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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은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정상이 되기 위해 애쓰지 않아도 된다면

by 뤼더가든

대학병원 문 앞에서 한참을 망설였다.
큰 병원은 그래도 다르겠지. 진단까지는 아니어도 아이에 관해 어떤 설명이라도 들을 수 있기를 바랐다.

의사 선생님은 인사만 건넬 뿐 다른 걸 먼저 묻지는 않으셨다. 예전의 당황스러움(4화 '병원과 발달센터의 문턱'편 참조)을 다시 겪고 싶지 않았기에 솔이의 상황을 A4종이에 적어갔다.
"저.. 제가 조금 적어왔는데요."
조심스레 종이를 내밀자 의사 선생님은 말없이 내용을 보며 컴퓨터에 입력을 했다.

타닥타닥.
키보드 소리만이 진료실을 가득 채웠다.

잠시 후, 나에겐 솔이가 욱하는 것과 집중력이 부족한 부분 중 어떤 것이 더 우려되느냐는 정도만을 물었다.
그리고 솔이를 보고 물었다.
'학교 다니는 건 어때?', '친구랑은 잘 어울리니? 친구는 많아?' 등의 질문이었다.
의사 선생님은 무표정한 얼굴이었지만 목소리는 다정했다. 솔이는 낯설어서인지 그날따라 더 유난히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지 못하고 몸을 움직여댔다. 시선도 정신없고 말도 횡설수설하는 느낌이었다.
"얘가 긴장했는지 유난히 더 그러네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아이를 다독이려는 나에게, 의사 선생님은 괜찮다며 별다른 말 없이 솔이를 잠시 지켜보았다. 아이의 최근 행동에 대한 18개 문항에 내가 체크한 내용까지 확인한 의사 선생님은 바로 ADHD 진단을 내렸고 약 처방을 해주셨다.

이렇게 바로일 줄은 생각도 못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임상판단으로 전형적인 증상이 보이면 바로 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아마 솔이가 그렇게까지 명확히 증상이 드러나는 아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특정 상황에서 욱하는 행동이 드러나는 것 뿐이라고 말이다. 아니면,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일지도. 아무튼 이렇게 몇 마디 말과 체크리스트 만으로 바로 ADHD라는 진단이 나올 줄은 몰랐다. 더군다나 약 처방까지.

내가 너무 늦게 와서 아이를 더 힘들게 만들었던 걸까 생각도 들었다. 약으로 인한 각종 부작용도 걱정됐다.
"이맘때 많이 와요. 적절한 시기에 오신 거예요."
의사 선생님의 짧은 말이 나를 죄책감의 수렁에서 꺼내주었다. 약은 아주 적은 용량이므로 괜찮을 거라고, 하지만 잘 관찰해서 조정해 가자고도. 갑작스러운 ADHD 진단명 앞에서 안도감과 불안감이 동시에 들었다. 그 동안 아이의 많은 부분이 뇌 발달로 인한 어쩔 수 없는 질병의 한 부분이었다 생각하니 이해가 되기도 했고, 의료적 도움으로 나아질 수도 있겠다는 희망. 그러면서 끝이 잘 보이지 않는 먼 길로 인한 막막함을 동시에 선사했던 것이다.

나는 솔이에게 약에 관해 설명했다. 힘들어하는 부분을 도와주는 것이라고. 몸이 아프면 우리 스스로 낫기도 하지만 약을 먹어서 좀 더 빨리 편히 잘 낫게 도와주는 그런 것처럼 마음도 그런거라고. 솔이의 마음대로 행동이 잘 되지 않아서 힘든 부분이 있으니 그걸 도와줄 수 있을 거라고 무덤덤하게 말해주었다. 아이는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별 다른 거부감이나 질문 없이 약을 삼켰다.
"엄마! 알약이 작아서 꿀꺽 잘 삼켜져! 나 알약 잘 먹지?"
뿌듯해하는 아이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면서도 목이 매여왔다.

'향정신성 의약품'
병원에서 받아 온 약상자의 문구 앞에서 나는 멈칫했다. 거기에는 내 아이의 이름 석자도 함께 있었다. 나는 솔이에게 아무렇지도 않게 말을 했지만 그 빨간 글자 앞을 가볍게 지나칠 수 없었다. 스티커를 찾아 붙이고 약상자를 돌려놓고서야 돌아섰다.

학교에도 약 복용 사실을 알렸다. 혹시 너무 쳐지거나 달라지면 말해달라고. 다행히 처음에 솔이는 별다른 부작용은 없어 보였다. 그게 좋은 건지 아닌 건지 확신하기 어려웠다. 그만큼 약을 먹고도 별다른 호전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학교에서의 연락은 변함없었다. 오히려 '짜증이 심해진 것 같다'는 말만 돌아왔다. 드라마틱한 변화까지 기대한 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이런 식이 될 줄은 몰랐다.

