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괜찮아' 보다 필요한 말
지난 글에서 감정폭발에 관해 이야기했다. 아이가 감정을 조절하기 어려웠던 상황들은 다양했지만, 그중에서도 반복되던 순간이 있다. 바로 만들기와 그리기를 할 때였다.
솔이는 미술활동을 유난히 좋아했다. 독특한 재료로 기발한 작품을 후다닥 만들어내거나, 세밀한 캐릭터 그림에 재치 있는 말풍선까지 곁들이기도 했다.
나는 늘 감탄했다. 오랜 시간 집중하는 것도 기특했고, 기발한 아이디어와 빠른 속도도 신기했다. 집중하면 삐죽 나오는 입과 오동통한 손가락까지 사랑스러웠다.
"와~ 정말 잘 만들었다. 이거 네가 정말 만든 거야? 진짜 대단하다!"
솔이는 내 칭찬에 기분이 으쓱해져서 작품설명을 한참 해주기도 했다. 이렇게 아이 스스로도 자신이 만들어낸 결과물에 만족하거나 뜻대로 진행이 될 때는 괜찮았다.
문제는 그렇지 않은 경우였다.
자신이 생각하는 머릿속의 이상과 실제 결과물 사이의 격차가 크게 될 경우 짜증이 심해졌다. 가끔은 선 하나 삐져나간 것뿐인데 종이를 벅벅 찢었다. 특히 유튜브에 나오는 영상을 보고 한창을 집중해서 만들다가 그런 일들이 많았다. 영상 속의 유튜버들은 순식간에 굉장한 퀄리티의 결과물을 만들어냈으니까.
처음엔 신나게 만들다가도, 뜻대로 되지 않으면 얼굴이 굳어졌다. 한숨을 쉬며 손놀림이 조급해졌고, 결국 ‘망했어!’를 외치며 종이를 구겼다. "난 왜 이렇게 못하냐고!’ 하며 스스로를 질책하거나, ‘저 유튜버들 다 거짓말쟁이야!’라고 소리를 치기도 했다. 심혈을 기울여 완성한 작품도 작은 한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망설임 없이 버려 버렸다.
때로는 잘 되지 않는 것 같아 도와주려는 내 손길에 더 짜증을 내버릴 때도 있었다.
"솔아, 이건 이렇게 해보면 더 좋을 거 같아."
"악!! 망했어! 구겨버려! 왜 이렇게 안 만들어져?"
도와주려고 한 건데 받아들이지 못하는 솔이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다. 마음대로 안 된다고 그렇게까지 화를 내는 것도 솔직히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도 어쨌든 그렇게 말하는 솔이를 달래주려 했었다.
"아냐, 예쁜데 왜? 잘 만들었어.", "잘만 그렸구먼. 이 정도면 대단한 거야.", "괜찮아. 저 사람들은 영상으로 찍어서 올리니까 더 좋아 보이는 거야."
하지만 이런 말들은 솔이에게 전혀 효과가 없었다. 참을 인자를 새기며 아이를 토닥이려는 시도는 가끔 시행되었고, 자주 함께 폭발했다. 결국 이런 말들로 끝나곤 했다.
"너 이거 하는 이유가 뭐야? 즐거우려고 하는 거 아니야? 근데 이게 뭐야? 이럴 거면 그냥 하지 마!!!"
아이가 미술활동을 좋아하지만 충분히 욕구를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할 방법을 몰라서 많이 헤매었다. 다행스럽게도,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이를 세심하게 관찰해 주는 아이와 잘 맞는 미술학원을 찾았다. 그곳에서 선생님과 나눴던 대화나 그동안 고민하며 알아냈던 부분들을 이번 글에서는 나눠보고자 한다.
이제는 솔이의 반응을 다르게 바라보려고 한다. 내가 무심코 했던 말들이 오히려 아이를 더 좌절하게 했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더 효과적인 방법을 찾아보기로 했다.
첫째, 결과물에 대한 평가 대신 과정을 묻기.
딱 보자마자 만들어낸 결과물을 보고 칭찬이나 평가를 해주었던 건 솔이에게 오히려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완벽주의 성향이 있는 아이에게 결과에 대한 칭찬은 오히려 점점 만족할만한 결과물에 집착하게 한 것이다. (물론 내 칭찬만으로 그런 건 아닐 테지만 말이다.)
대신 "만들면서 어땠어? 즐겁게 만들었어?"라고 그 활동을 할 때의 감정과 기분이 어땠는지를 먼저 물었다. 무언가 만들었을 때 만든 결과물은 잠시 옆으로, 즐거웠는지 감정에 먼저 초점 맞춘 후, 그다음에 결과물을 보고 이야기 나눠도 늦지 않았다.
