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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선의 Sep 09. 2020

완벽한 단어장에 관한 고찰

중국어 공부를 위한 단어장의 이데아를 찾아서



Q1. 다음 중 외국어 공부를 하기에 가장 좋은 단어장은 어떤 것일까요?



- A 단어장은 Ruled 형식의 단어카드가 고리형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 B 단어장은 Blank 형식의 단어카드가 고리형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 C 단어장은 단어 하나에 설명 두 줄의 구성으로 스프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중국어 공부를 하겠다고 사둔 여덟 개의 단어장을 모두 사용했다. 나는 그동안 위 그림의 A 단어장을 세 개 쓴 후, C 단어장을 다섯 개 썼다. C 단어장의 치명적 결함을 발견한 건, 해당 단어장 다섯 개 중 겨우 첫 번째를 다 썼을 때였다. 공부법 책 중 '수학의 정석'이라고 불리는 헨리 뢰디거의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를 이때 읽었다.


나는 그동안 써 왔던 단어장의 장점은 유지하되 단점이 보완된 완벽한 단어장을 찾기 위해 동네 문구점 두 개와 다이소 한 개를 방문하고, 인터넷 문구 사이트에 들어가 '단어장', '플래시카드'로 단어장을 죄다 검색해보았다.

그러나 내가 바라는 단어장의 이데아는 쉽게 찾을 수가 없었다.



단어장에 써넣어야 할 요소는 무엇이 있을까. 영어와 스페인어와 같이 발음과 글자가 (거의) 같은 표음 문자의 경우에는 1) 단어 2) 뜻 3) 기타 설명(예문, 반대말, 유사어 등)이 들어가면 된다. 중국어의 경우 여기에 pinyin이라는 병음(소리 표기)을 추가로 표시해줘야 한다.


그럼 A 단어장에 대해 먼저 이야기해볼까.  

※경고 : 앞으로 당신은 저의 악필을 반복해서 보게 될 것입니다...

맨 처음 중국어 공부를 시작했을 때 나는 A 단어장 앞면에는 중국어 단어를, 뒷면에는 뜻과 병음을 적었다.


단어장을 채울 때는 첫 페이지부터 모든 줄을 꽉 채우지 않는다. 각 페이지의 첫 줄만 쓰고 그다음 페이지로 넘어간다. 그렇게 단어장 마지막 페이지에 도달하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와서 두 번째 줄에만 또 단어를 써나가는 것이다. 마지막 여섯 번째 줄을 쓸 때쯤에는, 첫 번째 줄을 썼을 때보다 일주일 이상 지나가 있기도 한다. 그렇게 할 경우 매번 단어를 채울 때마다 이전에 공부했던 단어들을 시간 간격을 두고 복습할 수 있다. 단점은 첫 두 줄 정도의 단어는 반복을 더 많이 하게 되고, 마지막 다섯 번째 줄 여섯 번째 줄의 단어는 상대적으로 반복 기회가 적다는 점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이미 다 완성한 지난 단어장들도 수시로 시간을 정해두고 꺼내어 다시 학습해야 한다.


다만 이 단어장의 문제는 두 가지였다. 예문을 따로 적어둘 공간이 없다는 것이 첫 번째 문제였다. 각 줄의 세로 간격이 중국어를 쓰기에는 칸이 부족하다는 점은 두 번째였다. HSK 5급 단어를 공부할 때는 그래도 비교적 간단한 글자들이 많아 괜찮았다. 그러나 6급으로 레벨을 하나 높이자 글자들이 눈에 띄게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내가 사용하는 HSK 6급 단어교재에는 DAY 1부터 이런 단어가 나온다.


[镶嵌 : 박아 넣다. 끼워 넣다. 상감하다. (예시, 빨간 보석이 '박혀 있는' 반지)]


A 단어장의 좁은 간격에 이 단어를 '끼워 넣는'데, 내가 쓴 글자를 내가 알아보기도 무척 힘들었다.



답답한 마음에 잠깐 염두에 둔 것이 B 단어장이다.

온통 하얀색 빈칸으로 되어 있는 단어장. 앞 면에는 글자를 큼직하게 써넣고, 뒷 면에는 자유롭게 병음, 뜻, 예문 등을 적어둘 수 있다. 그러나 시중에 파는 단어장은 보통 70매 - 80매 한다. 내가 주중에는 이틀에 80개의 단어를 외우니까 격일로 새로운 단어장을 써야 한다는 말이 된다. 가성비 제로.


그러나 B 단어장의 경우, 자격증 시험날 가장 외워지지 않는 중요 단어(별표 세 개 단어)를 적어 가서 지하철 타고 수험장소까지 가는 길에 사용하기에는 더없이 적당할 것이다.


결국 나는 어느 날 다이소에 갔다가 C 단어장을 무려 다섯 개나 사 오고야 만다.

