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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Aug 10. 2020

미국에서 낙하산 전근을 당하다

듣기만 했던 사전 예고 없는 전근 발령에 당황했고 서운했다.


생존 영어로 미국 학교의 특수학급에서 보조 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가

미국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생존의 기술, 그리고 그 몸부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나는 미국 공립초등학교의 특수학급에서 보조교사로 일하고 있다.

보조교사를 시작하고 두 번째 맞은 여름 방학에 나는 뜬금없이, 매우 갑작스럽게 낙하산 전근을 당했다.

 



몇 주 전 부엌에서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화면에 뜨는 낯선 전화번호에 "Hello" 하며 전화를 받자 낯선 여자가 미국인 특유의 반가움을 담은 목소리로 인사를 하더니 교육구 인사 관리과에서 일하는 본인 소개를 하였다.


'여름 방학 중에 교육구 인사 관리과에서 웬 전화인가' 생각을 하며 내 이름을 확인하는 질문에 얼떨떨한 마음으로 맞다고 대꾸를 하자, 내가 일하던 학교가 어쩌고 저쩌고 하더니 처음 듣는 학교 이름을 늘어놓았다.

아무 생각 없이 설거지를 하던 차에 받은 뜻밖의 전화라서 머리가 멍해지면서 이 무슨 뚱딴지같은 소리인가 싶었다.

그런데 듣다 보니 내가 일하는 학교를 떠나야 한다는 이야기 같았다.


코로나 바이러스로 학교들이 휴교에 들어가고 자택 거주 명령과 사업장 폐쇄 등으로 교육구 지원 재정이 삭감되어 교육구에서 400여 명의 인원을 감축할 거라던 교육구에서 온 이메일이 번뜩 떠올랐다.

'혹시 해고당한다는 거 아냐?'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들어 촉각을 곤두 세우고 질문을 하려는데 여전히 어설픈 영어실력에 뜬금없는 상황 탓인지 말이 두서도 없이 나와 당황이 되었다.

이러다 영어도 어버버 한다고 제대로 찍혀서 잘리겠다 싶어 "Excuse me"하고 양해를 구한 뒤 숨을 한번 깊이 들이쉬고 갑자기 받은 전화라 제대로 이해를 못했다며 다시 말해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마음을 가다듬고 듣자 하니 내가 일하던 초등학교의 특수학급 학생 수가 줄어들어 보조교사 인원을 감축하는데, 내가 교육구에 소속된 경력이 짧아서 전근 대상이 되었다는 것이다.

'어쨌든 해고는 아니구나.'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교육구 직원은 내 직급에 해당하는 보조교사가 필요한 초등학교 이름 두 개를 대면서 둘 중에 어디로 가고 싶은지 선택할 수 있다고 하였다.

너무도 낯선 학교 이름과 갑작스러운 낙하산 전근 소식에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

근무 마지막 날, 우리 반 담임교사와 내년에도 같이 일하게 될 것이라 철썩 같이 믿으며 같이 교실 벽을 꾸몄고 개학 후 교실 배치에 대해 같이 의논하기도 했다.  

개학 날 보자며 헤어졌고 당연히 다시 같은 학교, 같은 교실로 돌아갈 거라 생각하고 있던 차에 날벼락같은 전근 통보를 전화로 받고 전근 갈 학교를 정하라니, 당혹스러움을 금할 수 없었다.

다행히 교육구 인사과 직원은 금요일이니 월요일에 답변을 줘도 되겠냐는 나의 요청을 친절하게 받아들여줬고 나는 잠시 생각할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미국 회사의 인사발령은 매우 비인간적이라는 이야기를 주변에서 심심치 않게 듣곤 한다.

하다 못해 전 날이라도 상황이나 회사의 결정에 대한 설명 조차 없이, 출근했는데 부서 감축이나 해고 결정으로 책상이 사라졌다거나 퇴근하고 집에 갔는데 해고되었다는 연락이 오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그래서 회사의 인사 관리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인원 감축과 같은 분위기가 포착되면 해고 대상으로 지목되기 전에 미리 재빠르게 회사를 옮기는 직장인들이 많다고 했다.

해고된 사람은 재취업이 어려우니 해고되기 전 신속하게 사직을 하고 다른 직장으로 이동하는 것이다.

