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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개수업 보낼까, 말까?

고민해야 하는 것조차 슬펐던

by 뤼더가든

9월이었다. 대망의 날이 다가왔다. 참석여부를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아이엠스쿨 설문조사 화면을 닫았다.

'공개수업 룩'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다들 옷차림에 신경을 쓴다지만, 그게 문제는 아니었다. 그저 깔끔한 차림이면 됐다. 우리 아이들도 신경 쓰지 않는다. (순진한 내 딸들. 물론 결혼사진 속 저 공주는 누구냐고 물어보긴 한다.) 그래서 난 항상 가벼운 화장과 편안한 옷차림을 하고 별생각 없이 학교에 다녀오곤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달랐다. 초등학교 입학 후 처음으로 맞닥뜨린 솔이의 첫 공개수업이었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가도 될까?'였다. 그리고 '가지 말까?'가 뒤를 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을까 궁금하고 불안한 마음에 거북맘vs토끼맘 네이버카페에서 글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여러 글을 봐도 마음에 차지 않았다.

솔이는 내가 학교에 간다니 그저 신난 표정이었다.
"다른 엄마, 아빠들도 많이 오니 잘해보자?"
질문 반, 권유 반의 내 말에는 불안감이 서려 있었다. 약을 먹기 시작한 지 겨우 일주일쯤 됐을 때였다. 거의 매시간 폭발 한다며 오히려 화내는 게 심해진 것 같다는 담임선생님의 피드백이 마음에 걸렸다. 내심 솔이가 싫다, 못 하겠다 하면 그냥 가지 말아야지 싶었는데 오히려 솔이는 자신 있게 대답했다.
"응!"

과연 솔이는 대답처럼 할 수 있을까? 솔이의 씩씩한 대답에 함께 미소로 답했지만, 사실 걱정에 휩싸였다.
아이가 창피해서도, 내가 부끄러울까 봐를 걱정하는 것도 아니었다. 다른 부모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도 중요하지 않았다. 다만, 스스로 통제되지 않아 순간 욱하고, 그 모습에 놀라는 사람들 표정이 솔이에게 상처될까 봐 너무 걱정이 됐다.

그래도 직접 수업 모습을 보면 아이 치료에 도움이 될까 싶기도 했다. 그리고 또 혹시나 잘 해낼 수도 있잖아 하는 일말의 기대까지.

하루 가정학습을 신청하고 빠지는 게 좋을지, 그래도 그냥 해보는 게 좋을지 네이버 카페에 글을 올렸다.

댓글 알람이 뜰 때마다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열어봤다. 대부분 아이가 생각보다 잘 해낼 거니 가보라는 말이었다. '자기라면 안 보낸다', '아이가 오지 말래서 현장체험학습 냈다'라는 댓글을 보자 마음이 또 흔들렸다. 그게 현명한 걸까.

숱한 고민 끝에 "집과 가정에서 다른 부분을 파악하기에는 공개수업이 도움 됩니다. 주변 시선으로 조마조마하지만, 우리 모두 강한 엄마니 아이만 생각해 보아요. 응원합니다."라는 댓글을 보고, 해보기로 마음을 굳혔다.

사실 당일 아침까지도 고민했다.
"좀 이따 학교에서 보자!"
했더니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는 솔이의 모습을 보고서야 갈팡질팡 마음에 마침표가 찍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교실은 이미 부모님들로 가득 차 있었다. 두리번거리던 솔이는 나를 발견하고 눈이 반짝 빛났다. 달려와서 와락 안기는 아이. 그래, 오길 잘했어.

어수선했던 분위기가 사그라들고, 아이들도 어른들도 조금은 어색한 공개수업이 시작되었다.

솔이는 틈만 나면 나를 보고 작은 손하트를 날리며 웃었다. 발표하러 앞으로 나갈 땐 토끼처럼 깡총깡총 뛰어나갔다. 자리에서 이탈하지도 않았고, 하라는 활동도 대부분 했다. 선생님의 펜이 떨어지자 주워 드리기도 했다. 말해볼 사람을 묻자 손을 힘껏 들기도 했다.

문제는 솔이가 아니라 나였다.
아이가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모습에 자꾸만 눈물이 나왔다. 괜히 감격해서 오버하는 엄마처럼 보일까 봐, 새어 나오는 눈물을 몰래 마른 손으로 훔쳐 냈다.
북받치는 감정의 이유를 사실은 잘 몰랐다. 그동안의 시간들이 스쳐 지나가며 마음이 계속 울렁거렸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잘 해내는 아이가 기특하고, 엄마가 왔다고 신나 해 주는 게 고맙고, 어느새 자라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이 대견했던 것 같다.
한편으로는 사회의 시선에 맞게 애쓰는 아이가 안쓰럽기도 했고, 지레 겁먹고 오지 말까 했던 내 짐작이 미안했던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불안했던 마음도.

