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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2)

by 정윤 Mar 17. 2025

2시간의 산책 시간이 끝나면 병동 사람들은 다시 철문 안으로 들어와야 했다. 

저녁 식사 시간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었다. 

식사 시간이 되면 식당에 식판들이 날라져 들어오고, 음식들이 들어왔다. 사람들은 식판을 들고 먹을 만큼의 양을 덜어 식탁에 앉아 먹었다. 음식을 보자 생각지도 않게 식욕이 몰려들었다. 콧속으로 구수한 냄새가 스며들자 입안에 단침이 고여 들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전혀 식욕이 없었는데 이상했다. 

나는 식판에 음식들을 담았다. 게걸스럽게 밥을 먹어 치우는 사람들 옆에서 나도 순식간에 밥을 먹어 치웠다. 밥을 먹어도 돌아서면 다시 배가 고팠다. 내 뱃속엔 아귀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먹어도 먹어도 끊임없이 밥을 달라 요구했다. 아무래도 주치의가 식욕 촉진제를 추가한 것 같았다.

나를 지켜보던 간호사가 나에게 다가와 말했다. 

"이선우 님, 이제 식사를 잘하네요. 밥맛이 돌아왔네요, 호호호."


나는 날마다 엄마에게 공중전화를 했다.

"엄마, 나 퇴원시켜 줘."

"힘들겠지만 조금만 참고 있어. 병을 고쳐야 퇴원을 하지."

"엄마, 숨을 못 쉬겠어. 약만 먹으면 축 늘어져서 종일 잠만 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고. 정말이야. 엄마, 제발. 퇴원하면 엄마한테 대들지도 않고 말도 잘 들을게. 엄마, 응?"

"조금만 더 견디고 있어. 선우야." 

"엄마. 나, 엄마 아들 맞아? 엄마가 나 낳은 거 확실하냐고. 어쩜 아들이 이리 죽을 거 같은 데도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안 가. 더러워서 집에 안 간다고. 끊어!"

나는 엄마에게 화를 내며 전화를 끊었다. 

자식을 이런 곳에 가둬두는 부모가 부모인가. 죄 없이 끌려와 갇히게 된 나는 부모가 싫고 경멸스러웠다. 


화가 나서 아빠에게 전화했다.

"아빠, 나 퇴원시켜 줘. 나를 왜 정신병원에 가둔 거야? 내가 조용한 곳에서 쉬고 싶다고 했지, 언제 정신병원에 가둬달라고 했냐고." 

"미안하다. 선우야. 미안해."

아빠는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자식을 정신병원에 가둔 부모가 부모야? 나를 왜 가둔 거냐고! 아빠가 나한테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이러는 거야?" 

"……!"

"나 퇴원시켜 달라고. 왜 말이 없어!"

 "……."

아빠는 말이 없었다. 아빠 하곤 도대체 대화가 되지 않았다.

전화를 끊은 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씩씩거리며 병동 복도를 수없이 왔다 갔다 했다. 

앞으로는 절대로 집에 전화하지 않겠다고 다짐했으면서도, 다음날이 되면 또 엄마에게 전화해서 떼를 썼다. 


내 방에는 곱슬머리 형과 까까머리가 같이 생활했다. 평소에 어두운 얼굴로 말없이 창밖만 내다보던 곱슬머리 형은 무슨 이유로 이곳에 들어왔는지 말을 하지 않았다. 까까머리는 시도 때도 없이 떠벌리며 병동 안을 돌아다녔다. 

조민재/ M/ 17세. 

까까머리의 이름이었다. 나이도 나와 같은 열일곱 살이었다. 침대 머리맡에 걸어둔 이름표를 보고 알았다. 눈가에 가늘고 긴 흉터 자국이 있어서 처음엔 민재가 무서웠다. 민재는 온종일 기분이 들떠 있었다. 항상 하이톤으로 종일 쉴 새 없이 떠들었다. 여기저기 간섭하지 않는 게 없고, 병동 사람들의 신상을 다 꿰고 다니는 놈이었다. 