모든 회사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업무나 사업 상 어떤 직원이나 특성 부서가 필요 없어지면 준비할 시간에 대한 배려 없이 갑작스럽게 해고 통보를 하는 회사의 인사 정책은 미국에서 매우 공공연한 것이다.


방학이 시작될 무렵 교육구에서는 보조교사들에게 새 학년에도 계속 일할 것인지 서면이나 교육구 웹사이트를 통해 확인한다.

그 양식에는 새 학년에 다른 학교로의 전근을 원하는지, 같은 학교에 근속할 것인지를 표시하도록 되어있다.

그럼에도 교육구의 필요에 따라 본인의 선택과 상관없이 갑작스럽게 전근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것이 내 상황이 될 줄은 몰랐다.

직장인이 직장의 필요에 따라 근무처나 근무 여건이 바뀌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막상 내가 이렇게 낙하산을 탄 것처럼 갑자기 낯선 곳으로 뚝 떨어지게 되니,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일하던 학교 교장이나 사무실 직원 또는 담임을 통해서라도 사정이 이러하니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야 할 것 같다는 이야기를 사전에 들었다면 마음의 준비를 통해 조금 더 기껍게 이 상황을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을 하다 담임교사에게 연락하니 자기도 몰랐다며 깜짝 놀랐다.

담임은 만약 전근을 가야 한다면 두 학교 중 현재 우리 학교와 비슷한 **학교가 더 나을 것 같다며 교장과 상의 후 연락을 준다더니 결정을 내려야 하는 월요일까지 감감무소식이었다.

낙하산 전근이라도 가라면 갈 수밖에 없는 보조교사의 처지인 나는 담임의 조언과 두 학교의 위치 검색을 바탕으로 인사과 직원에게 **학교로의 전근 희망을 전하면서 혹시라도 상황이 바뀌면 현재 학교에 계속 있고 싶다고 덧붙였다.

그리고 어제 교육구에서 내가 희망한 학교로의 전근 발령 우편물을 받았다.

갑작스러운 전근 소식을 전했음에도 2년을 함께한 담임교사에게서나 학교 관계자들에게서 '수고했다, 새 학교에서 잘 지내라' 같은 인사도 없고 함께 일했던 동료들에게 짧은 이별 인사 조차 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온전히 타의에 의해 전근을 가게 되니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어설픈 영어로나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며 지냈던 첫 학교를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야 하는 나의 처지가 서글프기도 했지만 요즘 같은 상황에 해고시키지 않고 낙하산 전근이라도 시켜준 것에 감사하기로 했다.

해고당하지 않고 전근당해서 감사하지만, 듣기만 하던 낙하산 전근을 직접 당하고 보니 어쩐지 몹시 씁쓸했다.     

새로운 환경에 다시 적응하려니 두려움도 들지만 그 또한 지나갈 것이다.

아마도 이년 반 전 미국에서의 사회 초년생으로 생전 처음 미국 학교에 출근하던 때보다는 수월할 것이다.

이년 반을 미국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다져진 생존의 기술과 근력이 붙었을 테니 말이다.


아...... 절대로 권태감에 빠질 수 없는 미국 학교의 보조교사 처지라니.

낯선 학교에서 낯선 사람들 속에서 다시 나의 어설픈 영어의 민낯을 드러내며 살아남기 위해 몸무림 칠 생각을 하니, 아! 신선한 긴장감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낙하산 인사 - 해당 기관의 직무에 대한 능력이나 자질, 전문성과 관계없이 권력자가 특정인을 중요 직책에 임명하는 것을 말한다. 권력자가 자신의 성향에 맞는 사람을 임명한다는 의미에서 "코드 인사"로도 불린다.    

[네이버 지식백과] (한경 경제용어사전)


특수 학급의 보조교사는 중요 직책이나 권력자와 전혀 관계가 없는, 시급을 받으며 특수학급 담임교사를 돕거나 장애 학생을 돌보는 사람일 뿐이라 이에 '낙하산 인사'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전혀 적절치 않다.

그러나 내 의도나 바람과 상관없이 나를 날려 보내는 이들에 의해 난데없이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내 처지를 역설적으로 표현하고 싶어 '낙하산 전근'이라 이름 붙여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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