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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거운 돌덩어리(2)

by 정윤


엄마는 피곤한지 방으로 들어가 문을 닫았다.

아빠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밤이 이슥해졌다.

아빠는 내 학교생활에 관해 물었고, 진로에 대해 걱정했다.

나는 아직 갈피를 잡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내 마음을 얘기했다.

"힘내, 아들! 네가 지금은 견디기 힘들지만, 그걸 견디고 나면 나중에 더 큰일이 닥쳐와도 버티는 힘이 생길 거야."

"상상이 안 돼. 지금보다 더 큰일이 내게 온다는 건."

"인생은 고행이야, 인마."

아빠가 웃으며 내 어깨를 툭 쳤다.

"근데, 아빠. 엄마한테 위로 좀 해 주고 그러면 안 돼? 지금 제일 힘든 사람은 엄만데."

"엄마가 힘든 건 알지만, 아빠가 원래 표현을 잘못하잖아. 지금 선우도 문제지만, 엄마한테도 문제가 없는 건 아니야. 엄마는 항상 선우, 너 왜 그러니? 하면서 선우를 조곤조곤 설득하려고 해. 그게 선우 감정을 더 건드리는 건지도 모르지. 나도 답답해서 조현병 관련 책을 읽어 봤는데, 조현병 환자는 비현실을 현실로 착각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야. 피해망상에 사로잡혀서 저도 힘드니까 나름의 자기 방어를 하는 거거든."

"그건 맞아. 엄마는 선우가 병이라는 걸 잘 인지하지 못하는 거 같아. 자식이니까 포기가 안 되는 거지. 조현병은 완치가 안 되는 병인데, 엄마는 엄마가 어떻게 잘해보면 선우가 나을 거 같은가 봐. 선우는 그게 통하지 않는 애고. 어떤 날은 학교 끝나고 집에 왔는데, 엄마와 선우가 싸우는 거 보고 있으면 미칠 것 같아. 그냥 피하고만 싶고. 마땅한 해결책이 없으니까, 그 순간 모면하려고."


안 그래도 입시 스트레스 때문에 힘든데, 집에 와서 선우와 엄마 보면 숨이 턱 막혔다. 학원 끝나고도 집에 바로 들어오지 않고 독서실을 전전하거나,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새벽에 들어올 때도 많았다. 집에 있으면 견디기 어렵다는 이유로 밖으로만 돌았다. 일요일에도 핑곗거리를 만들어 밖으로 나갔다.

"아빠도 피하기만 하는 거 같아. 술로 회피하고, 맞닥뜨리면 해결책이 없으니까."

"그런 셈이지."

"선우와 싸우고 가출하고 싶다고 했던 때 있잖아. 화가 나서 그랬긴 했지만, 그때 실은 아주 부끄럽고 창피했어."

"정우, 너 그때 진짜 나가려고 했던 거야? 고3이 가출이라니! 말도 안 되는 거였지. 아빠는 네가 많이 힘들구나, 싶었어. 그날 아빠가 그렇게 말한 것은 나가지 말라는 말이었지. 때론 그런 생각은 들어. 너라도 독립시켜서 선우에게서 벗어나 맘 편히 살게 하고 싶은 생각."

"선우에게서 벗어난다고 그게 맘 편히 사는 거겠어?"

"그러게. 선우 아까 아빠한테 전화 왔더라. 퇴원시켜 달라고. 왜 폐쇄 병동에 가둔 거냐고. 미안해서 할 말이 없었어."

"아주 답답하겠지. 배신감도 들었을 거고."

"아빠는 선우를 강제로 입원시켰던 일이 가장 마음 아파. 그럴 수밖에 없었지만, 선우가 얼마나 놀랐겠냐고."

선우가 다시 발작하고 방 안의 물건을 다 때려 부순 그날 밤, 식구들은 몰래 선우를 입원시키기로 했다. 선우는 자신이 정신질환에 걸렸다는 사실을 절대 인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선우를 입원시켜야 하는데 선우를 설득하여 입원시키는 일이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입원 절차도 힘들거니와, 입원하면 과연 완치는 될 수 있을지에 대한 문제로 밤새 이야기를 나누었다.