병원에 가서 이야기를 하자 약을 바꿔주었다. 그러자 조금 나아지는 것 같기도 했는데, 문제는 아이가 기운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그냥 조금 그런 날도 있나 싶었는데, 그런 날이 계속됐다.
어디 나가자 하면 강아지처럼 좋아하던 아이가 옷 갈아입고 집 앞 산책 가는 것도 귀찮아했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자."
겨우 설득해 억지로 데리고 나가도 10분도 안 되어 힘 없이 비척비척 걸음을 옮겼다.
먹는 거 소리면 귀가 쫑긋하던 아이가 먹는 둥 마는 둥 했다. 보는 사람마다 왜 이렇게 살이 빠졌냐고 물었다. 통통했던 솔이가 삐쩍 삐쩍 말라갔다. 몸무게가 갈수록 줄었다.
"엄마, 자고 싶은데 잠이 안 들어."
괴로워하며 새벽까지 뒤척거렸다. 학교에서의 생활은 얼마나 달라졌는지 확연하게 느껴지지도 않는데 집에서는 시들시들한 모습만 보이니 속이 타들어갔다.

이후 병원에서 다시 약 조절을 몇 번 거쳤다. 그래서 현재는 아침과 저녁에 먹는 약 두 가지로 정착했다. 방학인 지금은 잠시 단약 중이다.
솔이에게 묻자 약 먹고 안 먹고 차이를 모르겠다며 그저 웃는다. 주로 하루를 같이 보내는 언니 율이는 솔이가 약을 먹지 않자 '더 정신이 없어졌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좀 더 행복해 보인다'라고도. 율이의 표현이 정확한 듯 했다. 안정적으로 보이는 것과 행복해 보이는 것 중에서 택일할 수밖에 없는 건가 싶어 입이 썼다.


예전에 비하면 솔이는 많은 부분이 좋아졌다. 가끔 솔이가 과격하거나 부적절한 모습을 보일 때면 남편이 "오늘 솔이 약 안 먹었어?"하고 물었다. 솔이를 '문제아'로 보는 것 같은 남편에게 짜증이 났다. 누구나 항상 누군가의 마음에 드는 행동만 할 수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솔이를 약에 의존하게 하고 싶지도 않았고, 누군가가 그렇게 바라보는 것도 싫었다. 그런데 남편의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났던 건 어쩌면 내 생각이 들켰기 때문이었을지도 몰랐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을 했으니까. 심지어 아이까지도 스스로 약을 찾는 모습에 마음이 아팠다.

약의 정확한 효과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도움이 되겠지 생각은 하면서도 마음 한편이 늘 씁쓸하다. 정말 도움이 되는 게 맞는 걸까? 내가 그렇게 믿고 싶은 걸까?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솔이가 편해지길 바라면서도 무언가가 항상 마음에 걸린다.

약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장애인복지 학회에서 스스로 ADHD인이라 밝힌 발표자다. 사회생활을 하는 많은 ADHD인들이 적절한 모습과 역할수행을 위해 약을 추가로 먹어가면서 지낸다고. 그리고 그날도 약을 추가로 먹고 왔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던 그 사람.
'어떤'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반복하던 그의 모습을 불편하게 바라보던 나. 하지만 그 자리에서 발표하는 그 사람이 나의 솔이였더라면 하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는 그 말버릇이 전혀 거슬리지 않았다. 그저 거기에서 발표를 하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대단하고 대견했다.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괜찮은 모습을 보이려고, 최소한 이상하게는 보이지 않으려고 얼마나 애를 쓰며 살아가고 있는가. 나 역시 어설프고 부족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 잔뜩 긴장한 채 살아가고 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 판단 기준은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일까. 모두를 긴장하게 만드는 그 기준이 말이다.
완벽하고 다듬어진 모습만이 아니라 조금 더 다양한 모습도 받아들여질 만큼 부드러워진다면, 단순히 장애가 있으니까 그냥 이해해 주는 측면이 아니라 모두에게 적용되는 그 기준 자체가 말이다. 그렇다면, 우린 모두가 서로를 조금 더 편안하게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 좀 더 편안해질 수 있지 않을까.

약에 관해 많은 논란이 있다. 나 역시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하지만 아이가 생활하면서 받을 온갖 부정적 피드백을 완화시킬 수 있는 방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고 투약을 계속할 것이다. 점점 용량을 줄여나가고 있고 언젠가는 약 없이도 단체 생활을 잘해나갈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한다.
만약 평생 약의 도움을 받게 되더라도 훨씬 더 단단한 마음으로 자신의 선택에 따라 조절하여 활용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많은 것이 변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사회와 가치의 기준, 환경, 문화 등이 지금보다는 조금 더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솔이가 단지 ‘이상해 보이지 않기 위해’ 약을 먹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오기를. 그리고, 그 선택이 강요가 아니라 진짜 ‘선택’이 될 수 있기를.

그런 세상에선 나 역시도 훨씬 편안하게 사람들 앞에 나설 수 있지 않을까. 있는 모습 그대로 긴장하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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