 교사 평가를 하는 교장과 30분 정도 같은 교실에 있는 것은 여전히 신경이 쓰이는 일이다.

내가 아닌 동료 보조교사를 평가하러 왔을 때에도, 동료를 주시하고 있지만 내가 하는 일거수일투족이 그의 눈에 보일 것이기 때문에 동료 교사가 평가를 잘 받도록 주변에서 돕되, 나의 언행도 조심하게 된다.

특히 담임교사 평가 시에는 더 긴장을 늦출 수 없다.

담임의 수업이 매끄럽고 자연스럽게 진행되도록 3번 방 꼬마들을 감시하며, 재빠르고 효과적으로 상황에 대치하여 담임의 평가가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도와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니 누구의 평가가 있는 날이든, 교장이 나가고 나면 우리는 서로를 향해 웃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처음에 자기 평가서를 작성할 때, 한국인 특유의 공연한 겸손함으로 나는 스스로에게 점수를 좀 박하게 주었다.

그런데 몇 번 하다 보니 굳이 나 스스로 내 점수를 깎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허위와 거짓으로 평가를 하면 안 되겠지만, 내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을 다 드러내는 것이 좋다.

미국인들은 스스로에 대해 엄격한 것을 겸손하다고 보지 않고, 내가 매긴 내 점수를 그대로 내 수준으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그들도 내가 잘하고 노력하고 있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내가 나를 긍정적으로 평가한 것에 대해 좋게 받아들인다.


미국에서 자신을 평가할 일이 있다면, 내가 노력한 만큼 마구 점수를 주어야 좋다. 

내가 나를 잘한다고 생각하며 자신감 있어야 그들도 나를 그만큼 긍정적으로 평가해주는 것 같다.




교장이 같은 교실 안에서 보조교사로 일하는 나를 평가할 때, 너무 잘하기 위해 애쓰며 친절하게 말을 많이 하고 이것저것 챙기는 것은 좋지 않다.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자연스럽게 하되 긍정적으로 격려하는 모습을 보이면 된다.    

신기한 것은 아이들도 누군가 들어와 보고 있으면, 평소와 달리 얌전해지고 교사들의 말을 잘 따른다.


물론 오히려 더 난장을 피운다면 그것 또한 나를 어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이다.

내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아이들을 돌보고 있는지 교장이 실감할 수 있고, 그럼에도 내가 잘 대처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통달한 사람처럼 글을 썼지만, 솔직히 말하면 교장의 눈이 나를 지켜보고 있는데 아이들이 말썽을 피운다면, 표정은 여유로운 척 짓고 있지만 내 등줄기에는 식은땀이 줄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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