다음날 아빠와 엄마는 동네 신경정신과 의사가 써준 소견서와 관련 서류를 들고 전문 정신병원 의사와 상담했다.

"아드님이 언제부터 그랬습니까?"

"폭력성은 올초부터 나타났어요. 처음엔 사춘기를 겪느라고 그러는 줄 알았죠. 참 힘들다, 하면서도 그냥 넘겼어요. 그러더니 점점 심해져서, 나갔다 만 오면 화가 나서 방문을 걸어 잠그고 물건을 부수고."

"아드님은 이성적인 판단을 하거나 충동 조절을 하기 어렵고, 망상이나 환청증상도 겪고 했을 겁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괴롭힌다고 생각하고, 화가 나면 분노 조절을 못 합니다. 이제라도 잘 오셨습니다. 입원하면 많이 좋아질 거예요."

"입원시키면 완치는 가능한가요?"

"글쎄요. 완치라고 딱 한 마디로 말하긴 어렵습니다. 고혈압 환자나 당뇨 환자가 평생 약을 먹듯이, 이 병도 평생 약을 먹어야 합니다. 의술이 좋아져서 좋은 약이 많이 개발되니까 잘 치료해 봐야죠."


의사의 상담이 끝나고 부모님은 입원 절차를 밟았다, 병원 구급차를 예약하고 시간 착오 없도록 당부했다. 입원 절차를 마친 뒤 응급차를 타고 집에 도착했다.

선우는 기다리고 있었는지 문을 열기가 무섭게 가방을 들고 방에서 나왔다고 했다. 생각보다 순순히 그 남자들을 따라나섰다. 응급차가 좀 이상한 듯 잠시 머뭇거렸지만 별다른 저항 없이 차에 올라탔다.

아빠가 선우 손을 잡고 말했다.

"선우야, 가게 되면 엄마 아빠가 같이 있을 수 없고 혼자 있어야 해. 불안해하지 말고, 선생님들이 시키는 대로 잘하고 있어. 알았지?"

선우는 아빠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시선은 창밖을 보고 있었다.

차는 계속해서 달리고 있었지만, 아빠는 불안했다. 혹시라도 선우가 반항하며 소리를 지를까 봐 조마조마했다. 응급차가 경고등을 켜고 달려도 차들은 빨리빨리 양보하지 않았다. 차가 밀리기 시작하면 응급차의 경고등도 무용지물이었다. 병원까지 가는 길은 너무나 멀게만 느껴졌다. 마음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았다는 것이다.

"자식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킬 수밖에 없는 부모 마음은 겪어보지 않고는 몰라. 아빠 가슴엔 항상 무거운 돌덩어리가 얹혀 있는 것 같아. 가슴속을 꾹 누르고 있는 이 돌덩어리 때문에 가슴이 답답하고 아파!"

아빠는 가슴을 치며 눈물을 글썽였다.


나도 그랬지만, 아빠도 처음엔 선우가 조현병이라는 걸 믿지 않았다. 엄마가 신경정신과 상담을 받고 와서, 선우가 조현병 같다고 검사해 보자는 의사의 말을 전했을 때, 아빠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했다. 그런 병은 우리 조상 내내 한 사람도 없었고, 당신 집안에도 그런 사람 없잖아. 그런데 선우가 왜 그런 병에 걸려? 하면서 부인했다.

식구들은 선우가 사춘기 반항이 심하다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엄마 말을 듣고 나서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알아차렸다. 선우가 폭력성을 보일 때와는 달리, 어떤 날은 조금만 큰소리가 나도 깜짝깜짝 놀라며 공포에 떤다는 거였다.

"엄마, 무서워! 밖에 누가 칼을 들고 나를 해치려고 기다리고 있어."

"밖에 누가 있다고 그래?"

선우는 누가 듣기라도 하는 듯 목소리를 낮추며 경계의 눈빛을 나타내더라는 거였다.

"아냐. 누가 지금 나를 감시하고 있어. 정말이야."