매 순간이 조마조마했다. 솔이가 저러다 화내면 어떻게 하지? 친구들에게 안 좋은 말을 들은 건 아닐까?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었다.

몸을 흔들거렸고, 작은 목소리로 발표했다. 손을 들어도 계속 발표자로 선정되지 못하자 조금 불편해 보였고, 마지막 활동지는 작성하지 않아 모둠 아이들에게 재촉도 받았다.
수업이 끝나고 가보니 책상에는 낙서가 가득했다. 그리고 이후 수업에서 물건 던지는 행동은 계속되었다고 여지없이 연락도 받았다.

그래도, 솔이는 해냈다.

잘했다는 내 칭찬에 같이 뿌듯해하던 솔이.
혹시나 솔이가 상처받을지 모른다며 집에 머물렀더라면 어땠을까? 아이는 나와 더 재밌는 시간을 보냈을지는 몰라도 이 뿌듯한 성취감은 느끼지 못했겠지. 나 역시 솔이가 해내는 모습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그 이후, 나는 더 이상 솔이의 공개수업 참석을 고민하지 않았다. 그 뒤로도 솔이는 잘 해냈고, 다음 해에도, 또 그다음 해에도 학교에서 나를 반겼다.

그러던 어느 날, 솔이의 언니 율이가 5학년이 되었을 때의 공개수업에서 나는 비슷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사실 율이는 걱정할 게 없었다. 내 마음을 흔든 건 같은 반의 다른 아이였다. 그 반에는 또래보다 속도가 조금 느린 아이가 한 명 있었다. 보조교사가 함께 있었고, 잘 앉아 있지 못하고 지시대로 하지 못하는 모습에 자꾸만 사람들의 시선이 향했다. 그 아이를 보는 순간 마음이 불편해졌다. 그 아이가 거슬렸다기보다는 자꾸만 시선을 받게 되는 상황이 신경 쓰였다.

공개수업을 떠올리면 만감이 교차한다.
튀지 않아 안심했던 내 딸 솔이, 그리고 율이 반에서 눈에 띄었던 한 아이.

문제를 풀고 같이 답을 맞히는 수학 시간, 개념을 배우고 모둠별로 토론 후 발표하는 사회 시간 등. 그동안 참석해 본 공개수업들은 내용은 달랐지만 방식은 비슷해 보였다.

ADHD가 있는 우리 솔이나, 느린 아이로 보였던 율이 반의 친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수업일지도 몰랐다.

비단 그 두 아이뿐이었을까? 자연스러워 보이려, 튀지 않으려 애써야 했던 수업.
모든 아이들이 가만히 앉아서 문제를 풀거나 친구들과 차분히 의견을 나누고 의젓하게 발표해야 하는 수업이 아니라, 다양한 방식으로 배우고 표현할 수 있는 교실이었다면 어땠을까?

만약 달리기 수업이었다면, 만들기 수업이었다면, 혹은 또 다른 어떤 방식의 수업이었다면?
그랬다면, 우리 아이들도 조금 더 편안하게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 나와 같은 양육자들도 공개수업을 갈까 말까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을지도 모른다.

대안을 그려보고 싶은 마음에, 지난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김명희 선생님의 <<신경다양성 교실>>을 열심히 읽었다.

다양성은 생물학적 차원에서도 종족의 보존을 위해 필수적인 것이라고 할 만큼 중요하며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는 말에 매우 동의했다.
책에는 경계성지능, 지적장애, 선택적 함묵증, ADHD, 자폐성 장애학생들을 위한 여러 사례와 접근들을 소개하고 있다. 자료와 예시들을 보며 이런 것도 가능하구나 희망을 보았다.

그러면서도 아직은 교사 개인의 역량에 따른 편차와 개인의 열정이 더 강하게 느껴졌다. 반 전체 아이들의 변화를 이끄는 교육, 교사의 자세한 관찰, 강점을 발견하고 적절한 방식을 찾는 교사의 관심과 능력, 그리고 이를 지원하는 학습 집단이 중요해 보였다.

과연 솔이가 이런 교육을 받을 수 있을 확률이 얼마나 될까 하는 씁쓸한 마음도 드는 것이다.

신경 다양성 교실이 특정 교사에 의해서만, 혹은 업무 과다나 교사 개인에게 책임이 전가되는 형태가 아니라 모든 아이들에게 자연스럽고 보편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적어도 공개수업을 갈까 말까를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꿈꿔본다. 언젠가는 가능하지 않을까.
나의 이 글도 작은 씨앗이 될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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