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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Sep 12. 2020

텅 빈 교실에서 아이들을 만나면...

난데없이 전근을 왔건만 주인 없는 학교를 지키고 있다.


생존 영어로 미국 학교의 특수학급에서 보조 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가

미국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생존의 기술, 그리고 그 몸부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여름 방학 중에 난데없이 전근을 당했다.  

개학이 시작되었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학생들은 온라인으로 새 학년을 시작했다.

때문에 새로운 학교로 전근을 왔지만 아직 이 학교 특수학급의 남다른 아이들을 만나지 못했다.

게다가 온라인과 온 캠퍼스 수업 중 온라인 수업을 선택한 학생들은 한 학년을 집에서 보내게 된 탓에 내가 돕기 위해 온 특수반 학생들은 다음 학기에나 얼굴을 보게 될 것이다.  




코로나 때문에 학교는 예전과 매우 달라졌다.

우리 학구에서는 한 교실 안의 학생수를 줄이기 위해 반 아이들을 오전반과 오후 반으로 나뉘었다.

오전반 아이들은 오전에 교실에서 담임과 만나 수업을 하고 오후에는 자신들의 선택에 의해 집에 가거나  Extended Learning에 참여할 수 있다.

Extended Learning은 나와 같은 보조교사들이 지정된 교실에서 아이들 숙제를 돕거나 책을 읽고 자습을 하도록 관리하는 자율학습의 형태로 운영된다.

오후반 아이들은 이와 반대로 오전에 Extended Learning에 참여할 수 있고 오후에 수업을 듣는다.

일단 온라인으로 시작된 학교도 같은 스케줄로 진행되고 있다.

오전에 담임과 수업한 아이들 중 원하는 아이들은 오후에 온라인 Extended Learning에 참여한다.

개학한 후로 보조교사들은 Extended Learning 시간에 스크린 상에서 아이들을 만나고 있다.

난데없이 전근을 와 얼떨떨한데 Extended Learning을 맡으라기에 아이들도 낯선 데다 스크린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어떻게 2시간 반 씩 영어를 하며 보내 내야 하나 막막했다.

그런데 다행히 몇 년째 이 학교에서 일하고 있는 보조교사  Ms. C와 파트너가 되어 함께 2학년 아이들을 맡게 되었고, 많은 도움을 받으며 하루하루 무사히 보내고 있다.

개학 첫 주에는 너무 많은 아이들이 온라인 미팅에 들어오는 데다 뭘 해야 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시간도 있었지만 이제는 Ms. C와 시간표도 정하고 역할을 나눠 진행하면서 제법 여유 있게 Extended Learning을 운영하고 있다.    




오늘도 아이들이 없는 텅 빈 학교와 교실을 지키기 위해 학교로 출근한다.

그리고 하루 종일 빈 교실에 혼자 앉아 스크린으로 아이들을 만난다.

늘 하던 대로 옆 교실의 Ms. C와 함께 스크린의 작은 네모 안에 있는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린다.

함께 동화를 읽어주는 비디오를 본 후 이야기도 하고 유튜버를 따라 운동하며 수학 사이트에서 문제도 푼다.

스크린 속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 이야기에 웃음을 터뜨리거나 스크린 앞에서 춤을 추다가 문득 고개를 들고 텅 빈 책상을 보면 깨닫는다.

나는 텅 빈 교실에서 아이들 속이 아니라 스크린 앞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

그럴 때면 마음 속을 맵고 차가운 바람이 쓸고 지나가는 기분이 든다.


오늘은 금요일. 금요일에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Show and Tell" 시간을 갖는다.

자기 물건 중 한 두 가지를 보여주고 그것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인데 친구들을 못 만나지 한참 된 아이들은 수시로 “Show and Tell”을 하자고 부탁하기도 한다.

서로를 좀 더 가까이 보고 싶고 서로의 이야기를 잘 듣고 싶어 아이들은 점점 스크린에 코를 박는다.

하루 종일 스크린을 통해 친구를 만나고 스크린에 대고 이야기를 하고 스크린을 보며 지내는 아이들을 보면 안쓰럽다.


오늘도 스크린에 대고 웃고 떠들며 고개를 끄덕이다가 빈 교실을 나선다.

주인 잃은 텅 빈 운동장을 지나 집으로 간다.

아이들이 앉아 깔깔거렸을 커다란 나무 아래의  Buddy Bench 모습이 친구를 잃은 듯 쓸쓸하다.

아이들의 목소리와 웃음으로 왁자지껄했을 놀이터에는 바람과 내 발소리만 지나간다.  

주인 없는 학교를 머뭇머뭇 지키다 주춤주춤 돌아가는 내 발소리에는 맥이 없다.





캘리포니아의 코로나 상황이 조금 나아져서 온 캠퍼스를 선택한 아이들은 9월 말쯤 다시 학교에 등교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오늘 아침 “3 wishes”에 대해 이야기할 때 자기는 “1 wish” 밖에 없다며 코로나 바이러스가 끝나는 것이 그것이라던 2학년 꼬마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모두가 바라는 그것.

그 한 가지가 이루어져서 아이들로 가득한 운동장을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것이 주인 없는 빈 학교를 지키다가 집으로 돌아가는 나의 한 가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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