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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final job 0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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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태성 Nov 17. 2019

첫 강연

절망에서 희망을 보다

 강연가로의 출발은 누구보다도 화려했다. 택시기사가 강연을 했다는 것이 다음 날, 중앙일보에 상당한 비중으로 보도되었으니 말이다. 과천 정부종합청사 안에는 수 백 명이 나를 주시하고 있었다. 천장에는 휘황찬란한 샹들리에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고 바닥에는 붉은색 카펫이 깔려 있었다. 


‘청중 사이에 아버지와 딸도 앉아 있었다면......’

못내 아쉬웠다. 아버지와 딸은 내가 가장 힘들 때 하늘로 떠났기에 나에게 좋은 일이 생기면 가장 먼저 생각난다.

‘그래도 보고 계시죠?’


사회자의 소개를 받고 무대에 올랐다. 한 기자님은 청중 사이에서 연신 노트북의 자판을 두들겼고 사진기자님은 내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연신 카메라 플래시를 터뜨리고 있었다. 가뜩이나 긴장을 하고 있었는데,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강연이 끝나고 무대에서 내려온 내 등은 흠뻑 땀으로 젖어있었다.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았다. 택시운전을 할 때는 그것이 제일 힘든 일인 줄 알았지만, 더 힘든 일도 있음을 깨달았다. 대중 앞에서 강연을 한다는 것은 택시운전보다 열 배는 더 힘들었음을 고백한다. 그렇게 무대에 서고 싶었는데, 막상 서고 나니 생각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마치 내가 동물원의 원숭이가 된 느낌이었다.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해. 택시기사가 무슨 가당치도 않은 강연이란 말인가?’

집으로 향하는 전철에서 오늘이 처음이자 마지막 강연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무려 구십 분 간 의자에 앉아서 고통을 당했을 공직자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여보, 오늘 강연 잘했어?”

아내는 택시기사 남편이 다른 인생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글쎄, 내 체질은 아무래도 택시기사인 것 같아.”

강연을 망쳤으니 앞으로 강연 요청이 들어오지도 않겠지만, 설혹 요청이 와도 그런 곤혹스러운 자리에 다시는 서고 싶지는 않았다. 휴대폰 문자 메시지를 확인한 것은 늦은 저녁이었다.


‘감사합니다. 강사님의 진심을 보았습니다. 최고였어요....’

또 다른 문자 메시지를 열어보았다.

‘청사에 근무하는 초짜 환경미화원입니다. 오늘 강의 처음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잘하셨습니다. 저에겐 하나의 도전이고 감동이었습니다. 노동의 신성함을 다시 깨닫고 자존감을 확신하는 아주 귀한 메시지였습니다. 최고보다는 최선을 다하려고 꿈과 희망 그리고 열정을 키워갑니다. 항상 승리하세요.’   

 


손이 떨리고 시야가 흐려오기 시작했다. 휴대폰과 손등에 눈물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문자메시지는 어쩌면 하늘에서 보낸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아들에게, 아빠에게 용기를 주기 위한......

그렇게 생각할 정도로 형편없는 강연이었기 때문이다. 그때 문자를 보내준 고마운 두 분이 아니었다면 다시는 강연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이후로 강연이 끝나고 받는 문자는 반드시 답장을 드린다. 보내주신 문자는 노트에 따로 옮겨서 소중히 간직한다. 그것이 문자를 보내준 분들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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