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눈빛을 기억할게
솔이와 가장 힘들었던 부분 중 하나, 그건 바로 '폭발'이었다. 아이는 무언가가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면 매우 갑작스럽고 과격하게 화를 표현했다. 만들기를 하다 잘 안되면, 놀이를 하다 지면, 먹고 싶은 걸 먹지 못하면, 하다못해 신발장에서 신발을 급하게 신다가 넘어져도 성질을 부렸다.
나는 아이가 화를 내지 않도록 애를 썼다. 화가 날 것 같은 상황이 보이면 미리 그 요소를 없애려 했고, 화를 내면 다급히 진정시키려 했다. 매일 전전긍긍하느라 내 에너지가 닳아가고 있는 줄도 몰랐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도 모든 상황을 미리 통제하는 건 당연하게도 불가능했다.
점차 지쳐간 나는 아이와 맞서기 시작했다. 물건을 던지면 같이 던졌다. 누군가를 때리면 너도 느껴보라며 같이 때리기도 했다. 아이도 어떤 기분인지, 어떤 감각인지 경험해 보면 조금 달라질까도 싶었다. 같이 소리를 지르고 엉엉 울었다.
이제 와 생각하면, 그 모든 건 핑계였을지도 모른다. 엄마라는 이름 아래 버티려 했던 나는 결국 고갈되어 민낯을 드러내고 말았다.
아이와 매일 한 판 붙고 나면 나는 잠든 아이 옆에서 혼자 2차전을 치렀다. 눈물을 쏟으며 나를 혼내고, 내 삶을 원망했다. 이 고통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 보이지 않아 더 막막했다.
우리는 끊임없이 부딪히고 서로를 할퀴었다. 그날은 발버둥 치는 솔이를 억지로 진정시키려 했었다. 솔이는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저항의 표시로 나를 쥐어뜯었다.
"아야!"
그날의 기억이 충격이었던 건 통증 때문이 아니었다. 내 손등에서 피가 맺히는 순간, 나는 아이의 눈과 마주쳤다. 그런데 거기엔 미안함도, 놀람도 없었다. 오직 분노뿐이었다. 싸우듯이 부딪히는 우리 사이에서, 나는 처음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순간적으로 화를 냈어도 항상 나에게 미안해하고 내 눈물을 보며 속상해하던 솔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자기 정신이 아닌 듯 보였다.
이제 겨우 열 살도 안된 아이인데, 사춘기가 되면 어떻게 될까 싶었다. 내 모습이 어떻든, 언제까지나 엄마를 사랑해 줄 거라는 믿음은 근거 없는 착각이었다.
우리의 관계마저 금이 가고 있었다.
하루는 솔이가 발로 책상 옆을 밀어 책상다리가 끊어졌다. 우지끈 소리에 이어 책상 위 물건이 우르르 쏟아졌다. 엄청난 굉음에 우리는 모두 놀란 눈으로 멈칫했다. 잠깐의 정적. 남편은 솔이에게 소리를 질렀다. 도대체 왜 이러느냐고, 이렇게까지 할 일이냐고.
아이는 여전히 화를 멈추지 않았지만, 나는 그날 보았다. 그 눈빛 속에 나와 똑같은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 무언가를 어찌할 수 없어 불안해하는 눈빛. 그건 나에게 보내는 도움 요청 신호였다.
'엄마, 나 어떻게 해야 해?'
나는 정신이 번뜩 들었다.
솔이와 똑같이 소리 지르기를 멈췄다. 아이가 나를 힘들게 하려고, 나를 괴롭히려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떠올렸다. 저 아이도 힘이 든 거라고,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어린아이일 뿐이라는 걸 말이다.
나는 솔이에게 사과했다. 엄마도 힘이 들어서 그랬다고, 네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라는 걸 잠시 잊고 있었다고. 너를 돕고 싶다고, 너는 나에게 여전히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라고. 우리 방법을 함께 찾아가 보자고 말이다. 다행히 너무 늦지 않았다. 솔이는 여전히 마음이 여리고 착한 아이였고, 부족한 엄마를 사랑해 주는 아이였다.
솔이가 감정이 폭발하려 할 때 내가 사용한 방법을 몇 가지 소개해본다.
첫째, 아이의 말을 믿어주기.
솔이는 때리거나 던지는 행동을 해놓고 "실수로 그랬다"거나 "일부러 그런 게 아니다"라는 말을 자주 했다. 처음에는 자기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회피하려는 태도로만 해석했다.
"거짓말하지 마!"
