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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y 27. 2020

코로나 시대에는 선생님을 위해 자동차 퍼레이드를...

서툰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일하는 한국 아줌마의 미국 학교 생존기


생존 영어로 미국 학교의 특수학급에서 보조 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가 

미국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생존의 기술, 그리고 그 몸부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코로나 바이러스 여파로 휴교에 들어가 적막에 휩싸였던 학교 주차장에 활기와 소란스러움이 찾아왔다. 

코로나로 인한 칩거하는 생활을 시작한 후 가장 즐거운 시간을 보낸 날이다. 

오늘 우리 학교는 'Teacher's Appriciation Day'를 맞아 학부모와 학생들은 차 안에서, 교직원들은 주차장 인도에 서서 함께 웃고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반가움을 나눴다. 




한국에서 5월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요즘은 주는 것도 받는 것도 꺼리는 날이 되었지만 여전히 가르치는 일로 교육의 현장에 선 많은 교사들의 노고와 수고에 감사하는 날이다.


미국에도 Teacher Appriciation Week이라고 교사들을 기억하는 한 주가 있다.

한국처럼 매년 같은 날로 지정하여 기억하지는 않기 때문에 매년 조금씩 날짜가 다르지만 대개 5월 초 한 주간을 Teacher Appriciation Week으로 삼는다. 

그것도 학교마다 조금씩 다르게 운영하기 때문에 어떤 학교는 5월 첫 주에, 어떤 학교는 5월 중순에 '교사 감사 주간' 행사를 한다.

 '교사 감사 주간' 일주일 동안은 학교 측에서 월요일에는 선생님께 꽃 한 송이 드리기, 화요일에는 카드 쓰기 등과 같은 일별 주제를 정해 행사를 진행한다. 

일주일 내내 아이들과 학부모들은 일별 주제에 맞춰 꽃이나 선물로 거리낌 없이 담임과 다른 선생님들에게 축하와 감사를 전하는 주간으로 행사를 진행한다.


코로나로 휴교에 들어간 지 두 달하고도 일주일이 지난 오늘, 우리 학교에서는 'Teacher Appriciation Day'를 축하하며  'Car Parade' 행사를 하였다.

코로나로 얼굴을 맞댈 수 없으니 학생과 학부모들이 차를 타고 학교 주차장을 한 바퀴 돌며 교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감사를 전하는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휴교 후 처음으로 전 직원이 다시 학교에 모였고 평소에 아이들이 점심을 먹는 Lunch Table에 적당히 거리를 두고 앉아 수다를 떨며 학부모회에서 준비한 샌드위치와 샐러드 도시락을 먹었다.



드디어 자동차 퍼레이드 시간이 되었고 마스크와 장갑을 낀 선생님들이 일렬로 학교 앞에 늘어섰다.

교장이 신나는 음악을 틀어둔 주차장으로 풍선이나 포스터를 장식한 차들이 경적을 울리며 천천히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교사들은 준비한 포스터를 흔들거나 차에 탄 아이들 이름을 외치며 환영하였다.

아이들은 자동차 선루프를 열고 몸을 내밀어 환호하거나 커다란 포스터와 풍선을 흔들며 두 달 만에 만난 담임의 이름을 불렀다.

차창 밖으로 손을 뻗어 꽃이나 작은 선물을 주는 아이들도 있고 그림이나 편지를 전달하는 아이들도 있었다.

퍼레이드는 한 시간 정도 계속되었는데 오랜만의 나들이와 교직원들과의 만남이 즐거운 어떤 가족들은 학교 밖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들어오기도 하였다.

퍼레이드를 마친 후, 머핀을 사서 다시 퍼레이드 행렬에 합류해 교직원들에게 머핀을 전달하는 차량도 있었다.

차 안에 있는 학부모들도, 차 밖의 교사들도 서로의 모습을 사진과 비디오에 담았다. 

자기 반 아이가 탄 차가 들어오면 기념사진을 찍고 키스를 날리는 교사들의 모습에 함께 웃었다.

촉촉이 젖은 눈가를 닦아내는 한 교사를 보며 나는 가슴이 뭉클해졌다. 

그 교사는 아이들에게 깐깐하고 냉랭하기로 소문난 선생님이었다.




사실 매일 교정에서 함께 할 때는 교사도 아이들도 항상 반갑거나 사랑스러울 수만은 없는 사이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두 달을 못 보며 지낸 탓인지, 그저 사랑스럽고 반가운 사람들이 되었다.

교사와 학생들이 서로를 부르는 이름이 무척이나 애틋하게 들렸다. 

오늘 행사는 학부모와 학생들 그리고 교직원 모두가 온몸으로 반가움을 전하는 시간이었다. 


퍼레이드 차량들이 모두 사라지고 난 후, 퍼레이드의 여운이 남아있는 주차장에서 교사들끼리 파도치기도 하고 흥이 넘치는 교사들은 춤을 추기도 했다.

마스크 넘어로나마 오랜만에 실컷 웃고 신나게 수다를 떤 날이었다.


교사들에게 손을 흔들며 학교 주차장을 한 바퀴 도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2-3분이었다.

서로 눈을 맞추고 이름을 부르며 환호할 수 있었던 시간은 아주 짧았고 퍼레이드는 금세 끝났다. 

그 잠깐의 퍼레이드에 참여하기 위해 가족들은 독특한 아이디어로 차를 장식하고 포스터를 만들어 붙였다.

차창 밖으로 전할 편지와 카드를 만드느라 아이들은 시간을 들였다.

그러나 퍼레이드를 위해 준비하느라 수고한 시간마저 즐거웠을 것이다.

아마도 퍼레이드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서 한동안 퍼레이드에서 찍은 사진을 보며, 짧았던 만남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가족들과 그리운 학교와 선생님을 기억하는 따뜻한 시간을 보냈을지도 모른다.

익숙한 학교 주차장이 서로에게 특별한 추억이 되는 날이었을 것이다.


떨어져 있는 시간은 사람을 애틋하게 만들고 서로의 존재를 깊이 느끼게 만드는 모양이다. 

조용히 하거나 말썽 부리지 말라던 잔소리와 그 잔소리에 반발하던 심술은 모두 잊고 서로의 얼굴과 이름이 애틋한 것을 보면 말이다.

깐깐하기로 소문난 선생님의 젖은 눈시울에 울컥했던 순간을 떠올리며 생각해본다.




저녁 식사 시간에 오늘  자동차 퍼레이드를 하면서 찍은 사진과 비디오를 가족들에게 보여주었다.

퍼레이드 현장에 없었던 가족들은 약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지만, 나는 보고 또 봐도 좋았다. 

오늘은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휴교 이래 가장 재미있고 즐거운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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