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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Oct 26. 2020

어학 시험, 제발 이런 문제는 내지 말아 줘

중국어 말하기 시험 TSC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

당신은 인터넷이 청소년들에게 어떤 좋은
/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고 생각하나요?


당신은 교사가 학생을 교육할 때, 많이 칭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나요,
많이 꾸짖는 게 좋다고 생각하나요?


어학 시험 중에 말하기, 쓰기 능력을 평가하기 위해 꼭 이런 걸 물어보는 시험이 있다. 위의 두 질문은 중국어 말하기 시험 TSC의 제5부분 '의견 제시'에 나오는 문제 유형의 예시이다. 화면에 문제가 뜨면 30초 동안 답변을 준비한 후, 50초 동안 대답을 해야 한다. 아, 곤란하다 곤란해. 정말 내 중국어 말하기 실력이 궁금한 거 맞아? 제 답은요. 잘 모르겠어요. 시간을 조금 더 주세요. 하루 정도만 주시면 최대한 고민해보고 내일 돌아올게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는걸요. 인터넷이 청소년들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아니 인터넷이 나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도 바로 답변할 수가 없는데요? 청소년들이 인터넷 게임에 너무 중독되면 학업에 지장이 갈 수 있으니까 나쁜 거라고 볼 수 있나요? 아, 그런데 그건 인터넷이 아니라 인터넷 게임 중독의 문제라고 봐야 할 것도 같고요.


그리고 저는 교사였던 적이 없는데 교수법에 대해 제가 뭘 안단 말입니까. 제가 학생 때는 칭찬을 받았던 것보다 꾸짖음을 당했던 때가 더 많았지만 늘 대수롭지 않게 넘겼던 것 같아요. 직감적으로는 칭찬이라는 단어가 끌리니까 우선 "저는 교수가 학생을 교육할 때, 많이 칭찬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할 수는 있겠지만 그 다음부터는요? 총 답변 시간 50초 중에 나머지 45초는 무슨 말로 채워야 하나요?




사실 이런 의견 물어보기 식 질문에 대처할 때는 꿀팁이 하나 있다. 정말 '자기 의견'을 그대로 답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문제 유형의 제목은 어디까지나 공식 사이트에 '의견 제시'라고 쓰여 있지만, 어차피 이 '시험 - 센터 - 주관업체 - 사람들'은 내 개인적인 의견 따위 전혀 궁금해하지 않는다. 인터넷이 청소년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든 안 좋은 영향을 주든, 답변 내용이 꼭 내 실제 의견과 맞지 않더라도 나는 어떻게든 50초짜리 잘 구조화된 답변만 만들어 내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꿀팁은 나에게는 별로 통하지 않는다. 내가 세상에서 제일 못하는 게 바로 임기응변이란 말이다.


드라마에서 아나운서라는 직업이 나올 때 종종 등장하는 클리셰가 있다. 요새 방영 중인 <18 어게인>에서도 김하늘이 아나운서 면접을 보는 장면에서 이런 상황이 연출되었다. 아나운서가 방송국에서 생방송을 진행할 때, 바로 앞 모니터 (프롬프터)에 대본이 실시간으로 올라와야 하는데, 갑자기 툭, 오류가 발생하며 화면이 꺼진다. 방송은 여전히 On-Air, 그러니 아나운서는 의지하던 대본 없이 애드립으로만 남은 시간을 채워야 한다. 와, 정말로 이런 상황이 나에게 닥친다고 생각하면... 온몸이 경직되며 소름이 오소소 돋는다. 그러나 드라마에서 김하늘은 프롬프터 없이도 멋지게 임기응변을 해내었을 뿐만 아니라 추가적으로 발생한 방송 사고에도 전혀 흔들림 없이 대처해나갔다.


하지만 극 중에서 김하늘은 아주 오랫동안 준비해온 아나운서잖아. 나는 아니잖아. 순간 임기응변을 못해서 거짓말이 들통났던 경험이 살면서 백만 번도 넘었던 것 같다. 아파서 병원 간다고 연차 써놓고 침대에 누워서 잠만 잤던 날, 남편과의 대화 : "오늘 병원 잘 다녀왔어?" "응, 잘 다녀왔지." "의사 선생님이 뭐래." "푹 쉬래." "그리고 또?" "아... 음... 선생님이 내 목이.. 아니 코가... 아....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무슨 말을 꾸며내야 할지 도통 모르겠다) 오빠 사실 나 오늘 병원 안 갔어."


그러니 공손하게 손을 모아 부탁합니다. 부디, 말하기 시험 쓰기 시험은 '지문 요약하기', '사진 묘사하기' 같은 질문들로만 내주세요. 사진을 아무리 복잡하게 구성해도 저는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냥 보이는 그대로 말하기만 하면 되잖아요.


라고 말하지만 나의 글 한 편으로 어학 시험 - 센터 - 주관업체 - 아무튼 그 사람들이 문제 유형을 바꿔주리 만무하다. 질문은 정해져 있으니 나는 답만 하면 된다. 그러니까 어서 내가 제일 싫어하는 '의견 제시' 문제 연습하러 가야지. 총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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