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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와 함께 맞는 아침

학교에 무사히 도착하기까지

by 뤼더가든 Mar 17.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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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이가 학교에 입학하면서 아침 시간은 나에게 새로운 도전 과제가 되었다.   

  

일단 잠에서 깨우는 것이 첫 번째 관문이었다.

솔이는 밤에 잠이 잘 들지 않는다며 뒤척이고, 아침이 되면 깨기 힘들어했다. 처음엔 약물 부작용인가 싶어 안쓰럽기도 했는데, 가만 보니 이건 그냥 날 닮은 거였다. 전날 잠든 시간과 상관없이 아침은 늘 힘들다. 난 이런 특징 때문에 아빠에게 '게으르다'는 꾸중을 많이 듣고 자랐다. 그러기에 솔이에게 똑같은 말을 듣게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일어나라~ 게으른 내 친구야~'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깨워야 했다. 내 진심과 다른 가사였지만. 빨간내복야코의 익살스러운 노래를 틀었다. 눈을 뜨게 하는 효과는 있었지만, 이후 영상을 계속 보려 했고 그걸 멈추게 하는 게 더 힘들었다. 기상나팔소리, 모닝콜 알람송 등 온갖 음원을 최대 음량으로 키우고 귀에 갖다 대보기도 했다. 솔이는 몸을 조금 꿈틀거릴 뿐 이불을 다시 뒤집어쓰고 짜증을 내버렸다.

"일어나라, 좀!"

온갖 방법을 동원해도 좀처럼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 솔이를 향해 결국 윽박지르곤 했다. 큰 목소리에 놀란 솔이가 벌떡 일어나게 하는 당장의 효과는 있을지는 몰라도 모두의 기분을 아침부터 망쳤기에 이건 가장 좋지 않은 방법이었다.

 

웅크리고 자고 있는 솔이의 몸을 끌어안으면 뽀송하고 따끈하다. 솔이는 다 큰 어린이인데도 아가 향이 난다. 머리를 쓸어주고 볼을 어루만져주면 ‘이쁘다’, ‘귀엽다’ 소리가 절로 나온다. 뽀뽀도 하고 부드럽게 만져주면서 이 말을 하면 어느새 솔이가 내 말을 듣고 있는 걸 알 수 있다. 솔이의 입가에 미소가 맺힌 게 보인다.

"일어나자, 솔아? 지금 8시 다 됐어. 일어날 거지?"

이 방법이 가장 무리가 없다. 부드러운 스킨십을 좋아하는 솔이도, 그런 솔이를 안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도 가장 만족스러운 방법 같다. 다만, 시간이 좀 더 걸리기 때문에 여유를 갖고 시작해야 한다.      


솔이가 잘 일어날 때면 잘했다는 칭찬 대신 아이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 네 덕분에 내가 편하다고. 그리고 예전에 비해 정말 잘 해내고 있음을 강조, 또 강조한다.

"솔아! 네가 바로(혹은 혼자, 일찍, 잘) 일어나니까 엄마가 훨씬 편하다. 아침에 엄마 일이 반절은 줄어든 것 같아. 정말 고마워!"     


두 번째 관문은 머리 빗기다.

솔이는 머리카락이 당겨지는 통증에 유난히 민감하다. 엉킨 머리카락을 조금이라도 세게 빗게 되면 온갖 비명과 울분을 토해낸다. 누가 소리만 들으면 애 잡는 줄 알겠다. “이게 뭐가 아프다고 그래?”라는 말이 목까지 차올라도 멈춘다. 아이는 정말 아픈 거니까.

그렇다고 솔이가 모든 아픔에 과민하게 반응하는 엄살쟁이는 아니다. 어떨 땐 둔하다 싶을 만큼 아픈 걸 그냥 넘길 때도 있다. 가령, 솔이는 열이 38도가 넘어도 멀쩡하다. “엄마, 나 머리가 조금 아픈 거 같아.”라고 하면 다급히 해열제부터 챙겨 온다. 이미 39도가 넘었을 것임을 경험으로 알기 때문이다. 체온계로 재보면 여지없다. 솔이는 머리카락에 조금 더 예민할 뿐이었다. 집을 나서면서 곧바로 산발이 되어도 고무줄을 한번 덜 돌려 묶는 수밖에 없다. 덕분에 나는 조심스럽게 머리를 빗는 능력치가 향상되었다.     


 번째 관문은 옷 갈아입기다.

