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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n Lim Mar 14. 2019

창업을 하기까지 약 6년여 동안 십잡스(4)

쉽지 않은 결정. 그리고 바퀴벌레와 같은 생존력.

기업 교육을 하면서 사실 처음으로 통장 잔액의 최고치를 찍었다. 

(그 이후, 최고 갱신이 안된다..)


교육을 세일즈 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받았었는데

무엇보다 이 일이 너무 잘 맞아서 좋은 성과로 이어졌던 것 같다.


나는 강의를 해 본 적이 없지만, MBTI 성향을 따르자면 '언변 능숙형'이라서

사람들 앞에 서서 이야기하는 걸 꺼리지 않았는데

사내에서 이벤트를 하거나 월례조회를 하면 꼭 아이스 브레이킹(워밍업 시간)은 내가 진행했었다. 


그러나, 

내가 강사가 되거나 인사팀 등에 꿈이 있지 않기에 일 년 반 동안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해 이직을 하기로 결심했다. 



'비지니스를 배우려면.. 경영 컨설팅 펌에 꼭 가고 싶은데

나는 미대 나온 평범한 사람일 뿐이고.. 그러나 자신 있는 건, 난 무조건 꿈을 좇아갈 거고..'



결국 내 커리어의 정점을 찍은 직장이 있었다. 

(여덟 번째) 세계 4대 경영/회계펌 'Delotte 안진 회계법인'에 입사


Business analyst(BA)로서 프로젝트 인턴!

(여의도 IFC 건물에 있는 딜로이트 안진 LLC, 면접이 끝나고선 느낌이 좋아 이 사진을 찍었다)


그래도 나이 서른에.. 유학생들 사이에서 인턴이라니.. 

뭐.. 기죽진 않아야겠지만 그래도 같이 들어온 인턴들을 간단히 소개하자면, 


캐나다 McGill대학교 졸업생 (현재 국내 사모펀드 재직)

미시간 경영대학교 GPA 4.9 졸업생 (현재 맥킨지 뉴욕 본사 인터뷰 합격)

카추사 갓 제대한 홍콩대 학생

서울대학교 경영학과 졸업생 

도쿄 경영 컨설팅펌 출신

유니스트 공대 학생

고려대학교 졸업생 

(뭐, 이 정도..)


여기에 언제 졸업한 지 기억도 안나는 세종대 패션전공인 내가 있었다..


인턴이 끝날 때 즈음, 

이들이 묻더라 

혹시...  낙..하산?
아니죠????? ㅋㅋㅋ


나도 낙하산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들에게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아니.. 내가 도대체 왜 여기 와 있는가

나를 뽑은 이유가 뭐지? 뭘 기대하는 거지? 수많은 의구심이 들었다.


왜냐면 누가 들어도 뜬금없었으니까..


추측하건대

이 곳에 들어오게 된 한 가지 이유라면,

이들의 본업은 주로 클라이언트의 비지니스 솔루션을 제안하는 등의 업무를 하는데 

마침 내가 제조업 기반의 경력이 있고, 의외로 이런 경력의 사람들이 굳이 여기에 지원을 안 한다는 것이다.

(아님 나처럼 안될 것이라 생각해서 지원을 못하는 걸지도.. 나도 그랬으니까)


그러나 실제 현업에 있었던 사람들이 들어오면 클라이언트의 입장을 보다 잘 이해할 수 있고 뭔가 새로운 시각의 솔루션이 나올 거라 기대했을 것 같아서.. 날 뽑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생각나는 건!

면접 볼 때, 내가 한 가지 질문을 했었다.


"혹시 저를 뽑는데
고민이 되는 부분이 있으신가요?" 



마치 내가 이 문을 열고 나가면 내 이력서는 한쪽 구석에 처박힐 것만 같아서..

그러면 나라도 뭔가를 얻어가야겠다는 생각을 해서 질문을 했다. 


면접관들이 내 이력서를 막 저 아래로 내리려던 찰나,

뜨-끔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았다.


한참 침묵을 지키면서 면접관 눈을 초롱초롱하게 응시하고 있었는데 

그때, 순수히 답을 해줬다. 

"음, 인턴 자리인데 다른 인턴들에 비해 나이 차이가 많이 난다는 것??"


사실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 순간 나이가 제법 있어서 나만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이야기했다.


