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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날마다 소풍 Oct 22. 2021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어 행복합니다.

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행복한 선생님


누군가 내 일상에서 가장 재미있고 신나는 순간을 꼽으라면 나는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수업 시간이라고 말하고 싶다. 내가 배우고 잘하는 한 가지를 다른 사람들에게 마음껏 가르쳐 줄 수 있는 그 수업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고 행복하다.





월, 화, 수, 목, 금요일 아침이면 집을 나서서 미국의 공립학교에 출근한다. 서투른 영어실력으로 미국  초등학교에 있는 특수학급에서 종일반 보조교사로 장애아를 돌보는 일을 한다. 그러나 주중 저녁이나 주말이면 능숙한 한국어를 구사하며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선생님으로 일한다.


미국에 오기 전,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초등학교 교사로 일했던 나에게 학교와 가르치는 일은 숙명인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아마도 학교라는 공간과 아이들과 함께 하는 것이 제일 익숙하기 때문에 태평양을 건너 미국에 와서도 학교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 미국 초등학교에서 보조교사를 시작하게 된 듯하다. 게다가  봉사자로 시작한 세종학당의 교사라는 직책도 기관의 이름과 학생들의 모습은 다르지만 배우려는 이들과 가르치는 이가 한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으니 일반 학교와 별반 다르지 않으니 말이다.

지금 돌아보면 처음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기 시작할 무렵의 나는 한국의 초등학교 국어 시간에 국어를 가르쳤던 경력이면 한국어를 가르칠 수 있을 거라는 착각을 했던 것 같다.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이 국어를 가르치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을 만큼 한국어 교육에 대해 무지했고, 제대로 준비도 없이 무모하게 한국어 교사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태평양을 건너온 미국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시작한 후, 한국에서 태어나고 자라면서 한국어를 국어로 배워온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것과 영어를 모국어로 배우며 미국에 살고 있는 학습자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게다가 미국 성인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은 한국인 2세나 3세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 또한 다른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 깨달음과 함께 국어 교사로서는 어려움을 못 느꼈지만 한국어 교사로서는 내가 한참 모자라다는 것을 체감하였다. 그리고 한국어에 대한 무지와 한국어 교육에 대한 무관심에 대한 반성도 찾아왔다.

그 후로 세종학당에서 만나는 미국 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생님이 되기 위해 한국인 교사로서의 자격과 실력을 갖출 수 있는 길을 찾아 한 걸음씩 내딛기 시작했다. 아직은 한참 모자라지만 계속 나아가다 보면 언젠가는 한국어를 제대로 가르치는 한국어 교사가 되어갈 거라 믿어본다.




모두가 느긋한 마음으로 토요일 아침을 즐기기 때문인지 늘 출근 차량으로 막히던 도로가 한산한 토요일 아침이다. 다른 사람들의 토요일과 달리 나는 분주한 마음으로 한산한 도로 위를 바쁘게 달려간다. 오늘 수업할 내용을 머릿속에 떠올리면서 도로를 달리다 보면 금방 세종학당에 도착한다. 가끔은 게을러지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지만, 한없이 여유를 부리고 싶을 황금 같은 토요일 아침에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차로 한 시간은 가야 하는 먼 도시에서부터 세종학당을 향해 달려오고 있을 학생들을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 든다.

빈 교실의 불을 켜고 수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어렸을 때 한국에 이민을 온 민영 씨가 교실에 들어선다. 지난주에 배운 인사말을 복습하면서 인사를 나누는 동안 대학생 엘렌 씨와 두 아이의 아빠인 로버트 씨가 웃으며 들어온다.  곧이어 한국어 배우는 게 취미인 토마스 씨와 한국어 낱말을 가장 많이 아는 쏘냐 씨, 투와이스의 열혈 팬인 스티브 씨가 들어와 자리에 앉는다. 바쁜 일주일을 보낸 토요일 아침의 노곤함이 얼굴이 묻어있던 학생들은 인사를 나누고 교과서를 펴는 순간 진지한 표정으로 내 입에서 나오는 낱말 하나하나에 집중하기 시작한다. 질문이 많은 로버스 씨는 내가 설명하는 중에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한 표현에 대해 질문한다.

‘아차, 아직 안 배운 표현을 사용했구나!’