"난 바이폴라야. 너 바이폴라가 뭔지 알지? 조울증 중에 조증 상태인 거. 난 거의 조증일 때가 많아. 기분이 갑자기 가라앉을 때가 있는데, 그런 경우는 일 년에 몇 번 안 돼. 하하하."

민재는 묻지도 않는 말을 떠벌렸다. 

녀석은 항상 수다스러웠다. 하루라도 빨리 이곳을 빠져나가고 싶은 나와는 달리, 민재는 이곳 생활에 만족해하는 듯 보였다. 나는 종일 떠들어 대도 지치지 않는 민재가 신기했다. 

"넌 여기가 좋냐? 난 지겨워서 나가고 싶은데."

"너처럼 병원에 처음 들어온 초짜들은 대개 그래. 나도 처음엔 그랬걸랑. 퇴원시켜 달라고 하루에도 몇 번씩 공중전화에 붙어살았지. 부모에게 전화해서 울고불고, 욕하고. 심지어 죽겠다고 협박도 했걸랑."

"누가 면회라도 와줬으면 좋겠다. 답답해 미치겠어."

"한 달 안엔 면회가 안 돼. 왜 그러는지는 모르겠지만, 여기 규칙이 그래. 난, 여기가 좋아. 나도 들어왔다 나갔다 입, 퇴원을 반복해 봤는데, 밖에 있는 거보다 여기가 더 편하걸랑. 우리 같은 사람들은 밖에 나가면 상처받을 일이 더 많걸랑. 여긴 다 같은 처지니까 그럴 일은 없어. 우리 엄마 아빠는 이제 무덤덤해진 것 같아. 매달 병원비와 간식비만 입금해 주고 면회도 잘 오지 않걸랑. 이젠 포기했나 봐."

민재는 쓸쓸한 웃음을 날리며 흡연실로 들어갔다. 


병동 안에서 흡연실은 비교적 잘 꾸며져 있었다. 널찍한 3인용 소파가 두 개나 놓여 있고, 둥그런 원탁에 빙 둘러 의자가 놓여 있었다. 흡연실 한쪽엔 커피자판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병동 사람들은 자판기 커피를 뽑아 마시면서 담배를 피웠다. 담배를 피우면서 커피를 마시면 담배 맛이 더 좋은 건지, 커피 맛이 더 좋은 건지 알 수 없었다. 담배 한 개비를 피우는 동안 커피도 아껴서 나눠마셨다.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환자들은 이 세상 시름이 하나도 없는 얼굴이었다. 담배를 피우는 동안 그들의 표정은 평온했다. 적어도 흡연실에서만큼은 나이가 많건 적건 간에 차별이 없었다. 미성년자라 해도 담배가 허용됐다. 바깥세상에서 생각하는 상식과는 다소 특이한 상황이 이곳에선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졌다. 미성년자에게 나이 든 노인이 담배를 빌려주고 불을 붙여주기도 했다. 


나는 흡연실에서 담배를 피우는 환자들을 물끄러미 들여다보았다.

"오빠, 담배 하나 줘?"

미술 요법 시간에 같이 그림을 그리는 세아가 담배를 하나 건네주며 물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담배 피우고 싶으면 언제든 말해." 

만화가가 꿈이라는 세아는 만화를 아주 잘 그렸다. 세아는 나보다 한 살 더 어렸다. 세아는 어릴 때부터 부모의 부부싸움이 잦아서 그럴 때마다 불안감을 느꼈다고 했다. 부모의 부부싸움이 격렬해지면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만화를 그렸던 아이였다. 어릴 때부터 만화를 그려서인지 세아의 만화는 기성작가들과 비교해도 별 차이가 나지 않을 만큼 뛰어나 보였다. 


