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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집 원정기

유별남과 평범함 그 어딘가에서

by 뤼더가든

2015년 12월, 둘째 솔이가 태어났다. 지극히 평범한 출산과정을 거쳤다. 첫째 때처럼 양수가 먼저 터지지도 않았고, 셋째처럼 뱃속에서 태변을 보지도 않았다. 태어난 후에도 잘 먹고 잘 잤다. 첫째처럼 밤마다 깨서 울거나 젖을 못 빨지도 않았다. 옆에서 자던 언니가 새벽마다 일어나 목청 터져라 울어대도,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죽일 듯 소리를 질러대도(미안ㅠㅠ) 솔이는 정말 잘 잤다. 순한 아기였다.


그런 솔이가 어린이집에 갔다. 돌이 막 지난 어린 이었음에도 잘 적응했다. 너무 많이 먹어서 간식을 추가로 보내줘야 했다거나 다소 흥이 많다는 점 외에 별다른 특이사항은 없었다.


문제는 4세 반이 되자 나타나기 시작했다. 솔이만 빼고 반 아이들이 모두 기저귀를 벗었다. 솔이는 12월 생인 데다 배변 조절이 느린 편이었다. 그리고 생각보다 어린아이에게도 자존심은 중요했다.

당시 선생님들은 수기로 쓰는 알림장을 정성껏 작성해 주셨는데 그걸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그런데 이맘 때는 오히려 보고 싶지가 않았다. 솔이가 이랬어요, 저랬어요 하는 문장 끝에 ㅠㅠ 표시와 한숨소리가 하루에 최소 3개 이상씩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정말 매일매일.


집에서 잘 지도해 보겠다, 죄송하다 답글을 쓸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은 우리 아이를 이런 표정으로 바라보며 뒷정리를 해주었겠지 생각하니 늘 마음이 불편했다. 차라리 천천히 해도 되니 기저귀를 입히겠다고, 아이를 기다려달라고 말하지도 못했다. 내 아이만 특별 취급해 달라고 하는 것 같아 민망하기도 했고, 선생님에게 죄송하면서도 서운했던 것 같다. 어떤 이유이건 바보 같은 태도였다.


솔이는 등원을 거부하기 시작했다. 1킬로미터 전방에서 그쪽으로 차 방향을 돌리기만 해도 울었다. 엄마에게 전해 들은 얘기지만, 아이가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다고 하자 '무슨 애기가 스트레스냐'며 웃어넘겼다고 했다. 정확히 누가 그런 믿을 수 없는 발언을 했는지는 모르겠다. 엄마가 잘못 들은 걸 거라고 믿고 싶다.


선생님 개인을 탓하고 싶진 않다. 6~7세 반을 주로 전담하던 선생님이 갑자기 4세를 맡았던 상황이었기에(큰 아이의 담임 선생님으로 만났을 땐 정말 좋았던 분이셨다). 다만, 선생님이 맡는 반 연령이 들쭉날쭉 하는 곳이라면 다른 곳을 추천하고 싶다. 선생님들도 맞는 연령대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침 이사 예정이었기에 조금 일찍 그만 보내기로 했다. 다른 곳을 보내려 했지만 거부가 너무 심해 한 달 정도 데리고 있었다. 그리고 '놀이방'이라고 꼬셔서 겨우 한 곳을 데려가는 데 성공했다.

은 규모에 위치도 구석이었지만 원장님과 선생님이 적극적이셨다. 아이가 겪었던 어려움을 이해해 주셨고 잘 돌봐주셨다. 배변도 서두르지 않았다. 친구들 중에 아직 기저귀를 떼지 않은 아이들도 있었다. 등원거부는 종종 이어졌지만 원장님이 직접 나와서 달래며 안고 들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반년 정도 만족하며 보냈다.


5세가 되고 아파트 단지 내 어린이집을 다닐 수 있게 되어 그곳으로 옮기기로 했다. 조금 아쉽기도 했다. 인사와 함께 옮기게 된 상황을 설명하려 원장님에게 전화를 했다. 그동안 감사했다, 정말 만족했지만 차타지 않고 보낼 가까운 곳이라 옮긴다 말을 하고 전화를 끊으려 하자 원장님은 나를 설득하지 못했다는 걸 느끼셨는지 마지막으로 덧붙였다.

"거기서 잘 적응하면 좋겠네요. 아시다시피, 솔이가 좀 유별나잖아요?"

얼떨결에 대답하고 끊었는데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그동안 아이에게 최선을 다해 주었고, 새로운 곳에서 잘 적응할지 걱정되는 마음이라는 건 알겠다. 그런데 뭐지? 이 기분 나쁨은?


배변훈련과 등원거부의 어려움이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유별나다'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린아이들은 각자 조금씩은 다루기 힘든 점들은 갖고 있는 거 아닌가. 나는 원장님의 말을 다시 떠올릴 때마다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속 좁은 엄마라 욕해도 어쩔 수 없다. 그 말과 말투는 나를 계속 찔러댔다. 어쩌면 반박할 수 없게 우리 아이가 정말 유별났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초등학교 2학년 1학기, 담임 선생님과의 상담일.

"솔이는 지극히 평범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만난 5분도 안 담임 선생님의 첫마디 앞에서 나는 눈물을 쏟았다. 감사하고 창피하고 다행스럽고 민망하고 엉망진창이었다.


돌아오는 길, 4년 전 원장님의 그 목소리가 떠올랐다. 유별나다는 말에 가시를 숨긴 원장님도, 그의 말을 못처럼 박아 놓고 살았던 나도 싫었다. 그리고 평범하다는 말에 안도하는 지금도 썩 마음에 들지만은 않았다. 무엇보다 그런 어른들 마음에 들기 위해 애쓰고 있을 내 아이도 안타까웠다.


11살이 된 지금, 솔이는 배변 조절과 처리에 전혀 어려움이 없다(심지어 이후 셋째는 더 늦게까지 기저귀를 했다. 아무 문제 없이). 어린이집뿐만 아니라 심지어 지금 학교도 잘(은 아닌가? 어쨌든) 다닌다. 어린이집, 그때가 좋았지 하면서 말이다.


유별남과 평범함 사이 그 어딘가에서 아슬아슬 밧줄을 타고 있을 모든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유별난 게 아니야. 그런 모습이 있는 것뿐이지. 누군가가 너를 평가하더라도 그게 널 규정하지는 않아. 그러니 절대 주눅 들지 마. 네가 남들과 같지 않아도 그건 잘못된 게 아니야. 그리고 좀 늦더라도 할 수 있어. 더 늦는 사람도 있고. 그러니 걔보다 낫다 안심하라는 말은 아니야. 누구나 다른 속도를 가진다는 거지. 너도 이미 알고 있지? 특별하고 사랑스러운 아이야."


다소 장황할 수도 있는 이번 이야기를 통해 나누고 싶은 건 결국 이거였다. 유별남도 평범함도 각자의 일부분이고, 모두 상대적인 건 아닐까 하는 나의 물음.


물론 그때는 몰랐다. 그게 시작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덧> 이번 커버이미지 속 솔이 작품의 이름은 '미스 펀 노트북' 입니다.

'호러 미스 펀 노트북'라는 무시무시한 노트북(아래 그림)으로 변신하기도 합니다. ^^ ㅎ

멜로볼 호러.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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