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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Sep 02. 2020

하루 3개 언어 공부의 조건

0. 나의 영어 중국어 스페인어 공부 방법

어느덧 무급 휴직을 한 지 4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작년부터 손꼽나 기대했던 휴직의 낭만 - 피아노를 배우면서 클래식 음악에 입문하고, 가죽 공방을 다니며 내 손으로 가방을 만들고, 요리 학원을 다니는 일 - 은 전례 없는 바이러스의 확산으로 마음에서 떠나보낸 지 오래다. 아무리 십 년을 같은 회사에 다니면서 리프레시가 필요했다지만 이토록 철저하고 꽉 막힌 집콕 리프레시가 될 줄은 몰랐다. 그래도 지난달까지는 심심할 때는 동네 서점에 놀러도 가고, 오후에 사람 없을 시간에 혼자 집 근처 식당에 들러 나 홀로 파스타나 갈비탕을 한 끼 하기도 했는데, 요새는 그조차 어렵다. 나는 지금 일주일째 집 현관문 밖을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는 자발적 격리 중이다.


때문일까, 덕분일까. 집 안에서 나는 하루 종일 밥을 차려 먹거나 설거지를 하고, 틈틈이 집안일을 하지만 그래도 시간이 아주 많이 남는다. 그래서 좋아하는 책도 읽고 자발적으로 공부도 한다. 사실 나는 공부를 아주 많이 한다. 매일매일 하루에 3개 외국어를 공부한다. 영어, 중국어, 그리고 스페인어.


하루에 언어를 3개나 공부한다고 하면 엄마는 분명 눈살을 찌푸리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하나만 제대로 해, 하나만


사실 옆에서 지켜보는 남편도 썩 탐탁지 않은 눈치다.  막 휴직을 했을 때 나는 올해 안에 HSK 6급을 고득점으로 취득하겠다고 큰소리를 떵떵 쳤다. 어쩌면 이를 위해 하루 여덟 시간이든 열 시간이든 중국어에만 올인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건 내 스타일이 아니다. 매일 한 가지에만 파고드는 일, 나로서는 숨이 막힐 듯 답답하다. 나에게는 딴짓을 할 수 있는 숨구멍이 필요하다.  


자신 있게 말하건대, 나는 지금 꽤 효율적이며 효과적인 방식으로 3개 외국어를 동시에 공부하고 있다. 한 번에 여러 언어를 공부하려면 헷갈리지 않느냐고? 전혀.


내가 4개월째 매일매일 3개 외국어를 지치지 않고 공부할 수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각 언어에 있어 나의 숙련도가 각각 다르다.


나는 영어는 편하고, 중국어는 편해지려 하는 단계에 있으며 스페인어는 많이 서툴다. 만약 동시에 새로운 언어를 두 개를 시작한다고 했으면 나는 꽤 헤매었을 것이다. 언어를 처음 배울 때는 기초 단어들을 습득하는 것 외에 문법 구조를 익혀야 하는데, 한 가지 언어의 기초 단어들과 어순도 익숙해지지 않은 상태에서 다른 언어를 시작해버리면 두 언어가 서로 꼬여버리기 쉽다. 예를 들어 나는 고등학교 때 제2외국어로 독일어를 배웠는데, 아직도 스페인어를 하다 보면 십의 자리 수의 단어(ex. 47)를 말할 때 15년 전에 마지막으로 공부한 독일어가 불쑥 튀어나오는 기이한 경험을 하고 있다.


이왕 휴직도 했겠다 시간도 많겠다 외국어를 딱 하나만 더 배워볼까 생각한 적도 있다. 아예 ABC도 모르고 숫자도 셀 수 없는 프랑스어나 러시아어를 하루에 딱 30분씩만 공부하면 휴직 기간이 끝날 때쯤에는 아주 간단한 회화는 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그러나 새로운 언어를 배우는 건, 스페인어의 동사 변형을 완전히 몸에 익히고 기본적인 회화를 편하게 구사할 수 있을 때를 위해 미뤄둬야 한다.


TMI 1. 현재 나의 언어 별 숙련도
- 영어 : 나는 업무에서 자주 영어를 사용하며, 영어로 회의를 하거나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원서 책을 읽거나 신문 기사를 읽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토익 점수는 높지만 결코 네이티브 스피커는 아니고, 상대가 "How are you?"라고 인사를 건네면 자동적으로 "I'm fine, thank you, and you?"를 떠올리는 영락없는 한국인이다.

- 중국어 : 나는 전공 학점이 높지 않았던 중문과 졸업생이며, 10년 동안 회사 생활을 하면서 단 한 번도 중국어를 사용한 적 없다. 휴직 초반 나는 HSK 5급을 공부했으며, 7월 달부터는 HSK 6급을 공부하고 있다. 중국 드라마는 대충 알아들을 수 있는데 뉴스는 '대충 무슨 이야기겠구나' 정도로만 이해하는 편이다.

- 스페인어 : 대학교 때부터 관심 언어라 스페인어 팟캐스트와 MP3 파일을 오래 동안 들었다. 그러나 교재를 통해 제대로 공부한 적도, 체계적으로 문법을 공부한 적도 없다. 휴직을 하고 나서야 인터넷 강의를 신청해서 초중급 문법을 떼고 막 고급 문법에 들어섰다. 얼마 전 시작한 화상 스페인어의 레벨테스트 결과에 따라 DELE A2 교재로 회화를 공부하고 있다.



