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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Oct 15. 2020

시험 공부가 너무 재미있다

새벽 두 시가 넘도록 공부해도 즐겁다

중국어 자격증인 HSK 6급 시험이 이번 주 토요일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이 수요일 자정을 막 넘은 목요일이니, 이제 이틀이 남았다. 원래 나의 목표는 연말 전까지 HSK 6급을 취득하는 것이었는데, 2020년 12월 31일보다 두 달도 더 전인 10월 중순에 치르는 시험이니 그야말로 '시험 삼아 치는 시험'이다.


일요일, 월요일, 화요일, 연속 사흘을 공부하느라 새벽 두 시 반에 잠들었다. 아침에는 평소보다 한 시간 반 늦은 아홉 시에 기상했다. 휴직자라는 신분 덕분에 하루 종일 자고 먹고 설거지하는 일을 제외하고는 중국어 공부밖에는 하지 않고 있으니, 하루에 최소 열세 시간은 시험 준비에 쏟아붓고 있는 셈이다. 내가 마지막으로 이렇게 무언가에 몰두했던 것이 언제였던가. 나는 고등학교 3학년 때도 같은 반 친구와 연애(라기보다는 '사귀는 사이'에 가까웠지만)의 발단 위기 절정 결말을 겪으며 수능 공부를 했던 사람이다. 그때도 지금만큼 열심히 공부했던 것 같지는 않다.


중국어를 공부하는 건 내 일(서비스 기획)과는 손톱만큼도 상관이 없다. 그렇다고 휴직을 한 김에 중국어를 공부해서 복직 후 업무 전환을 꿈꾸고 있는 것도 아니다. 이건 정말 순전히 나의 기쁨과 자기 계발을 위한 공부다. 대학교 때 중어중문학을 전공하면서 정작 중국어에 소홀했던 나를 위한 반성이고, 졸업 후 인사와 사업 개발 서비스 기획 등 중국과는 전혀 관련 없는 업무를 맡으며 조금씩 중국어를 잊어버린 나를 위한 선물이다.


어째서 '선물'이냐고? 중국어를 공부하는 일은 나의 자존감을 단단하게 만들어주는 데 지대한 역할을 한다. 비록 나는 병원을 적극적으로 다니며 아이를 갖겠다고 무급 휴직을 신청했지만, 그러나 벌써 다섯 달이 지났는데 여전히 아이가 생기지는 않았지만, 내가 회사를 쉬며 집에 틀어박혀 백수 생활을 즐기는 동안 동료들은 저마다 멋진 업무 성과를 내고 있지만; 나는 혼자서도 (아마도) 국내에 흔치 않은 '중국어를 아주 잘하는 서비스 기획자'가 되어 가고 있다. 그러니 나만 뒤처지고 있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다.


공부가 이토록 즐거울 수 있는 두 가지 이유


지금 내가 하는 공부가 이토록 즐거울 수 있는 건 두 가지 이유 덕분이다. 첫 번째는 내가 원해서 선택한 공부라는 점이다. 나는 휴직을 하는 동안 코딩이나 파이썬 같은 걸 배워 '프로그래밍 조금 하는 서비스 기획자'가 될 수도 있었다. (아마도 이 쪽이 '중국어 잘하는 서비스 기획자'보다 훨씬 수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혹은 요새 그렇게 전망이 있다고 평가받는다는 데이터 사이언스를 공부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나는 시장의 수요나 전망을 무시한 채 오로지 나의 흥미에만 집중했다.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었고, 중국어 공부를 하기로 선택했다.


두 번째는 시험 성적에 부담이 없다는 점이다. 물론 시험 응시료(11만 원)가 아까워서라도 이번에 좋은 점수를 받으면 좋겠지, 그러나 그렇지 않아도 그만이다. 점수가 만족스럽지 않으면 11월에 다시 봐도 좋고, 내년에 봐도 좋다. 끝끝내 시험에 응시하지 않아도 좋다. 당장 나에게 HSK 자격증을 요구하는 곳 하나 없고, 성적과 상관없이 시험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내 중국어 실력은 일취월장 중이다. 모든 길이 해피 엔딩으로만 향하고 있으니 걱정이 없다.


하고 싶은 걸 한다는 건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그 하고 싶은 게 공부라는 건 얼마나 대견한 일인가. 무엇보다, 한창 공부하는 와중에 이렇게 컴퓨터를 켜고 브런치로 글을 쓰고 있는데도 누구 하나 내 뒤로 와서 뒤통수를 치고 갈 일 없다는 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앞으로도 쭉 이렇게 가볍게 가볍게 공부하면서 살아가고 싶다. 회사에 복귀한 후에도, 아이를 낳고 육아가 시작된 이후에도, 하루 중에 아주 짧은 시간을 내어서라도 내가 선택한 분야의 공부를 꾸준히 지속할 수 있는 삶은 얼마나 멋질까.


내가 혹시라도 백 살까지 살 수 있게 된다면 나는 아마 오십 개의 언어를 구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적당히 오 개 국어 정도에서 만족한 후 바이올린을 배우다가 기적처럼 맛있는 뚱카롱을 구울 수 있는 사람이 될지도 모르지. 전문가가 되지 않아도 좋고, 자격증을 따지 않아도 좋다고 생각하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쩌면 서른다섯이 되어서야 처음 공부한 클래식에 재미를 붙여, 쉰 살즈음에는 '비전문가의 클래식 음악 에세이' 책을 출간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서른다섯, 나의 공부는 이제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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