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학년은 쉽지 않아
2022년 3월, 드디어 솔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어린이집 졸업식과 초등학교 입학식 사진, 하얀 마스크 속 우린 모두 웃고 있었지만 하나같이 불안했다.
잘할 수 있을까? 과연 잘 다닐 수 있을까? 어린이집보다 더 엄격한 규칙과 덜 세심한 선생님의 손길 속에서 학교생활을 과연 솔이가 어떻게 받아들이고 적응해갈 수 있을까?
첫 시작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생각보다 아침에도 잘 일어나 학교에 나섰다. 자기 몸의 반절 만한 민트색 가방을 메고, 언니와 손잡고 걸어가는 단발머리 뒷모습에 마음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처음에는 큰 문제없이 적응하는 듯했다. 규칙적인 등하교 시간이 오히려 아이에게 편하게 느껴지는 부분도 있어 보였다.
하지만 역시나 쉽지는 않았다. 앞에서도 서술한 바와 같이, 선생님의 아이엠스쿨 메시지가 매일 도착하기 시작했다. 메시지의 주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수업 시간이 지나고서야 교실로 들어왔고, 무언가가 잘 안 된다며 가방이나 의자를 던졌고, 수업 시간 활동에 참여하지 않았고, 책에 낙서를 잔뜩 했고, 종이를 가위로 마구 잘랐고, 지우개를 조각조각 냈고, 점심시간에 급식실에 가기 위한 줄에 서지 않았고, 식판을 내동댕이 쳤고 등등.
한 번은 헬스장에서 운동 중이었는데, 솔이의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솔이는 폰을 들고 다니지 않았고, 그 시간은 학교 점심시간이었다. 짧은 순간 오만가지 생각을 하며 전화를 받자, 솔이의 태연한 목소리가 들렸다.
"엄마, 나 지금 폰 해도 돼?"
안도하면서 한편으로는 당황스러웠다. 왜 집에 있냐, 학교로 돌아가라는 내 말에 '힝' 하더니 별다른 대꾸도 없이 끊어버렸다. 곧이어 담임 선생님에게 연락이 왔다. 솔이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선생님에게 방금 상황을 말하고 학교로 허겁지겁 뛰어갔다. 솔이는 어느새 학교로 돌아와 있었다. 땀범벅의 운동복 차림으로 숨을 헐떡이는 나에게 선생님은 어깨를 두드리며 솔이는 잘 왔다고, 함께 잘 지도해 보자고 하셨다. 나는 그저 솔이를 잘 부탁한다고, 죄송하다고만 반복하고 돌아왔다. 나중에 솔이에게 자초지종을 물었지만 잘 기억이 안 난다며 회피할 뿐이었다.
그 후, 상담주간이 아님에도 선생님의 호출로 학교에 몇 번 드나들었다. 1학년 선생님은 열정적인 분이셨다. 매일 숙제를 2~3개 이상씩 내주셨고, 해오지 못한 아이는 남아서 완성시키도록 지도해주시고는 했다. 솔이의 학교 생활을 빽빽하게 메모해 두셨다가 전달해주시기도 했다.
나 역시 숙제를 도와주기 위해 애썼다. 하지만 솔이는 문제 하나를 풀기 위해 일단 책상 앞에 앉히고 연필을 손에 쥐게 하기까지 30분 이상이 걸렸던 아이다. 악력도 부족해 글씨는 삐뚤빼뚤했다. 손가락에 발가락까지 동원해 가며 셈을 했지만 계산도 빠르지 않았다. 무엇보다 하기 싫은 걸 견뎌내고 수학과 국어 등 과제를 해내기에는 솔이의 자제력이 충분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그냥 하지 말아 버리자 할 수도 없었다. 학교에 가서 선생님에게 말을 듣거나 친구들과 비교되는 순간을 쉽게 넘기지도 못했다.
매일 아이를 붙들고 숙제를 하는 게 정말이지 고역이었다. 막상 시작하면 문제를 모르거나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었다. 한글도 가르치지 않았지만 스스로 책을 보며 다 익힌 아이였다. 다 아는 걸 일부러 이러나, 도대체 얘는 왜 이러나 싶은 생각이 들면 속에서 천불이 올라와 괜히 선생님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그러면서 깨달았다. 자제력이 충분하지 못한 건 솔이뿐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연필과 지우개는 왜 그리 매일 챙겨줘도 매일 사라지는 건지, 학교에 연필지우개 블랙홀이라도 있는 건가 싶을 지경이었다. 이름 스티커를 붙여주다 지쳐 나중에는 그냥 넣어 주기에 바빴다. 나는 확신했다.
"너희 학교에 블랙홀이 있지? 어떻게 이렇게 매일 사라져?"
솔이는 심드렁하게 대꾸했다.
"어차피 학교 가면 다 있어."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그랬다. 교실 한쪽 분실물함에 아이들의 연필과 지우개가 산처럼 쌓여 있었고 - 솔이만 그런 게 아니었다! -, 솔이는 아주 자연스럽게 거기서 연필을 꺼내 썼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가방을 열고 알림장과 준비물 등을 챙겨주는 게 일과였다. 아이가 스스로 할 수 있게 함께 하며 지도해 달라고 하셨는데, 그것까지 실랑이할 여력이 남아있지 않았다. 솔이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내던져버린 가방과 다시 조우하고 싶은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어 보였다.
