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ktx를 타고 부산역 하차.
버스를 갈아타고 이기대길 입구에 내렸습니다.
부산 이기대 해안도로 갈맷길 2코스.
푸른 바다가 넘실거리는 길을 걸었습니다. 바다색이 이처럼 다채로울 수 있을까. 그냥 푸른색이라고 뭉뚱그려버리기엔 바닷물의 깊이와 바람의 세기에 따라 여러 색의 푸른빛을 띱니다.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며 바다 앞에 섰습니다.
푸른 바다와 파도, 햇살과 바람, 그것들이 음악과 합체가 되면서 느껴지는 이 행복감은 무엇과 비교할 수 없는 충만감을 줍니다. 파도는 음악을 싣고 움직이며 바람은 리듬을 타고 나에게 다가올 때, 더할 나위 없는 최상의 순간이 됩니다.
바닷가 널따란 바위 끝에서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는 낚시꾼들의 모습이 보입니다. 그들은 목적을 이루기 위해, 바닷바람과 햇빛에 그을리면서 시간을 낚고 있습니다. 그들의 끝없는 기다림이 마치 움직이지 않는 사물처럼 풍경 속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멀리 바라다 보이는 광안대교가 해무에 묻혀 더욱 몽환적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이기대길이 끝나는 지점에 이르니, 오륙도로 향하는 벚꽃길이 이어집니다. 벚꽃은 화사한 제 모습을 좀 보라는 듯 끝도 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간혹 하늘하늘 떨어지는 벚꽃 잎새가 햇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별처럼 머리 위로 내려앉습니다.
누구에게나 각자 나름의 살아 내야 할 인생의 몫이 있습니다. 어려울 때가 있는가 하면 순탄할 때가 있고, 한 고비 넘겼다 하면, 또 다른 고비가 기다리고 있곤 합니다. 내가 오늘 걷고 있는 이 길처럼 한시도 허술한 틈을 주지 않습니다. 삶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변주곡입니다. 그러기에 살아갈 만한 묘미가 있는 것 아닐까요.
저녁에는 광안대교로 향했습니다.
노을 지는 대교의 모습과 이어지는 차량들의 물결이 한 편의 영상처럼 멋진 풍경이 됩니다. 해지는 광안대교의 모습은 왠지 쓸쓸합니다. 가슴속 뜨거움을 안으로 삭이며 사그라드는 불빛.
하나씩 하나씩 내려놓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는 내 모습을 보는 듯합니다.
비가 내리듯 부산의 밤거리에 휘황한 불빛들이 흘러내립니다.
늙은 작부가 주름진 얼굴을 가리기 위해 짙은 화장을 하고 사내들을 유혹하듯, 검은 바다 위에 반사된 불빛들이 붉은 혀를 날름대며 낯선 이들을 유혹합니다.
광안대교가 바라다 보이는 바닷가에서 젊은 연인들이 불꽃놀이를 하며 환호합니다.
나에게도 저런 시절이 있었던가.
까마득합니다.
인파로 밀리는 그곳에 사람들의 웃음소리와 말소리가 검은 밤바다에 비처럼 흘러듭니다.
흐린 안갯속에 둥실 떠있는 다리 위를 바라봅니다.
파도가 밀려드는 바닷가를 거닐며 내 젊은 날을 생각합니다.
나의 스무 살, 지금은 어디에 살고 있는지 소식조차 알 수 없는 여자아이 둘과 부산에 내려왔었습니다.
우리는 촌뜨기처럼 어수룩한 얼굴로 자갈치 시장 좌판에 펼쳐진 횟감을 기웃거리다가 어느 허름한 포장마차에 앉아 회를 먹었습니다.
생전 처음 소주라는 것도 마셔보고, 알딸딸한 취기에 호호거리며.
어떤 계획을 갖고 부산에 온 건 아니었고, 그중에 한 아이가 그저 막연히 부산 바다가 보고 싶다는 말에 의기투합해서 부산까지 내려왔던 거 같습니다.
그때의 부산과 지금의 부산 모습은 너무 다릅니다. 지금은 한 조각 추억이 되어버린 그 친구들과의 기억들, 그들은 지금 어디서 살고 있을까요?
지금의 낯선 부산의 느낌처럼 그들의 모습도 낯설게 변해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