"아, 그렇군요! 맞아요. 저라도 고민이 될 것 같네요. 하지만 컨설팅 업무는 무엇보다 시키는 일이 아닌 주체적인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요? Business analyst인 만큼, 제 다양한 경력이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정확히 이해하고 컨설턴트를 assist 하는데 확실한 도움을 드릴 수는 있을 것 같군요! ^^"


(여의도 IFC 건물의 오피스는 그야말로 뷰가 환상적이다. 국회의사당 뷰)


그렇게 입사했다... 

낙하산 같지 않은 낙하산 눈초리를 받으며


이 곳에서의 일은 지금까지 내 경력과는 매우 다르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새로웠다.


첫 프로젝트 고객사는 KOTRA였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수출 전략을 세우는 컨설팅이었는데, 우리에게 배정된 기업은 다양한 물품을 생산 제조하는 곳이었다. 




그 기업의 니즈는

"우리는 총 8가지의 품목을 생산하고 있는데, 해외 수출을 위한 국가 우선순위부터 판매 시기 및 세일즈 방법, 가격정책 등 전반적인 수출 전략이 필요합니다." 이것이었다.



반도체에 들어가는 칩부터 디스플레이 패널과 의료기기의 감염을 막는 기술이 있는 부품, 핸드폰 지문 인식에 쓰이는 이형필름 등... 

내가 아는 게 단 1도 없었다.


여기에서의 컨설팅 업무는 첫날부터 나를 바보처럼 느끼게 했다. 

컨설턴트가 하는 말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루하루 업무가 주어질 때마다 시간 안에 끝내지 못했다.

이들이 요구하는 방향과 다르게 혼자 삽질을 하는 바람에 회의를 할 때마다 자괴감이 들었다.

구체적인 자료를 찾아야 하는데,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다른 인턴들과 너무 비교됐고, 내 컨설턴트에게 너무 미안했다. 


혼자 숨어서 야근을 하면서, 다른 부서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도 하고, 창피하지만 이해가 될 때까지 같은 걸 몇 번씩 물어보기도 했다. 진짜 눈치 없이 질문만 많이 하던 첫 직장에서 내 위에 사수가 질문 좀 그만하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가 생각나더라. (그때, 사수가 내가 질문하는 꿈까지 꿨다는 악몽을 전해 들음..)



그러고 나니 조금씩 지금 내가 하는 업무를 이해하기 시작했고, 찾는 데로 자료가 하나 둘 나오고.. 자료가 쌓이니 또 데이터가 쌓이고, 데이터를 보니 인사이트가 생기고, 컨설턴트에게 하나를 보고하러 가면 네-다섯 개씩 느끼는 점을 더 얘기하고.. 다음 업무가 주어지기 전에 미리 자료 조사를 끝마쳐 시간을 조금씩 단축시키기도 했다.


(월 대여료 4,000만 원 이상인 블룸버그를 가장 많이 애용)


보통 인턴들은 외근을 잘 안 가기도 하는데, 컨설턴트를 따라 둘이서 고객사를 만나러 가기도 하고.. 고객사에게 궁금한 점을 직접 물어보기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내 역할을 넓혀갔다.


일이 재밌어졌다. 


처음 몇 주 동안은 특히 적응을 못해서 밥을 먹으면 체하던 때가 생각나 약간 피식-한다. 




회계법인에서 일하면서 또 좋았던 건, 회계사들을 어깨너머 볼 수 있다는 건데

그들이 말하는 생소한 전문 용어와 기업의 한 장 짜리 재무구조를 통해 한눈에 파악하는 기업의 상태를 엿볼 수 있었달까. (사실 아직도 잘은 모르지만) 이 곳이 아니었다면 기업의 현금 흐름이 왜 중요하고 간단한 자산과 자본의 차이, 매출과 영업이익의 관계 등을 자세히 알 수 없었을 거다.



난 그때도 내 사업을 위해 

왜 이곳에 지금 와 있으며,
어떤 스토리의 일부를 지나가고 있는 중인지..
계속해서 상기했다.


이번 직장에서는

내 인생의 삼수(수능 3번 치름) 이후, 또 다른 지식적인 도전이었다.

그리고 오기였다. 나 자신의 한계가 있는지에 대한. 


이 프로젝트가 끝날 무렵

다른 인턴들은 학교로 복귀를 하기도 하고, 다음 업그레이드된 직장으로 입사를 하면서 

나 또한 다른 회계법인(아홉번째)으로 입사했다. 



그곳의 고객사는 '농협'이었는데. 

이런.. 내 이력서에 갑자기 "Agriculture(농업)"가 들어섰다.

(다시 한번 친구들이 놀란다. 그리고 놀린다..ㅋㅋㅋ)






창업을 하기까지 약 6년여 동안 십잡스(5) 이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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