가방 속은 흡사 전쟁터와 다름없었다. 책과 공책은 표지가 뜯겨 덜렁거렸고, 내부의 종이는 낙서투성이었다. 필통은 입구가 제대로 닫힌 적이 없이 늘 입을 벌리고 있었고, 안은 텅 비어 있었다. 각종 안내문 종이는 구겨질 대로 구겨진 채 처박혀 있어 잘 찾지 않으면 놓치기 일쑤였다. 가방을 통째로 뒤집어서 탈탈 터는 게 나을 때도 많았다. 그나마 알림장에 글씨가 잘 쓰여있으면 안심했다. 글씨가 엉망이거나, 쓰다 말았거나, 아예 쓰지 않아 버린 날이면 오늘 또 어떤 하루를 보냈을지가 예측되어 긴 숨이 나왔다. 1학년 시기의 알림장과 교과서를 떠올려보면 지금의 것은 정말 양반 중의 양반이다. 장족의 발전이라는 말이 이런 때 적절할 것이다.
책을 많이 읽어 또래보다 알고 있는 게 많았던 솔이를 선생님은 '박사'라며 칭찬해주시기도 했다. 처음에는 뿌듯해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부담이 되어버렸다. 솔이는 완벽주의 기질도 있었다. 그 라벨이 오히려 족쇄가 되었다는 걸 나중에야 알았다. 아이는 점점 무언가를 시도하는 걸 주저했고, 뜻대로 되지 않는 학교생활에 주로 받는 건 지적과 눈초리었을 것이기에 자신감을 잃어가는 듯했다.
돌이켜보면, 겨우 1학년인 아이였다. 학습도 중요한 건 맞지만 아이가 보였던 많은 '문제 행동'들은 아이의 스트레스 표현방식이었을 것이다. 자신의 감정을 말로 표현하는 방식이 낯설었던 아이의 미숙함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제와 말이지만, 사실 솔이는 꼼꼼한 선생님과 썩 맞지는 않았던 것 같다(선생님이 나쁘다는 뜻은 절대 아니다). 어쩌면 단체 집합식 교육인 학교와 맞지 않는다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솔이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정답을 맞혀야 하는 문제보다는 자유로운 상상과 그림, 만들기를 좋아하는 아이였다. 미술시간이라 하더라도 정해진 주제나 방식을 학습하는 것보다 주체적으로 주제를 선택해서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을 선호했다. 좋게 말하면 주도적이고, 나쁘게 말하면 제멋대로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해야 해'라며 누군가가 방법을 직접적으로 알려주는 것보다, '이런 방식은 어떨까', '이런 방법도 있는데'하며 넌지시 알려주고 자신이 선택했다고 생각이 들어야 더 잘 받아들이는 아이다.
물론 선을 가르치고 그 안에서 적응하게 하는 것은 분명 필요하다. 솔이도 놀이치료를 하며 만다라 색칠하기나 보드게임 등을 통해 선을 지키고 조절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하지만 하나의 틀 안에 여러 아이를 끼워 맞추는 것밖에 대안이 없어 보이는 교육 현실이 안타깝기도 하다(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일선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교사분들을 비난하는 건 절대로 아니며, 아이들을 제멋대로 크게 놔둬야 한다는 말도 아니다).
아이를 키워보거나 가까이서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우리 아이들은 먹는 것, 좋아하는 캐릭터, 자주 보는 영상, 걷는 습관, 연필 쥐는 방식, 하다못해 콧구멍 막는 손가락까지 등등 작은 것 하나 같은 게 없다. 우리집에도 세 명의 아이가 있지만 모두가 만족하는 식사 메뉴 하나 정하기도 어렵다(방금도 우동, 라면, 국수 세 가지 종류의 면을 끓이고 왔다. 한 끼 간단히 먹고 넘어가려는 계략은 실패했다). 이 다채로운 아이들을 획일화된 교육을 통해 가르칠 수밖에 없는 건가 씁쓸하고 안타까운 마음이 늘 든다.
나는 교육학 전문가도 아니고, 초등 교육 현장에 관해서는 더더욱 잘 모른다. 이런 내 생각을 비현실적이라거나 순진한 생각이라고 비난해도 할 말은 없다. 하지만 대학 교육 현장에 걸쳐 있는 사람으로서, 이 역시 획일화되고 정형화된 방식에서는 크게 차이가 없다는 현실이 나는 그저 안타깝다. 그리고 적절한 대안을 상상조차 하지 못하는 나의 한계가 더욱 통탄스럽다. 최근 <신경다양성 교실>이라는 책을 읽으며 그 일면을 조금씩 들여다보고 있다. 추후 책을 다 읽고 나면 한번 더 정리해 글을 써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왜냐하면, 이다음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이와 이어지는 에피소드이기 때문이다. 바로 우리의 거대한 산, '우리 아이 배움 관찰의 날'이라고 부르는 공개수업이다. 솔이와 나에게는 새로운 도전의 날이었다.
오늘의 커버 이미지 솔이 작품명은 '스프런키 로치'입니다. 수북한 꼬리털에 자신만의 무기인 변신 창을 꽂아놓고 다니는 강아지 기반의 스프런키 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