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는 괴롭힘
솔이는 학교에 갔다 중간에 돌아오는 일이 종종 있었다. 그날도 또 그런 날이겠거니 했다. 그런데, 가방을 멘 채 현관에 우두커니 선 솔이의 표정이 어딘가 이상했다.
"무슨 일 있었어?"
"반 애들이 자꾸 나한테..."
말을 마치지 못한 아이의 눈가에 눈물이 차올랐다. 평소와는 분명 다른 느낌이었다. 나는 놀란 눈으로 솔이를 끌어안았다. 아이의 몸이 작게 떨리고 있었다.
솔이는 반에서 주로 혼자 지냈다. 쉬는 시간에는 종합장에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는다고 말했다. 이미 무리가 형성된 교실 안에서, 솔이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 보였다. 친구들의 말을 가만히 들어주거나, 억지로라도 어울리는 성격이 아니었다. 그보다는 자기만의 세계를 지키는 쪽에 가까운 아이였다.
사실 그런 솔이가 늘 걱정이었다. 담임 선생님은, 친구들과 특별한 갈등을 일으키는 것도 아니고, 수업 태도도 나쁘지 않기 때문에 괜찮다고 했다. 그 말에 안심했다. 솔이는 그냥 혼자를 선택한 것으로 보였고, 혼자여도 나쁜 것만은 아니라고 나 역시 생각했다. 너무 친구를 사귀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과거의 나는 항상 무리에 어울려야 한다는 부담과 그러지 못하는 성격 사이에서 항상 갈등해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다른 이야기였다.
반에서 아이들 일부가 교실 안에서 공을 차고 놀다가 공이 솔이의 자리로 굴러갔다고 했다. 교실에서 공을 차고 놀았다는 것 자체도 놀라웠지만 더욱 뜨악했던 건 그 아이들의 말이었다.
"야, ooo한테 들어갔다. 으웩!"
마치 더러운 곳에 공이 빠지기라도 한 것처럼 아이들은 비명을 질렀다는 것이다. 지혜로운 솔이는 그 아이와 맞부딪히는 것보다 그 장소를 벗어나는 것을 택했다. 그래서 아무 말 없이 가방을 메고 무작정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
더 큰 문제는 이게 처음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바닥에 떨어진 연필을 누구 거냐 묻다가 솔이의 이름표를 보더니 "웩! 이거 ooo 거잖아!"라며 마치 못 만질 물건이라도 만진 것처럼 호들갑을 떨었던 적도 있다고 했다. 그 무리 외에 또 다른 여자 아이들 무리도 자기를 뒤에 두고 이름만 언뜻 들리게 말하며 수군거렸다는 얘기도 했다.
"아니, 왜 사람을 그렇게 취급해? 내가 뭐, 바이러스야?"
솔이는 원망스러운 목소리로 엉엉 울었다.
"세상에, 어떻게 그래. 엄마는 듣기만 해도 이렇게 속상한데 우리 솔이 너무 힘들었겠다."
이제 겨우 10살인 어린아이들이 어떻게 그런 말과 행동을 할 수 있는 건지. 그 아이들의 부모님은 그걸 알까? 주변에 다른 아이들은? 선생님은? 솔이가 학교에서 돌아온 것조차 알기는 하는 걸까? 이야기를 듣는 내내, 가슴에서 뜨겁고 둔탁한 덩어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원망과 비난, 내 마음에는 잔뜩 날이 섰다.
아이가 느꼈을 속상함, 수치스러움, 고립감, 외로움. 무엇보다 그 안에서 솔이가 견뎌야 했을 그 무거운 감정들을 이제야 알아차렸다는 미안함. 사실 아이가 이런 말을 한 건 처음이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괴롭히는 남자아이들이 있다고 했지만 흔한 장난 정도로만 생각하고 넘겼었다. 학교 상담 선생님조차도 그런 아이들의 말은 무시하고 넘기라고 얘기해 줬고, 나 역시 가볍게만 여겼었다.
내가 조금 더 일찍 심각하게 받아들여줬더라면...
하지만 감정적으로만 해서 될 일이 아니었다. 후회보다는 대처가 중요했다.