그리고 솔이는 칭찬보다는 경청과 공감이 더 동기부여 되는 아이였다. 만든 결과 자체보다는 그것을 통해 하고픈 말에 진정한 관심을 써주는 것이 더 중요했다. 만들면서의 기분과 더불어 작품 설명을 요청해 보자. 작가의 의도를 아이는 신이 나서 설명을 해줄 것이다.
완전히 완성된 결과물만을 보고 칭찬해 주는 것이 아니라 그전에 과정을 끊어서 짚어 주는 것도 필요했다. "와, 머리를 완성했다! 와 몸통을 완성했네!"라고 말해주는 것이다.
둘째, 감정 수습 대신 감정 동의해 주기.
예를 들어, 선을 그리다 삐뚤어졌다. 내가 보기엔 별 거 아닌데, 아이는 나라라도 망한 듯 비통해한다. 그럴 때 "아냐, 예뻐. 괜찮아."라는 식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오히려 "아니야! 안 괜찮다고!!" 라며 반박하느라 더 짜증을 내고는 했다. 아마도 부정적인 감정은 빨리 정리해주고 싶었던 내 욕심이 아니었나 싶다.
차라리 "짜증 나겠다. 앗! 똑바로 그리고 싶었을 텐데 삐뚤어져서 속상하겠다. 아쉽겠다!"라고 말해주면 아이는 혼자 한숨을 작게 내쉬고 다시 작업에 몰두하기도 했다. 때로는 아이보다 더 오버스럽게 안타까움을 표현해주기도 했다.
마음에 안 들게 그려진 그림을 자기 나름대로 수정한 모습을 보며 "와, 신사임당 같아!"라고 말해주기도 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던 솔이는 신사임당의 포도그림치마 이야기를 들으며, 당장은 실패로 보이는 결과물을 통해서도 더 좋은 것들을 만들어 낼 수도 있음을 흥미롭게 들었다. 감정을 공감받은 아이는 그런 이야기를 귀 기울일 마음의 여유가 생겼다.
셋째, 가르치기 대신 선택권 주기.
솔이는 스스로 통제력을 발휘하는 걸 좋아하는 아이였다. 그리고 기획하고 구상하는 능력도 뛰어난 아이라고 했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가 잘 안 된다고 할 때 옆에서 이래라저래라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걸 매우 싫어하는 것이었다. 도와주려고 알려준 것뿐인데 왜 이렇게 신경질을 낼까 싶은 생각은 아이를 잘 몰랐기에 했던 생각이었다. 엄마의 도움이 참견이나 영역 침해로 느껴졌을 것이다.
그렇다고 아이를 '네 맘대로 알아서 해라' 하고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아직 미숙한 부분이 있기에 도와줄 필요는 있다. 그럴 땐 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방법이라고 한다. "이렇게 해." 보다는 "어떻게 도와줄까?"나 "이거랑 이거 중 뭐가 나을까?"하고 묻는 것이다.
ADHD 아이들은 집중을 전혀 못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에는 오히려 엄청난 집중력을 보인다. 솔이의 경우에는 책을 읽거나 미술 활동을 할 때 그 집중력이 발휘된다. 어른이 읽기에도 쉽지 않은 책 한 권을 읽어내기도 하고, 3시간 연속으로 미술활동을 하기도 한다.
아이들을 셋 키우다 보니 동생들의 특성이 하나 보인다. 언니와 자기를 비교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 역시 동네 언니들이 종이인형을 깔끔하게 자르는 모습을 보고, 짜장면을 입가에 묻히지 않고 깨끗하게 먹는 모습을 보고 대단해 보였던 시절이 있다. 언니들은 당연스레 해내는 일들이 나에게는 어렵기만 해서 좌절하곤 했었다.
"너도 더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잘할 수 있게 되는 일들이 있어. 과거의 너를 생각해 봐. 가위질, 색칠하기, 풀칠 모두 어려웠지만 지금은 아무렇지도 않게 하잖아?"
자기를 책망하던 솔이에게 해주었던 이 말을 오늘은 조금 달리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대단해 보일 수 있는, 아니, 실제로도 대단한 일이라고.
그만큼의 시간과 연륜을 통해 얻어낸 능력과 경험치라고. 그러니 계속해나가자고.
지금까지 잘 해온 것처럼 앞으로도 잘 해낼 수 있을 거라고.
어쩌면 현실과 이상사이에서 괴로운 건 아이뿐만이 아닐지도 모른다.
지금 이 순간도 성장하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오늘의 작품은 '샤벳 상어맛 쿠키'입니다. 솔이가 제일 좋아하는 쿠키런 캐릭터랍니다. 좋아하는 이유를 물어보니 "귀여우니까!"라고 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