그래서 주로 이렇게 반응을 했다. 하지만 솔이는 거짓말을 한 게 아니었다. 자기의 머리와 손이 따로 움직이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싶지 않았고, 그러면 안 되는 걸 알았지만 의도와 다르게 행동해 버렸다는 뜻이었다. 그래서 그 의도를 알고 아이의 말을 인정해 주었다. 그러자 자연스럽게 너도 답답하겠다, 속상하겠다는 이해의 감정이 나왔다.
둘째, 화난 자아와 평소 자아를 분리해 주기.
가끔 화가 나려 하는 모습이 보이기 시작하면 먼저 말해주는 것이다.
"어? 앵그리 솔이 나오려고 하네? 어허! 들어 갓!"
옆에 있는 인형을 활용하여 우스꽝스럽게 표현해보기도 했다. 그럼 솔이도 웃으며 인형을 옆에다 쑤셔 넣기도 했다.
셋째, 화가 났을 때 차분하게 숨 쉬자 말해주기.
더 많이 화가 났을 때 주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포인트는 같이 화를 내거나 짜증을 내면 안 된다. 아주 무미건조하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해준다.
"솔아, 숨 쉬어. 숨 쉬자."
당장은 먹히지 않더라도 이 방법의 궁극적인 목표는 아이 스스로가 혼자 있을 때도 자기 자신에게 이 말을 반복할 수 있게 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최근 '솔아, 숨 쉬자.'라며 혼잣말하는 솔이의 모습을 직관했다. 나는 남몰래 기쁨의 눈물을 삼켰다.
넷째, 절대 해서는 안 되는 행동과 대체행동 정하기.
"화내지 마!"라는 식으로 감정을 무시해서는 안된다. 감정은 자연스러운 거지만 행동은 선택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다. '화가 날 수 있다. 그러나 해서는 안 되는 표현 방법이 있다. 바로 물건을 던지거나 때리는 행동이다.'라고 말이다.
대체 행동으로 솔이가 좋아하는 이불을 둘둘 말고 눕는다던가 방에 혼자 들어가기 베개 때리기, 작은 인형 꽉 누르기(집 밖에서의 경우) 등을 함께 이야기 나누고 정해보았다. 놀이치료 선생님은 인형을 때리는 대체 행동은 추천하지 않는다고 했다. 아무래도 인형은 생명체의 느낌이 있기 때문에.
다섯째, 타임아웃(반성의 벽) 시간 갖기.
물건을 던지거나 때리는 행동을 했을 때는 '반성의 벽'으로 가게 했다. 한쪽 벽에 가서 바른 자세로 서고(벽을 보고 서 있지는 않게 했다. 벌이 아니기 때문에.), 5분 동안 말을 하지 않게 했다. 스톱워치를 켜서 눈에 보이게 하고 말을 하거나 자세를 심하게 움직이면 1분 추가. 벌이 아니라 생각할 시간을 갖게 하는 게 목적이라는 점을 강조하는 게 포인트다.
시간이 다 되면 그때 나와 이야기를 나눴다. 억울한 게 있으면 호소도 하고, 사과도 하고, 같이 방법도 찾아본다.
잘못된 행동과 솔이 자신을 일치시키지 않도록 하는 게 가장 최우선 과제였다. 나쁜 행동을 하는 거지 나쁜 사람인 건 아니니까. 바로 행동을 지적하기보다는 잠시 기다려주는 것도 필요했다.
이제는 전처럼 괴롭지는 않다. 예전에 비하면 거의 폭력적인 행동은 없다고도 볼 수 있다. 여전히 나올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때처럼 엄청나게 폭발하지는 않는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솔이와 이야기 나눌 수 있다. 그래서 그때보다는 살 만하다.
그리고 이건 솔이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라, 우리 가족 모두에게 적용되는 분노 조절 방법이다.
나의 방법들이 오늘도 폭발하는 감정으로 전쟁을 치르고 있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 물론 여전히 나도 진행 중이다. 오늘도 우리는 함께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좋은 팁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그날 솔이의 눈빛을 기억하며, 다시금 깨닫는다. 누구도 폭발하는 폭탄이 되고 싶지는 않다는 것을. 우리는 모두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한다. 아직 어린아이 일지라도, 그 마음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솔이의 관심사가 스프런키에서 쿠키런 킹덤으로 넘어갔어요ㅎㅎ 오늘 소개할 작품은 '캔디애플맛 쿠키'라네요. 자작 캐릭터는 아니고 게임에 나오는 걸 미술학원에서 만들어 왔어요. ^^
모두 달콤한 캔디 하나씩 드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