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그리고 좀 그런 날
우리 아버지는 감정 표현이 참 서툴다고 생각했다.
자라오면서 늘 그런 생각이 들었다. 학교에서 시험을 잘 봤을 때도, 머리를 깎고 군대에 가던 날도 한 두 마디의 칭찬이나 격려뿐이셨다. 가끔씩은 참 아쉽기도 하고 실망스럽기도 했다. 자식의 대견함에 양팔 벌려 기뻐하시는 모습이나, 베트남전에 참전하셨던 아버지가 군대 가는 아들에게 해줄 수 있는 뜨거운 포옹 같은 것을 기대했던 내 잘못일 수도 있겠지만.
10여 년 전에 아버지와 둘만의 여행으로 전국 일주를 했을 때, 서로 할 말이 딱히 없는 부자 사이에 긴 침묵이 자주 끼어드는 것을 보고, 나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비단 아버지의 무뚝뚝함만이 문제가 아니라 원래 부자지간은 그런 것인가 하는 생각도 하면서도, 나는 나중에 아들을 키우면 그러지 않도록 최대한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새 아들을 둘 키우고 있는 지금,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절대적으로 많지도 않고, 아주 잘 놀아주지도 못하지만, 사랑의 감정은 잘 표현해야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따금씩 얼굴을 부비며 사랑한다고 얘기해주거나 그냥 나지막이 이름을 부르며 눈빛 교환을 하기도 한다. 하루는 내가 얼굴을 부비는데 아이가 자꾸만 웃길래 왜 그런가 하고 물어봤더니 턱에 뭐가 있다는 것이었다. 범인은 내 수염이었다. 주말 이틀 동안 깎지 않았던 수염이 아이의 부드러운 피부에 닿아 간지럼을 태웠던 것이다. 그 순간, 나의 뇌리에 스치는 기억이 있었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있었던 기억. 바로 아버지의 턱수염이 내 볼에 닿던 감촉이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잊고 있던 기억이, 그 순간만큼은 너무나 생생하게 떠올랐다.
그러면서 알게 된 것이 있다. 아버지는 원래 그렇게 무뚝뚝한 분이 아니었던 것이다. 예전에는 그렇게 나를 껴안고 (가끔씩은 술냄새와 함께) 턱수염을 부비셨던 분이 왜 그렇게 달라 지신 걸까?
아마도 내가 점점 자라면서 옛날과는 달라진, 더 이상 아기가 아닌 나를 대하는 것이 어색해졌던 것이 아닐까. 어쩌면 내 기억에는 없지만, 아버지께서 무안하실 정도로 포옹을 뿌리친 어떤 날이 있어서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런 생각을 하니, 마음이 많이 아쉬워진다. 부모 자식 간의 관계에서, 보통은 우리 아버지 세대가 다 그렇다고 쉽게 말하지만, 사실은 알고 보면 절반 이상은 내가 만든 것일 수도 있다. 아버지의 마음은 변한 것이 없는데, 내가 자라고 변하면서 만든 상황. 안타깝게도 그 변화의 과정에서는 인지하지 못했던 것들. 그 모든 것들이 아쉬워진다.
아쉬움을 채우는 것에 있어 달리 방법은 없다. 아버지에게도 두 아들에게도 더 ‘잘’ 하는 수밖에.
원인은 알았지만, 어떻게 ‘잘’ 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은 또 의외로 쉽지 않다. 특히나 아버지께 그 마음을 표현한다는 것은, 어렸을 때나 지금이나 그리 쉽지 않은 일이다. 차근차근, 하지만 너무 늦지 않게 생각하고, 표현해야겠다.
정말로 오랫동안 잊고 있던 사랑의 기억이 수염을 타고 전해졌다. 머리카락이나 눈썹, 심지어 코털에 비해서도 아무런 가치가 없던 턱수염이, 이토록 중요한 일을 할 줄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