둥글고 널따란 나뭇잎 위에 개미 열댓 마리가 올라앉아 있었다. 어두운 숲 속, 늪 가의 나뭇가지들과 수초가 가볍게 흔들렸다. 달팽이 한 마리가 병실 창문 틈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달팽이는 나가고 싶어도 굳게 닫힌 쇠창살 때문에 나갈 수가 없어 한숨만 내쉬었다. 개미들이 지팡이를 들고 주문을 외우자, 병실 창문에 드리워졌던 쇠창살 문이 스르륵 열렸다. 그러자 달팽이 한 마리가 천천히 기어 내려오기 시작했다. 달팽이는 감시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느려도 느리다고 비난하는 이가 없는 자유로운 풀숲이 그리웠다. 

 “힘내라, 힘! 힘내라, 힘!” 

나뭇잎 위에 올라앉은 개미들이 달팽이에게 응원을 보냈다. 달팽이는 땀을 뻘뻘 흘리며 있는 힘을 다해 아래로 기어 내려갔다. 한 줄기 바람이 훅 끼쳤다. 

달팽이가 허공을 올려다봤다. 

검은 하늘에 떠 있던 초승달이 달팽이에게 말을 건넸다. 

"행운을 빌어!"

"고맙습니다!"

달팽이는 개미들과 초승달에게 더듬이를 내밀고 꿈틀 인사를 했다.  

푸른 안개가 밀려드는 깊은 밤. 

병실 안은 침묵에 싸이고, 그곳을 감시하던 간호사들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달팽이를 응원하던 개미 중 한 마리가 애가 타는 듯 방방 뛰며 말했다. 

"좀 더 빨리, 좀 더 속도를 내 봐!"

뒤에서 금방이라도 누군가 잡으러 올 것만 같아서 달팽이도 애가 탔다. 

하지만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남들이 보기엔 느리지만, 달팽이 딴에는 죽을힘을 다해 가고 있는 거였다. 

간신히 건물 밖으로 내려온 달팽이는 나무들이 어둑하게 늘어서 있는 숲길을 향해 느릿느릿 기어갔다. 

어디선가 바람이 몰아쳐 나뭇가지가 흔들리고 흙먼지가 일었다. 


그날 새벽, 굵은 빗줄기가 창문을 때리는 소리에 나는 잠이 깼다. 

꿈속에서 탈출하던 달팽이 모습이 실제처럼 생생하게 지워지지 않았다. 달팽이는 과연 무사히 숲 속으로 돌아갔을까. 느려도 느리다고 비난하지 않는 숲으로 가서 행복을 찾았을까. 나도 하루빨리 이곳을 탈출하고 싶었다. 하지만 용기가 나지 않았다. 빗소리를 들으며 습관처럼 다시 눈을 감았다. 그런데 다른 날과는 달리 병원 분위기가 소란스러웠다.  


눈을 크게 뜨고 급히 주위를 둘러봤다. 

"곱슬머리 형이 자살 시도를 했어." 

나를 지켜보고 있던 민재가 말했다. 

곱슬머리 형은 모두 잠든 새벽에 자살 시도를 하다가 간호사에게 발각되었다는 거였다. 

비닐봉지를 뒤집어쓰고 목에 붙들어 매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나는 그날 처음 알았다. 

곱슬머리 형은 격리실에 감금되었다. 손발이 묶인 채 갇혀 있다고 했다. 간호사들은 환자들에게 격리실 주변을 얼씬도 못 하게 했다. 가끔 그곳에서 간헐적인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갑자기 심장이 세게 뛰기 시작했다. 

나는 침대 머리맡에 앉아 두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었다. 

쿵. 쿵. 쿵. 쿵. 

심장의 고동 소리가 더 크게 들려왔다.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발소리, 수군거리는 말소리들이 확성기를 틀어 놓은 것처럼 크게 들려왔다. 

아침 식사 시간에도 분위기가 어수선했다. 한동안 들리던 곱슬머리 형의 울부짖음이 들리지 않았다. 그 형에게도 긴 잠으로 이어지는 주사를 놓았는지 알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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