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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final job 0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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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성 Nov 16. 2019

성실함을 뛰어넘는 도약(跳躍)

현실에 안주할 것인가 인생역전을 이룰 것인가?

‘교수님을 모시고 갈 기사입니다. 도착했습니다.’

휴대전화 메시지를 확인하고 현관문을 나선다. 가운데 반 토막이 더 붙어있는 까만색 리무진은 비상등을 켜고 대기하고 있다. 그 앞에서 깔끔한 감색 싱글 정장을 입은 기사는 내가 나타나자 정중하게 인사를 건네며 차량 뒷좌석의 문을 열어준다. 물론 문도 기사가 닫아준다. 나는 시트의 버튼을 눌러 좌석을 뒤로 최대한 눕힌다. 이렇게 반쯤 누워갈 수 있는 것이 리무진의 장점이다. 차량은 새벽의 어둠을 가르며 동부간선도로에 접어든다. 곧 머지않아 여명이 밝아올 것이다. 인생살이도 짙은 어둠을 슬기롭게 넘기면 아침을 맞이하듯.  

  

“교수님, 약 한 시간 반이면 도착할 것 같습니다. 주무시면 도착 5분 전에 깨워드리겠습니다.”

나는 짐짓 눈을 감고 자는 척하며 강연할 내용을 마음으로 그려본다. 리무진은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아스팔트 위를 사뿐하게 달려 나간다. 브레이킹과 핸들링 등 운전실력이 상당함을 느낄 수 있다. 갑자기 프랑스 미식가 ‘브리야 사바랭’의 말이 생각난다.

‘당신이 먹는 음식이 무엇인지 말해달라. 그러면 당신이 누구인지 말해주겠다.’라고 했던가?

나도 누군가가 운전하는 차를 타보면 그 사람이 누구인지 말해줄 수 있을 것 같다. 눈을 감고 있었지만 지금 어디를 지나고 있는지, 속도까지 쉽게 알 수 있다. 용비교 근처의 S자 코스에서 차가 미세하게 흔들렸지만, 기사의 잘못은 아니다. 그곳은 도로의 포장상태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기사의 혈액형은 내성적이며 섬세한 A형일 확률이 높다.

   

“교수님, 거의 도착했습니다.”

리무진은 입구의 차단막을 통과하고 있었고 보안요원은 차려 자세로 거수경례를 한다. 그는 아마도 차량이 도착했다는 것을 교육담당자에게 무전으로 알릴 것이다. 입구에서 본관까지는 가까운 거리가 아니다. 잘 정리된 수목원을 지나는 느낌이다. 저 멀리 웅장한 대리석 건물 앞에 두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이 보인다. 리무진이 서서히 다가가자 환한 웃음으로 차량의 문을 열어준다.   

  

“총장님, 오시는데 불편한 점은 없으셨는지요?”

“덕분에 편하게 왔습니다.”

“가방 주시지요.”

“아닙니다. 아주 가볍습니다. 제가 들겠습니다.”

교육담당자 두 명이 나를 대기실로 안내한다. 푹신한 가죽 소파 사이의 탁자에는 각종 음료와 다과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고, 교육생의 명단도 따로 비치되어 있다. 200여 명 중에서 상당수가 미국 동부 아이비리그 명문대학교 박사학위 자라는 것이 특색 있다.  

  

“총장님, 시장하시죠?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모시고 가겠습니다.”

전망 좋은 식당 창가의 귀빈석은 통유리로 되어있어서 연수원의 경관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식사를 간단히 마치고 경내를 산책하다가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다시 강의실까지 안내를 해준다고 한다. 전날 담당자는 내가 선호하는 식사와 음료를 물어봤는데, 신경 써서 잘 준비한 것 같다. 아침 산책길은 확실히 서울과 떨어져 있고 주변이 아름드리 수목으로 둘려있어 공기가 신선하다.    

대기실에 마련된 커피를 마시며 시계를 본다. 강연 시작 3분 전이다. 노크 소리와 함께 이번에는 여성 안내자 두 명이 나를 강연장으로 안내한다. 모두 무전기와 이어폰을 끼고 있다. 한 여성이 무전기에 대고 낮게 속삭인다. 


“연사님 출발하십니다.”

에스코트를 받으며 도착한 강연장 출입구의 문 앞에도 무전기를 든 여성이 대기하고 있다.

“연사님 입장하십니다.”

육중한 문이 열리자 200명이 내뿜는 함성과 박수 소리가 진동한다. 모두가 기립해서 중앙의 계단을 밟아 한발 한발 단상으로 내려가는 나를 응시하면서 함성과 박수를 멈추지 않는다. 강연을 마치고 퇴장할 때도 입장할 때와 마찬가지로 전원 기립박수와 함성으로 나를 배웅한다.    

강연장 밖에는 역시 리무진이 대기하고 있다.


“총장님, 초대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실 때 드시라고 약간의 다과와 음료를 차량에 비치해 두었습니다.”

도로가 한적한 새벽 시간과는 달리 집까지 도착하기까지는 시간이 2시간 45분 정도 걸릴 것 같다. 월요일 오전 11시 수도권 도로 상황이 한눈에 그려진다. 어느 도로 어느 차선이 소통이 원활할지도 데이터와 경험을 통해 쉽게 알 수 있다. 리무진은 올 때의 역순으로 나를 집까지 데려다줄 것이다. 차가 움직이자 기사는 겸연쩍은 얼굴로 나에게 말을 건넨다.

“죄송합니다. 총장님이신 것을 몰랐습니다.”

기사는 나를 내내 교수님이라고 호칭한 것이 큰 결례였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나는 총장도 아니고 교수도 아닌 택시기사라고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었다.   

  

나에게는 두 가지의 선택이 있었다. 오로지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는 자동차 운전면허증이었기에 시작한 택시운전이었다. 이 직업에 만족하고 성실히 노력하면 개인택시를 몰 수 있는 희망이 있었다. 맞다. 모든 회사택시기사들의 꿈인 개인택시. 근무조건이나 수입의 변화까지는 기대할 수 있지만 인생역전까지는 기대하기 힘들었다.     

내가 최고의 대우를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비록 택시운전을 했지만 강연가, 저자, 컨설턴트를 꿈꾸고 준비하고 실현했기 때문이다. 성실함의 가치는 존중되어야 한다. 하지만 인생역전을 위해서는 도약을 꿈꾸고 준비해야 한다. 나는 내 선택에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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