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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3)

by 정윤 Mar 21. 2025

나는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리고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나도 한때는 나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런 상태로 살아가면 뭐 하나. 불확실한 앞날에 대한 불안감으로 견디기 힘들었다. 가장 편한 게 죽음으로 끝내는 길 같았다. 죽음의 유혹은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수면제를 다량으로 복용할까? 옥상에서 뛰어내려? 아니면 면도칼로 손목을? 여러 가지 생각들이 꼬리를 물었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런 일을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무서웠다. 곱슬머리 형은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평상시에 말이 없어 속마음을 알 수 없던 형이었다. 가끔 웃을 때도 있었고 같이 음악을 듣긴 했지만, 형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전혀 몰랐다.


병동 안은 침울한 분위기가 이어졌다.

아침마다 하던 재활교육 시간도 취소되었다. 병동 사람들은 저희끼리 모여 귓속말로 수군거렸다.      

미술 시간엔 꿈에서 본 달팽이를 그렸다.

널따란 나뭇잎 위에 올라앉은 개미들, 어두운 숲 속 늪 가의 나무들과 수초. 조금 어둡지만, 환상적인 분위기를 표현하고 싶었다. 병실 창문 틈으로 탈출하는 달팽이를 또렷하게 그리고, 푸른 안개가 밀려드는 깊은 밤을 몽환적인 분위기로 처리했다. 바람이 몰아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흙먼지가 이는 그로테스크한 분위기가 살아나도록 음영을 주었다.


"나도 자살 시도한 적 있었어."

산책 시간에 등나무 아래에서 담배를 피우던 세아가 말했다.

"정신병원에 들어온 환자 중에 한때 자살 충동 느껴보지 않은 사람 있을까?"

내가 말했다.

"그건 그래, 나도 그랬으니까."

민재가 말했다.

세아는 무슨 말을 더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누구에게나 상처가 있겠지만 이곳에 들어온 환자들은 그 상처들을 감당할 수 없어서 병이 된 사람들이었다.


분위기가 가라앉은 탓인지 산책을 하는 병동 사람들의 표정이 어두웠다.

우울한 마음과는 달리, 비가 걷히고 난 뒤의 하늘빛은 푸르고 선명했다.

나는 등나무 밑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탈출할 방법을 모색했다.

어떻게 나갈까. 내 머릿속에는 그 생각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비둘기들이 날아와 의자 옆 쓰레기통에서 먹이들을 쪼아 먹었다.


곱슬머리 형은 다른 병동으로 옮겨간다고 했다. 앞으로는 곱슬머리 형에 대한 감시가 더 철저해진다는 거였다. 간호사와 보호사가 CCTV로 형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형을 따라다니게 된다는 것이다. 형은 특별 관리로 취급되어 심리 상담도 받고 재활교육도 받아야 한다. 민재에게 전해 들은 얘기다.

형의 얼굴은 기력이 빠져서인지 눈에 띄게 핼쑥해져 있었다.

나는 형의 등을 가만히 두드려주었다. 형이 보일 듯 말 듯 미소를 지었다.

“형, 잘 가.”

 내 말에 형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상 형과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불현듯 형을 붙잡고 싶었다. 형이 치료를 잘 받고 밝은 얼굴로 퇴원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보고 싶을 거야, 형."

형과 같이 오랫동안 같은 방을 썼던 민재는 눈물을 글썽이며 형을 와락 껴안았다.

형도 민재를 끌어안았다.

곱슬머리 형은 몸속의 체액을 몽땅 빨아 먹힌 채, 빈 껍질만 밖으로 내던져지는 벌레처럼 비실비실 쇠창살 문밖으로 걸어 나갔다.

병동 사람들이 창가에 붙어 서서 건너편 건물로 들어가는 형의 뒷모습을 보고 손을 흔들었다.     


등나무 아래 마련되어 있는 흡연실에서 사람들이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병원 뒤쪽 담 너머는 숲으로 우거져 있었다.

산책 시간에 담 옆을 거닐며 병동 사람들은 담장 뒤, 녹색 숲의 푸르름을 바라다보곤 했다.

그날은 산책이 어려웠다. 여름이라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산책 시간에 나와 같이 뜰을 거닐던 민재는 진료실 앞에 서 있는 낯선 사람들에게 다가가 담배를 얻어 피우기도 하고, 돈을 달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민재는 많은 돈을 요구하지 않았다. 오로지 천 원만,이었다.  

뜰을 거닐던 민재가 등나무 아래 흡연실로 걸어갔다.

담배를 하나 꺼내 불을 붙이고 빨아들이더니 훅 내뿜었다.

"너도 피울래?"

나는 민재가 내미는 담배를 받아 불을 붙여 물었다. 매운 연기가 목구멍 속을 콱 막아 숨쉬기가 힘들었다. 콜록콜록 기침하는 나에게 민재가 웃음을 날렸다.

"이런 걸 왜 피우냐? 쓰기만 한데."

"처음엔 그래 짜샤. 그래도 여기서 날 위로해 주는 놈은 얘밖에 없걸랑. 사실 우리가 무슨 낙이 있냐? 이런 거라도 피워야지."

민재는 담배를 깊게 빨아들인 뒤, 허공에 후! 연기를 날렸다.

"너도 담배 맛 알게 되면, 그래도 이만한 놈 없다는 걸 알게 될 거다."


