넘을까 말까
누구나 자신이 잘못됐다는 피드백을 반복적으로 받으면 다른 행동을 해보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친구들과 어울리려다 자꾸 부딪히는 일이 생겼던 솔이는 이제는 혼자 있는 걸 선택한 듯했다.
코로나로 어린이집을 거의 못 간 6살을 보내고, 7살이 된 솔이는 친구들과 노는 게 재미없다며 혼자 책을 보곤 했다. 친구를 물고 때리는 행동을 없애는 데에는 효과가 있었지만, 이것도 그다지 괜찮은 방법은 아니었다. 계획된 단체 활동에 잘 참여하지 않고 교실 밖을 뛰쳐나가거나 구석에 앉아 있는 형태였으니 말이다.
어린이집 밖에서 이루어지는 활동은 그래도 잘 참여한다는 말을 들었다. 그나마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솔이는 주로 선생님 손을 잡고 다니는 모습이 또 마음에 걸렸다. 친구 짝꿍으로는 통제가 안 돼서였을까? 사고가 발생할까 봐? 좀 우당탕 하긴 하지만 그렇게까지 사고뭉치는 아닌데. 솔이를 특별히 챙긴다는 선생님께 차마 말은 못 했다. 선생님 손에 붙잡혀 끌려다니는 것 같은 느낌은 기분 탓이었을 것이다.
1년에 두 번씩 이루어지는 정기 상담.
잘 지내는지 확인 인사 정도로 생각했던 게 이렇게 부담스러운지는 솔이를 키우며 느꼈다. 잦은 통화로 엄청나게 익숙해진 담임 선생님과 마주 앉아야 했기 때문이다. 근심 가득한 얼굴로 선생님은 상황 보고를 시작한다. 나는 듣는 내내 죄인 모드가 다시 발동된다.
선생님은 조심스럽게 '전문적인 도움'을 받아보기를 권했다. 그게 정확히 정신과 병원을 의미했다는 건 나중에야 알았다. 놀이치료를 받는다는 말에 그것보다 '좀 더 전문적인 도움'을 다시 권하는 2학기 상담에서야 눈치를 챈 것이다.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솔이의 '문제행동'을 빨리 해결해 주기를 바랐던 그의 바람을 말이다. 솔이의 작은 변화를 발견해주지 못한 건 좀 서운했지만, 돌봐야 할 아이가 너무 많아서였을 거라고 이해했다.
어쨌든 병원에 가보긴 했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처음 방문했던 소아정신과 병원은 내게 상처만 안겼다.
대학병원은 대기가 너무 길었다. 나름 이곳에서 유명하다는 개인병원 중 가장 빠른 D병원으로 예약했다. 솔이에게는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는 것처럼 마음이 아프거나 힘들면 가서 검사도 받아보고 할 수 있는 거라고 설명해 줬다. 솔이는 다행히 걱정은 했지만 거부하지는 않았다.
어린이집을 빠지고 하루 데이트 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다녀오자 했다. 솔이가 좋아하는 점심을 맛있게 먹고 병원으로 향했다. 나 역시 긴장되었지만 애써 솔이에게는 미소를 지었다.
병원에서는 흰 종이와 연필, 지우개를 주었다. 집과 사람, 나무를 그려보라며. 문장완성 검사지도 주었다. 그리고 다른 환자들이 대기하고 왔다 갔다 하는 장소의 한쪽 구석 자리에 놓인 테이블을 안내했다. 당황스러웠다. 이렇게 개방적이고 어수선한 공간에서? 덜렁 엄마랑 아이에게 종이만 주고? 알아서 작성하라고?
솔이는 괴로워하며 억지로 사람만 겨우 하나 그렸고, 문장완성 검사는 도저히 할 수도 없었다. 아직 글도 못 쓰는 아이였다.
"뭐 때문에 오셨죠?"
진료실에서 마주한 의사의 첫마디는 더욱 당황스러웠다. 예약할 때도, 진료 전에도 간단히 상황을 전달했는데 전혀 모른다는 듯 묻는 건 그렇다 치자. 아이의 '문제행동'을 설명하는 거니 옆에서 바로 말하기 조심스러웠다. 따로 자리를 마련해 줄 거라 생각했지만 착각이었다. 아이와 나란히 앉은 상태에서 나에게 질문을 했고 떠듬거리며 말하는 나에게 가족관계 등 이것저것을 물었다. 뭘 물었고 뭘 대답했는지도 잘 생각나지 않는다. 아이에게는 질문도 하지 않았다.
의사는 솔이가 그린 그림을 보며 설명을 시작했고, 그때부터 머리는 엉망진창이 되었다. 그림에 그려진 사람 형상이 다소 기괴했다. 다리 하나가 길고 머리가 작았나? 그렸다 지웠다 한 흔적도 많았다. 아무튼 그의 말은 대충 이거였다. 이 그림은 엄마를 의미한다. 아이가 보이는 많은 문제행동이 엄마에 대한 반항심과 적개심 때문일 수 있다. 빨리 치료에 들어가야 한다. 자기가 직접 하는 건 비용이 좀 더 들어간다. 경력 많은 노련한 전문가라서. 정밀 검사도 좀 더 해보자.