솔이는 초등 중학년이 되었지만, 아침에는 주로 내가 옷을 갈아입혀 준다. 혼자 알아서 하라고 넉넉히 기다려줄 수 없다. 못해서가 아니다. 누구보다 빠른 ‘소닉’ 같은 솔이지만, 하기 싫은 것 앞에서는 세상 느긋해진다. 그렇다고 솔이와 아침마다 다툴 수는 없는 일이다. 혼자 하는 건 다른 여유로운 시간에 가르쳐도 늦지 않는다. 아침부터 언성을 높이고 기분이 상하는 것보다는 그냥 해주는 편을 택한다. 때에 따라서는 바지만 입혀주고 티셔츠는 입게 한다던지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한다.

누군가와 비교할 필요도 없다(특히 동생과는 비교 금지. ‘어린 동생도 하는데 너는 왜?’ 같은 말은 조심하자). 요즘에는 그래도 벗기까지는 후다닥 혼자서 잘한다(가끔 입는 것도 성공).      


마지막 관문은 학교에 도착하는 것이다.

솔이는 늦는 것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조금 서둘러야 한다는 건 알지만, 마음이 조급하지 않은 듯했다. 처음에는 그런 솔이가 못 미더워 더 재촉하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자꾸 다투게 되었다. 그래서 이제는 너무 서두르지는 말자로 생각을 바꿨다. 차라리 5분 더 일찍 일어나는 쪽으로. 그리고 계속 말해준다. 빨리 가, 넌 왜 안 서두르니라는 식보다는 그냥 시간을 알려준다. 지금 8시야. 8시 10분이야. 30분에는 출발해야 해. 10분 남았어. 이런 식으로 말이다.      


겨우 제시간에 집에서 출발을 시켜도 끝난 게 아니었다. 출발한 지 한참 되었는데 등교 확인 알림이 오지 않았다. 막내를 정신없이 등원시키고, 학교 교문까지 두리번거리며 찾아가 봤다. 그제야 교문을 통과했다는 알람이 왔다. 나중에 물어보면, ‘멍 때리고’ 생각하다가, 혹은 앉아서 휴대폰으로 게임을 하다가 늦었다고 (자백하기도) 했다.

영상통화를 하며 등교시키기도 했다. ‘턱턱 슥슥’ 아이의 걸음 소리를 들으며 나는 막내 등원 준비를 했었다. 몸이 하나인 내가 아이 둘을 동시에 돌볼 방법이었다. 생각보다 효과가 괜찮았다. 우린 따로였지만 함께 길을 걷는 것 같았다.     


어느 날은 아이가 집에서 출발하고 시간이 꽤 흐른 후 돌아온 적도 있다. 때아닌 도어록 소리에 놀란 나를 보고 솔이는 우울한 표정으로 현관에 선 채 말했다.

“학교 가기 싫어.”

한파주의보가 내린 그 추운 날, 아이는 집 앞 놀이터에 앉아 있다 돌아온 것이다. 그런 날은 혼내지 않고 집에서 쉬게 해 주었다.     


솔이는 여전히 아침에 일어나는 걸 어려워하고, 머리 빗는 걸 괴로워하며, 옷 갈아입는 걸 귀찮아한다. 가끔 등굣길에 사람들과 주변을 관찰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멈춰 있기도 한다. 그래도 반복을 통해 나름의 등교 루틴을 잡아가고, 규칙을 익혀가고 있다. 조금씩 익숙해지고, 무엇보다 이런 경험을 통해 나와 솔이는 서로를 좀 더 알게 되었다.     


아이마다 각자의 특징이 있다. 양육자의 환경과 상황도 모두 다를 것이다. 챙길 것도 많고 시간도 제한적인 바쁜 아침은 모두를 더욱 예민해지게 하고, 그래서 더 부딪히기 쉽다. 정답은 없겠지만, 당장 해야 하는 일에 조급해하거나 서로를 비난하기보다는 함께 방법을 찾아가는 게 필요한 것 같다. 어떠해야 한다는 정해진 틀보다 중요한 건 아이와 양육자가 모두 기분이 상하지 않는 선에서 서로에게 적절한 방법을 찾아가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요즘에는 막내가 초등학교 병설유치원에 가게 되어 셋이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간다. 조금 일찍 일어나 길을 나서고, 두 아이의 작은, 그리고 조금 더 작은 손을 잡고 걷는 아침 시간이 나쁘지 않다. 이런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니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이런 생각을 하다니 싶었다. 예전에는 너무 괴로워서 그저 끝나기만을 바랐었는데.


나, 정말 살 만해졌구나.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오늘의 커버이미지는

알록달록 무지개 색깔로 만든 작품입니다.^^

폼폼이를 가지고 이런 걸 만드네요  

내가 할게 라며 글루건을 혼자 사용하는 모습을 보니 많이 컸구나 싶습니다.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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