나는 사실 담배보다 콜라가 너무 마시고 싶었다. 집에서 날마다 마시던 콜라를 병동에서 마시지 못했더니 콜라 생각이 간절했다. 목이 타들어 가는 것 같아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용기를 내기로 했다. 뭐든지 처음 시도가 어려운 거 아닌가. 처음만 잘 넘기자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병원 진료실 앞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낯선 남자에게 다가갔다. 가슴이 콩닥콩닥 뛰었다.

"저기요, 저, 천 원만 주시면 안 돼요?"

나는 떨리는 손을 뒤로 감추고 남자를 쳐다봤다.

남자는 5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데 인상이 나쁜 편은 아니었다.

나를 힐끗 쳐다보던 남자는 지갑에서 천 원이 아닌, 오천 원을 꺼내 주었다.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부르짖었다.

"감사합니다."

오천 원을 손에 쥐고 뛸 듯이 병원 매점으로 갔다.

뱃속의 장기들이 어서 빨리 콜라 맛을 보여 달라고 아우성을 쳤다.

매점 앞에는 탁자들이 놓여 있었다. 천 원을 받으면 캔 콜라 하나만 사 먹으려고 했던 나는 그곳에서 콜라와 라면을 시켰다.

라면이 나오기가 무섭게 면발을 입에 넣고 콜라를 마셨다. 쫄깃한 면발이 톡 쏘는 단맛의 콜라와 합체를 이루자 혀가 춤을 추는 듯했다. 그동안의 갑갑증이 씻겨 내려갔다. 오랜만에 살 것 같았다.      


우연히 피우기 시작했던 담배가 내 기호품이 될 줄은 몰랐다. 민재의 선심에 그냥 한 번 더, 가볍게 손을 대기 시작했던 담배였다. 처음에는 목이 콱 메고 쓰기만 했던 담배가 피우면 피울수록 나의 갑갑증을 풀어 주었다. 쓴 연기가 목구멍을 넘어가 가슴속을 훑어 내리면, 이상하게 가슴속에 뭉쳐 있던 서러움의 응어리들이 서서히 풀어지면서 연기가 되어 허공으로 날아갔다. 나는 민재보다 담배를 더 선호하게 되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제일 먼저 흡연실로 들어가 담배를 피우고 있는 것도 나였다.


오늘은 엄마가 면회를 오는 날이었다. 왜 그런지 모르겠으나 병원 측에서는 한 달이 되기 전엔 보호자들의 면회를 막고 있었다. 입원해서 견디기 어려워하는 환자들을 보면 마음 약한 보호자들이 환자를 퇴원시키는 경우가 많다고 언젠가 민재에게서 들은 것도 같았다. 또 다른 이유는 환자들이 처음 입원하면 충동성을 억제하기 위해 강한 약물을 쓰기 때문에, 환자들 상태가 평소와 많이 달라질 수 있어서 항의가 들어오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나도 처음 들어올 때보다 몸무게가 칠 킬로그램 정도 더 늘었다.


산책 시간인 세시가 되자 밖으로 나갈 수가 있었다. 산책 시간이 되자 민재와 세아, 나는 밖으로 나갔다. 언제부터인지 셋이 잘 맞았다. 누구보다 서로의 아픔을 잘 알고 있는 처지여서 더 급속도로 친해질 수 있었는지 모른다. 병원에서는 우리를 삼총사로 불렀다.

엄마가 면회를 오는 시간은 3시 30분이었다.

나는 천천히 등나무 아래 흡연실로 걸어갔다. 30분 후면 엄마를 만날 수 있다는 생각에 그나마 숨통이 트였다. 엄마는 오늘 피자와 치킨을 사 오기로 했다.

삼총사 셋이 흡연실 의자에 앉아 담배를 붙여 깊이 빨아들였다. 훅, 허공으로 흩어지는 담배 연기. 가슴속에 있던 답답함이 스르르 연기 속으로 날아갔다.

그때였다.

"선우야, 너 여기서 뭐 해?"

어디선가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황급히 담뱃불을 끄고 주위를 돌아보았다.

"으응? 어, 엄마!"

엄마는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나에게 다가왔다.

"선우 너, 언제부터 담배 피웠어? 미성년자가 담밸 피우면 어떡해!"

"답답해서 피우게 됐어. 담배 피우면 갑갑증이 사라진대서."

 "누가 그런 소릴 해."

 "아, 쫌! 그만해. 엄마는 내가 얼마나 힘든지 알기나 해?"

 "선우, 너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아, 쫌! 제발 좀 그만하라고!"

 "근데 너, 왜 이렇게 살이 쪘어? "

엄마는 한숨을 쉬며 내 몸을 여기저기 살펴보았다.

"아니, 어떻게 한 달 만에 이렇게 변해?"

엄마의 표정이 복잡해 보였다. 엄마는 어쩔 줄 모르고 있다가, 맥이 빠진 듯 털썩 의자에 주저앉았다.

한참 동안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는지 말이 없었다.

담배를 피우던 민재와 세아가 주춤주춤 물러났다.

엄마는 더는 앉아 있을 수가 없다는 듯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섰다.

화가 난 엄마는 고개를 푹 숙인 채 빠르게 걸었다.

엄마 뒤를 내가 따라갔다.

엄마는 면회실로 가는 게 아니라, 주치의가 있는 진료 대기실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엄마는 주치의 상담 신청을 했다.

엄마가 주치의 면담을 하는 동안 나는 진료 대기실에서 기다려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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