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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May 13. 2020

온라인 수업 중에도 미국 학교에서 살아남기

서툰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일하는 한국 아줌마의 미국 학교 생존기


생존 영어로 미국 학교의 특수학급에서 보조 교사로 일하고 있는 한국 아줌마가 

미국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벌이는 생존의 기술, 그리고 그 몸부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코로나 19 바이러스로 학교가 휴교한 지 두 달이 되어간다.

처음에는 한 달 후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예상했다.

그러나 휴교는 학년 말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특수학급 보조교사인 나의 재택근무도 자연히 연장되었다.


휴교 며칠 뒤, 미국의 코로나 바이러스의 전염을 막기 위한 연방정부와 주정부의 경제 제재 조치로 생존과 관련 없는 업종의 사업장들이 문을 닫게 되었다.

사업장의 폐쇄뿐 아니라 영업 및 근로시간의 축소는 결국 근로자들의 해고로 이어졌다.

살길이 막막해진 사업자들과 해고된 근로자들의 성화에 다시 경제활동 재개가 고려되면서 사업장들이 다시 문을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불안한 미국의 코로나 19 상황은 일상의 복귀에 큰 걸림돌이고, 사람들의 경제적 어려움과 재고용 및 재취업의 문제는 쉽게 해소될 것 같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상황 가운데 교육구에서는 온라인 수업을 진행 중인 교사들 뿐 아니라, 휴교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경제적 논리로 볼 때는 꼭 필요하지 않은 보조교사들과 시설 관리자까지 모든 직원의 고용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교육구에서는 보조교사들에게 특수학급을 비롯한 각 학급 교사들의 온라인 수업을 돕는 업무를 지시하였다. 

그렇지만 온라인 수업에서 보조교사들이 할 일은 그다지 많지 않다.

매주 재택근무 내역을 보내며 교육구에서 제공하는 온라인 연수를 듣고 있으니, 학교나 담당 교사로부터 연락이 오지 않는 이상 사실 굳이 찾아서까지 일을 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해고되는 시점에서 월급을 따박따박 받고 있으니 우리들에게는 학교와 담임교사에 필요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이 존재한다. 


우리 학교의 보조 교사들은 재택근무라는 이름으로 월급을 보존해주는 교육구에게 자신들이 여전히 필요한 인력임을 보이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한다. 

학교나 교사에게 필요한 일이 없는지 알아보기 위해 매일 아침 학교로 전화를 해서 자신이 도울 일 있는지 묻는 직원들도 있다. 

책 읽기에 어려움을 느끼는 학생들을 위해 각 학급에서 받은 도서 목록의 동화책을 읽은 것을 직접 촬영한 비디오를 만들어 제공하는 보조교사들도 있다.

고학년을 돕는 다른 보조교사들 중에는 아이들과 온라인 상에서 만나 과제를 돕는 일을 자처하는 이도 있다.

이렇듯 자발적으로 교사들이 진행하는 온라인 수업을 도울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 내려 노력하는 보조교사들이 적지 않다.




우리 3번 방에는 자폐와 다운증후군을 가진 다섯 살 배기 유치원 생들이 있다.

우리 반 담임 Ms. K는 일주일에 두 번 30분씩 Google hangout 에서 9명의 아이들을 일대일로 만나 수업을 한다.

혼자서는 컴퓨터를 조작할 수 없어 부모가 함께 참여하는 특수학급 꼬마와 담임교사의 1:1 온라인 수업에서 보조교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그러나 멕시코 이민자로 스페인어와 영어가 능숙한 보조교사 Ms. J는 코인과 히나의 수업시간에 부모와 담임을 통역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코인과 히나의 부모가 영어를 잘 못하니 Ms. J는 부모뿐 아니라 담임에게도 꼭 필요한 존재가 되었다.

우리 반의 다른 보조교사 인 이집트 출신 Ms. S는 숫자와 관련된 비디오를 만들겠다고 나섰다.


어쭙잖은 영어를 가진 나는 내 영어로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수 없어 퍽 난감했다.

혼자 궁리를 하다가 평소처럼 몸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도맡아서 하면서 나의 필요를 보여주기로 마음먹었다.

온라인 수업이 시작 후, Ms. K를 돕기 위해 출근했는데 Ms. K가 아이들이 참고할 수 있는 모범 학습지를 만들고 있었다.

학습지 챙기는 것을 돕던 나는 색칠공부쯤은 얼마든지 할 수 있으니 미술 활동지를 완성하여 Ms. K에게 파일로 보내는 일을 맡겠다고 했다.

Ms. K는 온라인 수업 중이지만 여전히 필요한 자질구레한 일로 일주일에 한두 번씩 학교에 와 달라며 도움을 요청한다.

다행인 것은 고등학교에 다니는 다 큰 아이를 둔 덕에 부르면 바로 달려갈 갈 수 있는 여건이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올 수 있냐는 문자가 오면 바로 시원시원하게 "Sure"이라 답한다.

집에 있는 아이들 때문에 오기 힘든 Ms. J와 Ms. S 몫까지 열심히 닦고 쓸거나 자르고 붙인다.

집에 돌아올 때는 할 것을 가지고 와서 틈틈이 자르고 정리하여 다시 학교에 출근하는 날 가지고 간다.

학교에 가는 날은 꼭 출근한 교장이나 교감에게 말을 걸거나 눈도장이라도 찍어 내가 꾸준히 학교에 나와 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지난주 출근했을 때 금요일에 오라던 Ms. K에게서 내일 올 수 있냐는 문자가 왔다.

나는 이유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가겠다고 바로 답을 보냈다.




코로나 사태 이전에 어줍은 영어로 미국 학교에서 버티기 위해 나는 열심히 몸을 움직이며 일했다.

코로나 바이러스가 만들어내는 대량 해고의 상황에서도 온라인 수업을 진행하는 미국 학교에서 살아남기 위해 나는 여전히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찾아 열심히 하고 있다.

내일을 예상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학교에서 더 이상 보조교사들을 필요치 않게 되더라도 제일 먼저 해고되는 대상이 되고 싶지는 않다.


나를 고용한 이들에게 필요한 존재가 되기 위해 말 대신 행동으로 일하는 것.

그것이 영어도 서툴면서 시작한 미국 학교의 보조교사로 아직까지 살아남아있는 나의 필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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