내가 좋아하는 무민 캐릭터. 그리고 딱 어학 학습 맞춤 용으로 신경 써서 제작된 구성. 특히 단어를 적는 란이 두 줄 간격으로 큼직하게 되어 있어서 중국어 단어를 쓰기에 딱 좋았다. 앞면에만 단어, 병음, 뜻을 모두 표기할 수가 있어 뒷면은 추가로 각 단어 당 예문을 두 줄이나 할애해서 쓸 수도 있다. 하드커버 표지가 단어를 가리는 용도와 뜻을 가리는 용도로 구분되어 있어서 필요에 따라 암기 학습을 하기에도 편해 보였다. 이거다! 이게 바로 내가 찾던 완벽한 단어장이라고!


그러나 C 단어장에는 A 단어장과 B 단어장에는 없는 치명적인 단점이 하나가 있었다.


책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의 3장의 제목은 "뒤섞어서 연습하라"이다. 무엇이든 배울 때는 익숙함을 경계하고 계속 주제를 교차해 가면서 변화를 준 연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플래시카드를 항상 똑같은 순서대로 보면서 연습하면, 나도 모르게 단어들의 순서에 익숙해진다. 특히 지금 나의 단어장 교재는 각 챕터가 주제 별로 단어를 모아놓고 있는데, 음식과 관련된 챕터에는 음식, 요리에 대한 단어들이 등장하고 '긍정적 감정'을 주제로 한 챕터에는 희망의 유사어가 세 단어 나온 뒤에 기쁨이라는 단어가 연 달아 세 개가 나온다. 이 단어들을 순서대로 공부하며 플래시카드에 옮겨 적다 보면, 나도 모르게 happy라는 단어 다음장에 glad가 등장했을 때 단어를 완벽하게 외우고 있지 않음에도 자동으로 '기쁨'을 연상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플래시카드는 섞어야 한다. 학습을 반복할 때마다.


그러나 스프링 방식으로 결합된 C 단어장은 페이지를 섞을 수가 없다. 이것이 내가 또 새로운 단어장을 찾아 나서게 된 경위다.




단어장 시장 조사를 시작했을 때, 내가 생각했던 완벽한 단어장의 조건은 까다롭지 않았다. C 단어장의 구성에 A, B 단어장처럼 고리로만 연결되면 되었다. 혹시 C 단어장까지 세심하게 구성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가로줄 간격이 넓어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봐도 내 눈에 뜨인 건 표지와 제작사만 다를 뿐 결국 구성은 A / B / C 단어장으로 한정되었다.


결국 내가 최종적으로 선택한 건 이거다.

왼쪽이 INDEX 카드. 오른쪽 노랑색은 초기에 사용했던 A 단어장이다.


A7 사이즈의 INDEX 카드. A 단어장과 같은 구성이지만 사이즈가 더 크다. 총 여덟 개의 가로 줄이 있길래, 한 단어마다 넉넉하게 두 줄씩 사용하기로 했다. 이 단어장을 또 단어로 꽉 채우면, 고리를 풀어 페이지들을 자유롭게 섞을 예정이다.




추신. 왜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가. 도대체 단어장이 뭐라고!


단어를 외우는 데에는 단어장(플래시카드) 만한 도구가 없다. 우리의 뇌는 뭐만 새로 배웠다고 하면 금세 잊어버리기 일쑤이기 때문이다. 단어를 외우는 데 중요한 건, 한 번에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한 번 배운 걸 3일 뒤, 일주일 뒤, 2주일 뒤, 한 달 뒤, 이런 식으로 시간 간격을 두고 복습하는 것이다. 이런 기억법을 간격 방법(Spaced Repetition)이라 부른다.


나는 구글에 spaced repetition 이미지 검색을 했다가 아래와 똑같은데 선 색깔만 다르거나 표현만 조금 다른 결과를 무수히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이미지의 포인트는 반복 횟수를 늘려나갈 때마다 망각하는 곡선이 완만해진다는 점인데(=반복할수록 덜 까먹게 된다), 그 정도의 차이가 내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실망스럽다. 아래 표에 따르면 6일 차에 세 번째 복습을 해도 다시 7일 차가 되면 70% 수준으로 또 떨어지는 것이다...  머리가 비상하게 좋은 게 아니라면 네 번이든 다섯 번이든 계속 반복 학습을 해야만 겨우 배운 걸 잊지 않을 수 있다.


https://medium.com/@pruthvikumar.123/using-spaced-repetition-to-supercharge-your-programming-skills



내가 중학생 때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처음으로 알파벳을 가르쳤던 방식은 공책에 A부터 Z까지 한 글자 당 스무 번씩 쓰게 하는 것이었다. A를 스무 번 다 쓰면 B를 스무 번 쓰고... 그렇게 팔이 저리도록 같은 글자를 반복해서 쓰고 나면 학생들은 그 스물여섯 글자의 알파벳 중 몇 개나 기억할 수 있었을까? 그 후 일주일이 지났을 때 학생들은 그중 몇 개를 여전히 기억할 수 있었을까? 요즘에는 초등학생들이 나보다 영어를 잘하는 것 같다. 아무래도 그때처럼 한 단어를 한 번에 무식하게 여러 번 반복해서 써가면서 외우는 방식은 더 이상은 쓰지 않는 것 같다. 정말,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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