2. 세 외국어 중에 서로 비슷한 언어가 없다.


영어, 스페인어, 중국어는 각 언어를 배우는 데 있어 서로를 헷갈리게 하는 요소가 별로 없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나는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도중 자꾸 15년 전에 배웠던 독일어가 튀어나와 당황하고는 한다. 그러나 내가 이제는 꽤 편해진 영어와 제대로 공부하려고 하는 중국어는 어순이 꽤 비슷하긴 해도 헷갈릴 수가 없는 언어들이다. 중국어로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어제"라는 중국어 단어가 생각이 안 나서 나도 모르게 "yesterday"라고 말하는 바람에 곤혹스러워할 일은 없을 테니까. 중국어와 스페인어도 마찬가지다.


요새 나는 자꾸 프랑스 문학에 손이 가는 참이다. 일단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너무 좋다. 올 초에는 한창 카뮈에 빠져있었다. 나도 카뮈, 장 그르니에, 아니 에르노, 그리고 뒤라스의 소설들을 원어로 읽어보고 싶다. 그러나 유럽 언어는 지금으로썬 더 이상 욕심내는 건 무리다. 단어 별로 주어진 성별을 외우고 (스페인어 단어의 태양은 남성 명사고 달은 여성 명사다) 주어의 성수 별로 동사 변형을 외우는 건 진짜 진짜 스페인어 하나로 충분하다.



3. 세 개 언어의 학습 방법이 다르다.


어쩌면 이 부분이 나에겐 가장 중요한 요소일 수도 있겠다. 만약 매일 50개의 중국어 단어를 외우고, 30개의 스페인어 단어를 외우고, 또 20개의 영어 단어를 외워야 한다면 나는 머리가 터져버릴지도 모른다. 머리가 그만큼 좋지 않은 것도 있지만, 역시 나는 같은 걸 반복하는 걸 싫어한다. 마찬가지로 나는 매일 오전에는 중국어 문제집을 풀고 오후에는 스페인어 문제집을 풀고 하는 방식도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그렇게 공부할 바에는, 정말 엄마 말대로 지금은 중국어 하나만 제대로 하는 게 나을지도 모른다.


내가 '공부'라는 말에 어울리게 공부하는 건 중국어 하나뿐이다. 문제집을 풀고, 오답 노트를 만들고, 단어를 외우고 플래시 카드를 만들어 복습한다. 학습의 목적은 오로지 HSK 6급 취득. 비즈니스 중국어나 고급 회화는 모두 제쳐두고 6급 시험에서 조금이라도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도록 공부하고 있다. 우선 단기간에 자격증을 딴 이후로, 신문 기사도 찾아보고 회화 연습도 하는 것이 목적이다.


영어에 관해 내가 세 달째 하고 있는 건 원서를 처음부터 끝까지 낭독하는 것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영어로 에세이를 써보기도 한다. 스페인어는 틈틈이 인터넷 강의를 듣는다. 가끔은 동영상 강의를 보는 도중에 따로 노트에 필기해서 외워야 할 표현들에 맞닥트리기도 한다. 그럴 때는 간단히 핸드폰으로 화면을 캡처해둔다. 단어도 절대로 노트에 써가면서 외우지 않는다. 그저 많이 듣고 기본적인 문법 체계를 익히는 게 목표이다.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일의 묘미는, 흥미진진한 TV 시리즈 콘텐츠가 풍부하다는 점이다. 나는 <종이의 집> 시즌 2를 중반까지 보다가 지루해져서 <엘리트들>을 시작했다.




TMI 2 각 언어 별 나의 학습 방법
- 영어 : 매일 20분씩 원서 책을 낭독한다. 책 한 권을 빠짐없이 다 읽으려고 보면 어쩔 수 없이 읽을수록 낭독 속도가 빨라질 수밖에 없다. 조금씩 의미 단위 별로 구절을 끊어 읽는데 능숙해진다. 매주 한 편씩 짧은 글을 쓴다. 구독 중인 유튜브 채널에서 주 1-2회 업데이트하는 고급 회화 표현들을 외운다.

- 중국어 : 내가 공부를 하는 시간 중 80%는 중국어가 차지하고 있다. 역시 마감(자격증 시험)의 위력은 크다. 정량적인 목표가 있으니 할 수 없이 반강제적으로 나 자신을 중국어 공부에 밀어 넣어야 한다. 때문에 중국어 공부는 오로지 HSK 6급 만을 위해 집중하며 매일 6급 단어장을 외우고 종합 문제지를 풀어본다. 영어와 스페인어는 절대로 문제집을 풀지도, 노트에 단어를 써가며 외우지도 않는다.

- 스페인어 : 스페인어는 인터넷 강의를 활용하고 있다.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틀어놓고 설거지도 하고 빨래도 갠다. 이전에는 외출을 할 때마다 오가는 지하철과 버스 안에서 꼬박꼬박 강의를 들었다. 하루에 문법 강의 하나 (30-40분), 단어 강의 하나(15분)를 듣는다. 때때로 넷플릭스로 스페인 드라마로 본다. 지난주에는 주 2회 화상 스페인어 수업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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