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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지는 전화벨 소리

죄책감 대신 의연함으로

by 뤼더가든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한 건 5살 무렵이었다.

어느 날은 친구에게 블록을 던졌다고 했고 어느 날은 친구를, 또 어떤 날은 선생님을 물었다고 했다.

당황스러웠다. 맞으면 맞았지 때리는 입장은 한 번도 돼 본 적이 없었다.


"어머니, 솔이 너무 혼내지는 마세요."

솔이에게 물리고도 오히려 나보다 편을 들어주었던 선생님도 있다. 애들끼리 있을 수 있는 일인데 마음 쓰지 말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넘겨주신 부모님도 있다.


불편한 목소리와 표정을 마주쳐야 하는 경우도 많았다. '아이 단속'을 당부받기도 했다. 이해한다. 내 아이가 다치고 왔으니 얼마나 속상할 것인지 나 역시 당해봤기에 안다. 한없이 어깨가 오그라들었다. 죄송하다는 말 밖에 할 수 없었다.


미안하고 죄스러운 마음이 대부분이었지만, 솔직히 아쉬운 부분은 있었다. 절대 내 아이의 행동이 잘했다거나 그럴만했다는 핑계를 대려는 건 아니다. 폭력에는 이유가 없다. 맞을만한 행동이란 건 세상에 없다.


다만, 아이가 그렇게 행동한 데에는 이유가, 상호작용이, 상황과 과정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의도적이거나 계획적인 행동은 아니었기에. 하지만 결국 '폭력적'인 행동을 한 솔이만이 문제시되는, 그래서 오롯이 가해자로서의 죄명을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 안타까웠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친구를 다치게 한 행동은 분명 잘못됐다. 그리고 친구가 물릴만한 행동을 했기 때문에 물렸다는 뜻도 절대절대절대 아니다.


하지만 솔이가 그 행동을 하기까지의 과정과 맥락도 조금만 관심을 가져줄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는 건 지나친 바람이었을까. 가만히 있다가 갑자기 무턱대고 아무한테나 과격한 행동을 하는 건 아니었는데 주로 전해지는 내용은 결과뿐이었다. 솔이의 행동이 반복될수록 더욱 그랬다. 다른 아이는 평범했고, 솔이는 그런 행동을 하는 아이였으니까.


많은 아이를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 더군다나 안전과 관련된 문제 행동을 하는 아이를 제지하는 게 우선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부딪히게 되는 예민한 상황에서 아이를 이해해 주려는 시도, 환경적인 조정이나 중재 등은 없었던, 개인의 성향으로만 모든 책임이 전가되는 이 상황이 정말 괜찮은 건지에 대해서는 항상 의문이었다. 차마 말할 수는 없었다.


나 역시도 아이의 편이 아니었다. 어쩌면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아이를 혼내고 협박하고 강요하고 한탄했다. 설명하고 설득하고, 나중에는 애원하고 타이르기도 하고 협상도 했다. 하지만 효과는 없었다.


"도대체 왜 이러는 거야?"

수없이 물었지만 사실 난 상황을 정리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솔이를 이해하려 하지는 않았다. 그저 그만 사과하고 싶었다. 엄밀히 말해 내 잘못도 아닌데 늘 죄인처럼 고개 숙이는 것도 자존심 상했다. 아주 유치하지만 정말 그랬다. 모성이나 어른과는 어울리지 않는 말처럼 들리겠지만 말이다. 엄마도 사람이니까라고 구차한 변명을 해본다.


솔이는 미안하다고 했다. 자기도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고 말했다. 다시는 하지 않겠다고 다짐도 했다. 나중에는 넌 억울하지도 않냐고 소리까지 지르는 내 앞에서 솔이는 잔뜩 주눅 들었고 엉엉 울었다. 무엇보다 자기를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땐 그것도 모르고 혼만 냈다.