솔이의 말을 일단 충분히 들어주었다. 직접적으로 다투거나 과격한 행동 대신 집에 와서 나에게 이야기를 해준 솔이에게 고맙다고, 잘했다고 말해주었다. 그동안 잘 견뎠다고, 고생했다고도. 그리고 무엇보다 더 이상 혼자 힘들어하게 두지 않을 거라고도 말해주었다. 솔이가 원하는 바도 확인했다.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을 하자 사실 관계를 확인해 보겠다고 했다. 그런데 사실 자체는 맞다고 확인을 해 준 후 감감무소식이었다. 솔이는 반 아이들의 이름을 잘 몰랐다. 괴롭힌 아이들의 이름을 아무리 물어도 모른다고만 했다. 물론 학년이 거의 끝나가는 시기에 반 아이들 이름을 모른다는 게 평범한 건 아니라는 건 안다. (솔이는 그만큼 주변 친구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은 채 일 년을 보내왔다. 더 속상한 마음이었다.) 그렇다고 아이가 이름을 모르니 그 애들을 특정하기 어렵다고 속수무책으로 방치해놓고 있는 선생님의 방식이 이해되지는 않았다.
물론, 담임 선생님도 여러 사정은 있었던 것 같다. 내가 조금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했던 아쉬움은 여전히 남지만, 결론적으로는 그 남자아이들을 찾아내 사과도 받았다. 4학년 반 배정에서는 모두 떨어질 수 있도록 요청도 했다.
다행히 잘 마무리는 되었지만 씁쓸했다. 솔이의 어떠한 특성이 그 아이들로 하여금 그런 행동을 하게 했는지 분석하게 됐다. 앞으로 이 일이 반복되지 않아야 한다는 매우 합리적인 핑계 때문이었다. 오만가지 생각을 하다 보니 ADHD의 특성과 더불어 우리 아이가 비싸고 깔끔한 옷을 입고 다니지 않아서 인가라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내 아이가 덜 튀고 더 깔끔해 보이면 나아질까 싶었다. 그래서 가방과 옷을 새로 사주었다.
그리고 얼마 전, <<붕대감기>>라는 소설을 읽다가 문득 멈춰 섰다. 나는 그제야 알았다. 내 아이를 달라 보이게 만드는 것만이 해답은 아니었음을.
"왕따를 당하는 아이는 왜 왕따를 당하는가? 이런 질문에는 '그런 이유 따위는 없다'고 대답하는 게 옳다. 누군가를 따돌리는 인간들이 잘못이다. 그런 행위에 이유를 부여해 정당화해 주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당시 세연은 자신이 왜 그런 취급을 받는지 알고 있었다. 모두가 알았고, 세연도 알고 있었다. 세연은 엄마의 파운데이션을 얼굴에 바르고 다녔다." - 윤이형, <<붕대감기>> 중
이번 일을 겪으며 두 가지 상반되게 느껴지는 생각을 했다. 아이의 학교 안 괴롭힘이나 따돌림에 관해 너무 쉽게 생각해서 안 된다는 것. 그런데 동시에 이런 일이 반복될까 봐 미리부터 곤두서있는 나를 발견했다. 조금만 솔이가 소외당하는 것 같은 이야기가 들리면 더 귀가 쫑긋해지는 것이다.
발달장애 자녀를 키운 어머니가 생각났다. 내 아이가 밖에서 부당한 대우를 당할까 봐 전전긍긍하고 보호하는 태도를 고수하게 되던 그 모습이. 처음부터는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 나와 같은 일이 반복되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들을 무턱대고 비난할 수만은 없었다. 이렇게 나는 나와 다르다고 생각했던 사람들을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어디까지가 지켜봐도 되는지, 어디부터 개입해야 하는 건지 여전히 헷갈린다. 아이를 지키고 싶은 마음과, 지나치게 뾰족해질까 두려운 마음 사이에서 매 순간 흔들린다. 그래도 분명해진 건 있다. 힘든 일이 생기면 솔이와 함께 이야기 나누고 방법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서로에게 든든한 편이 되어준다는 것을 느꼈다. 그 자체로도 우리에겐 충분히 의미 있는 시간이 되었으리라 믿는다.
오늘의 커버 이미지
: 솔이가 드디어 쿠키런에서도 자작캐릭터를 만들기 시작했네요. 이름은 '녹차드래곤쿠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