병원 내의 발달센터에 치료 예약까지 잡고 나오는데 머리에 쥐가 나는 것 같았다. 내가 그동안 놓친 게 있었나? 아이와의 관계만큼은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결국 내가 문제였던 건가?
아니, 자기가 뭘 안다고? 그려진 과정도 지켜보지 않은 그림하나 달랑 보고? 더군다나 그런 환경에서?
두 가지 생각을 수백 번 반복하고, 선생님과 통화를 마치고, 나는 엉엉 울었다. 분하고 억울했고 화가 났다. 미안하고 안쓰러웠다. 무겁고 막막했다.
그곳은 잔뜩 긴장했을 아이와 보호자를 전혀 배려하지 않았다. 아이를 이미 해결해야 할 문제의 대상으로 규정했고, 양육자(나만?)를 비난했다. 지금 생각하면 뭐 그런 이상한 곳이 있나 싶은데, 여전히 잘 운영 중인 걸 보면 내가 이상한 건가 싶기도 하고.
결국 그 병원은 다시는 찾아가지 않았다. 그 후 대학병원 소아정신과를 찾기까지 1년 여가 흘렀다. 예약을 해놓고도 몇 번을 미뤘다. 그날과 비슷한 일이 반복될까 봐 두려웠다. 그냥 이대로도 괜찮지 않을까 믿고 싶기도 했다.
조금 더 일찍 갔었다면 좀 달랐을까? 대학병원 의사 선생님은 이때(초등 1학년 중반쯤) 많이 온다고 말씀해 주셨지만, 항상 아쉬운 마음이 남아있다.
물론, D병원 이후 아예 치료를 포기한 건 아니다. 집에서 가까운 아동발달센터에서 놀이/미술치료를 시작했다. 그곳에서는 솔이가 자아가 지나치게 강한 아이라고 했다. 그 외에도 여러 문제점들이 파악되었다. 오랜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솔직히 그저 스트레스만이라도 해소한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시작했다.
왜 이곳에 다녀야 하는지 묻는 솔이에게는 힘든 점을 도움 받기 위한 거라고 말했다. 본인의 전적을 인정하는지라 솔이는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음에도 말없이 다니기 시작했다. 고맙고 기특하게도 말이다.
나는 그곳을 '놀이센터'라고 불렀다. 아무래도 '발달센터'는 좀 부담스러웠다. '치료'라는 단어도 마찬가지였다. '놀이수업', '놀이선생님'이라고 말했다. 마치 발달에 문제가 있어서, 치료해야 한다는 뉘앙스는 솔이에게도 나에게도 쉽지 않았다.
직면하지 않는 비겁하고 덜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누군가는 비난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심리치료에 접근하는 마음의 문턱을 넘기는 쉽지 않다. 조금이라도 그 부담을 덜어줄 수 있다면 그런 용어의 사용에 관해서도 생각해 볼 수는 있지 않을까? 꼭 발달이나 치료라는 말이 들어가야 할 필요는 없지 않나? 지극히 소심한 adhd 아동 양육자의 생각이다.
더불어, 우리는 전문가라는 이름으로 함부로 판단하는 그들의 말을 과연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전문가가 필요 없다는 말은 절대 아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비난의 화살을 쏠 때에는 좀 더 조심해야 하지 않을까? 그것이 정확한 판단일 때조차도. 그가 어떤 삶을 어떻게 견뎌왔을지는 한 장의 검사지로 다 드러나지 않으니 말이다.
혼돈의 시간을 거치면서 얻어낸 한 가지는, 우리는 모두 잘 모른다는 걸 알았다는 거다. 어린이집 선생님도, 의사도, 치료사도, 부모도 그 누구도 정확하게 알지는 못하는 거였다. 솔이가 어떤 아이인지, 어떻게 성장해 나갈지, 어떤 게 도움이 더 될지. 확실한 건 없었다.
그렇다면 어차피 다들 모르는 거, 나는 그냥 나를 믿기로 했다. 내가 가장 아이를 잘 안다고, 아이는 나를 가장 믿고 따른다고 말이다.
세상 모두가 손가락질해도 나만은 아이를 이해해 주고 사랑해 줄 거라고. 널 바르게 자라도록 최선을 다할 거라고. 그런 사람이 바로 나라고 솔이에게 알려주는 것. 그게 나의 목표와 방향이 되었다.
오늘의 커버이미지 솔이 작품은 '스프런키 담티'입니다. 요새 스프런키에 꽂혀서 매일 저것만 그린답니다. 자작 캐릭터라고 해요. 요즘 아이들은 자기가 캐릭터를 만들어 그리는게 유행인가봐요. 만들어진 캐릭터를 좋아할줄만 알았던 저에게는 참 색다른 문화입니다. 이름을 지은 이유를 물어보니 퍼스널 컬러가 담청색이래요. 듣고보니 가슴에 깨알같이 담청색 별이 있군요.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