솔이는 사람을 좋아하는 아이였다. 하지만 주변의 자극이 보통의 아이보다 훨씬 더 크게 느껴지는 아이였다. 그리고 생각과 동시에 행동이 나갔다.

'화가 나, 불편해, 때리고 싶을 만큼.'

생각하는 순간 이미 움직인 후였다. 아이는 아직 세상을 받아들이고 자기의 감정을 표현하는 게 미숙했다. 그리고 그런 자기를 가장 수용하기 어려워했다. 나는 아이에게 알려주어야 했다. 그 행동은 잘못된 것임을. 그렇지만 그 행동을 하는 너라는 존재가 잘못된 것은 아님을.


초등학교 1학년이 되고 울리던 전화벨은 아이엠스쿨 어플 알림으로 대체되었다. 매일매일 솔이의 문제(친구를 때리는 행동은 없었지만 다른 형태의) 상황이 전달되었다. 가끔 잘했다는 칭찬도 있긴 했으나 극히 드물었다.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휴대폰 진동 소리만 들려도 심장이 내려앉았다. 죄책감과 함께 반발심도 함께 들었다. 나는 잔뜩 곤두서있었다. 조용했던 2학년이 지나고 3학년, 학교에서의 연락이 다시 시작되었을 때 괴로움은 배가 되었다.


그때 상담가 선생님은 내게 학교에서의 연락을 '문제'로 생각하지 말고 '신호'로 받아들여보면 어떠겠냐고 제안해 주었다. 솔이가 필요한 도움을 나타내는 신호라고. 나는 여전히 솔이를 이해하려 하기보다는 상황을 정리하려 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작은 생각의 전환은 조금 더 의연하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대처할 수 있게 해주었다. "죄송합니다"라며 굽신거리는 대신 말이다.


잘못이나 문제를 가볍게 여기라는 것은 아니다. 연락을 받으면 안 된다는 강박과 지나친 죄책감 대신, 어려움을 해결하고 아이를 이해하기 위한 표현과 도움의 신호로 연구자의 자세로 받아들여보라는 것이었다.


학교에서의 연락은 여전히 쉽지 않다. 하지만 조금은 가벼워졌다. 솔이의 sos신호로 인식한다. 그리고 아무 표현도 없이 끙끙 앓거나 무감각한 것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신호를 보내오면 나는 그걸 받아서 해석해보려 한다. 그럼 해결책이 나오기도 한다. 잘 안되기도 하지만 최소한 우리는 대화를 나눈다.


솔이는 여느 자매와 마찬가지로 종종 언니나 동생과 다투기도 한다. 그런데 화가 나서일 때도 있지만 실수일 때조차 상대를 아프게 하면 과도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나쁜 놈입니다. 저를 때려주세요!"

라며 자기 머리를 바닥에 박거나 하는 것이다.

일단 그 모습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솔이를 차분히 부른 후, 넌 잘못된 행동을 한 거지 나쁜 사람인 건 아니라고 짚어준다. 그리고 잘못했을 때 중요한 건 처벌이 아니라 반성이라고, 가장 먼저 해야 할 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괜찮냐고 물어봐주는 거라고 말해준다. 또 놓쳤네 하고 다음엔 그러지 말아야지 하면 되는 거라고 말이다. 마지막으로 솔이 스스로에게도 미안하다고 꼭 사과시킨다.


나 자신에게도 말해준다.

알겠지? 너도 잊지 마.


p.s.

이렇게 쓰고 나니 솔이는 온통 어린이집에서 힘든 시간만 보냈나 싶을 수도 있다. 솔이는 친구를 좋아했고, 에너지가 넘쳤고, 바깥에서의 자유로운 활동을 좀 더 좋아하는 아이였을 뿐이다. 연락받는 것에 대해 느꼈던 압박과 죄책감, 그리고 대처에 집중하여 서술했음을 밝힌다.



오늘의 커버이미지 솔이 작품명은 '펀봇'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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