한국어를 배우는 것을 즐거워하는 학생들과 수업을 하다 보면 빨아들일 듯이 수업에 집중하는 그들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넘치는 내용을 전달할 때가 있다. 잠깐 설명을 하고 쉬는 시간을 갖는다. 쉬는 시간에도 옆 사람과 방금 배운 내용에 대해 묻고 답하는 학생들을 볼 때면 그들의 한국어에 대한 열정에 감탄이 나올 뿐이다.

한국어를 배우겠다고, 수업 시간이면 열기가 느껴질 정도로 열심히 배우려는 학생들을 보면서 나는 분주한 일상을 이겨낼 수 있는 열정과 삶에 대한 열심을 배우곤 한다. 공립학교 보조교사와 한국어 교사로 나도 참 바쁜 삶을 살고 있지만 우리 반 학생들도 모두 가정에서는 부모로, 직장에서는 직원으로 또는 주중에는 대학교에서 어려운 공부를 하며  분주한 삶을 살고 있다. 그런데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한국어를 배우면 월급을 더 받는 것도 아님에도 그들은 한국어가 좋아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서 황금 같은 주말 아침시간을 따로 빼내어 수업에 온다. 수업 시간이면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 집중하고 혹시 결석이라도 해야 되는 날이면 숙제를 미리 챙겨가며 열정적으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의 모습은 가끔 나태해지려는 나 자신을 번쩍 정신 들게 만든다.

쉬는 시간에 잠깐 통화를 하러 교실 밖으로 나갔던 민영 씨가 풀이 죽은 얼굴로 교실에 들어온다. 무슨 일인지 궁금했지만 오늘 마쳐야 할 수업 분량을 생각하며 바로 수업에 들어간다. 수업이 끝나고 수업 시간 내내 진지한 얼굴로 수업을 하던 학생들이 진정한 주말을 맞이한 편안하고 환한 얼굴로 나에게 인사를 건넨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아직은 어눌한 학생들의 인사에 그들만큼 열심히 수업을 진행한 나도 한숨 돌리며 인사를 한다.

“안녕히 가세요.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아직도 약간 어두운 얼굴로 교실을 나서려던 민영 씨에게 따로 말을 건네본다. 민영 씨는 석사학위까지 있는 정신과 치료사이다. 어렸을 때 한국학교 가는 것을 너무 싫어해서 결국 한국학교를 다니다 말았다는 민영 씨는 부모님과 의사소통이 어렵다. 서른이 넘어서야 한국어를 제대로 배우고 싶어 세종학당에 다니고 있는 민영 씨는 부모님과 전화 통화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오늘도 부모님과 통화하는데 부모님은 영어를 잘 못하시고 민영 씨는 한국어가 서툴러서 대화가 잘 안 되어서 기분이 나빴던 모양이다.

민영 씨를 격려하고 세종학당을 나서는 데 출구 앞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는 스티브 씨와 엘렌 씨를 만난다. 트와이스 콘서트와 팬미팅에 참여하기 위해 한국에 가려고 계획 중이어서 신이 난 스티브 씨와 그에 장단을 맞춰주고 있는 엘렌 씨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한다. 곳곳에서 영어 발음이 묻어나는 한국어가 들려오는 세종학당을 나서서 집으로 향하는 길, 열심히 수업하느라 배에서 꼬르륵 소리는 나지만 마음은 방금 마친 수업에 대한 기쁨으로 꽉 차있다.


세종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시간이 참 행복하다. 한국어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조금이라도 더 배우고 싶어서 내 입에서 나오는 낱말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한국어 수업은 육체적으로는 힘들지만 정신적으로는 재충전이 되는 시간이다. 한국어를 배우는 것을 좋아하는 학생과 그런 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 것이 행복한 교사. 교육학 서적에나 나올 법한 이상적인 교실이 바로 내가 한국어 수업 시간마다 학생들을 만나는 그곳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내가 근무하는 세종학당에서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한국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년 전에 써둔 이 글을 문득 발견하고 읽으면서 교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던 시간이 몹시도 그리워졌다. 이 글을 쓰던 순간의 감정을 추스르며 브런치에 글을 옮겨보았다.

매거진의 이전글 한국어를 가르쳐준 부모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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