엄마가 밖으로 나가려고 하면 나가지 못하게 엄마를 붙잡았다.

"엄마, 나가지 마. 무서워."

엄마는 현관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보았다.

선우는 다급히 방으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선우는 폭력적일 때와는 달리 누구에게 쫓기는 것처럼 공포에 떠는 모습을 보일 때가 많았다.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한 엄마가 신경정신과를 찾아가 상담을 했고, 선우가 조현병 검사를 받게 된 거였다.


아빠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무리 좋은 풍경을 봐도, 아무리 기쁜 일이 생겨도 전혀 기쁘지 않아. 아빠는 가장 큰 걱정이, 그나마 우리가 살아 있을 땐 선우를 돌보고 거둘 수가 있어. 문제는 우리가 떠나고 난 후야. 선우가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그게 제일 걱정이야. 그 생각만 하면 미치겠어. 왜 이런 일이 생겼나, 이게 무슨 날벼락인가! 내가 잘못 살아온 건가 싶고. 앞으로 선우는 평생 독한 약을 먹어야 하는데, 약은 그렇다 치고 선우를 누가 돌볼 거냐고. 그 생각만 하면, 아무리 좋은 일이 있어도 아빠 가슴속엔 시린 바람이 들어와."

나는 묵묵히 아빠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거실의 벽시계는 새벽 두 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조현병 환자가 우리나라 전체 인구의 1%라는데, 그 많은 조현병 당사자와 가족들은 어찌하고 있는지. 조현병 환자를 둔 가족들은 국가의 도움 없이 환자의 인생을 책임져야 한다. 치료비를 부담하고, 간호하며, 조현병 환자의 발작을 감내하면서도 드러내놓고 말도 못 하고 쉬쉬하며 살아간다. 그나마 돌봐줄 수 있는 가족이 살아있을 땐 그래도 다행이다. 만약 돌봐주는 가족이 환자보다 먼저 죽는다면, 환자를 안심하고 맡길 수 있는 치료기관이 없다.

언젠가 엄마가 울면서 그런 말을 했다.

"선우가 나보다 먼저 갔으면 좋겠어. 딱 하루만이라도 나보다 먼저 가야 내가 죽기 전까지 선우를 보살필 수 있을 거 아니야."


TV에서 조현병 환자에 대한 뉴스가 보도될 때마다 범죄와 관련된 사건이었다. 강남 한복판 여자 화장실에서 조현병 환자가 여자를 살해한 사건, 대낮에 길거리에서 쇠 파이프로 사람들을 때린 조현병 환자, 아무 이유 없이 아파트에 불을 질러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조현병 환자 등등. 뉴스 보도는 공포심을 불러일으켰다. 사람들은 암 환자나 치매 환자를 무서워하거나 혐오하지 않지만, 조현병 환자는 혐오의 대상이자 범죄자로 취급했다. 모든 조현병 환자가 다 그런 범죄를 저지른다거나, 모두 다 폭력적인 범법자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방송에서 보도된 이미지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편견을 갖는다. 사회적 인식은 조현병 자체에 느끼는 공포심보다 병에 걸린 환자에게 느끼는 두려움이 더 크다. 나 역시도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내 동생 선우는 조현병 환자가 되었다. 부인하고 싶어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정신분열증이라는 어감이 좋지 않아서 조현병이라는 말로 바뀌었지만,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정신이상자다. 그 단어는 이미 우리 가족에게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낙인처럼 가슴 깊숙이 박혔다. 사람들은 조현병 환자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어떤 증세로 무슨 고통을 안고 살아가는지엔 관심도 없다. 환자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도 없이 범죄자로 취급되는 조현병 환자는 방송 매체에서도 죄인처럼 몰아가고 있다. 우리 가족은 선우의 병을 아무에게도 말 못 했다. 가까운 친척들도 선우가 그런 병을 앓고 있다는 것을 모른다. 나 역시도 친구들이 알까 봐 쉬쉬했고, 선우가 조현병에 걸린 후로는 친구들을 집에 불러들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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