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하나가 바뀌는 자연의 순리에도 겨울은 그리 쉽게 봄의 자리를 내주지는 않는 듯합니다.
새벽에 어둑어둑한 공기를 가르며 두꺼운 외투에 두꺼운 머플러로 무장을 하고 통영행 버스에 올랐습니다.
하지만 도착한 지심도에는 봄빛이 완연했습니다.
아침 안개가 걷히면서 습기를 듬뿍 머금은 장사도의 바다 위로 따스한 햇살이 반짝이고 있었습니다.
아무리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려도 계절의 순환은 어쩔 수 없나 봅니다.
이제 막 꽃봉오리를 틔운 동백꽃들이 앞다투어 봄빛을 빨아들이고 있었습니다. 이미 피어난 꽃들과 이제 막 피어오르기 시작하는 동백꽃들의 향연을 느끼며 섬 깊숙한 곳으로 발길을 내딛습니다.
길을 걷다 보니 동백꽃이 처연한 모습으로 바닥에 떨어져 있습니다. 정말이지 가슴이 아리도록 처연하고 애처로운 모습입니다.
동백꽃은 떨어질 때도 한 잎한 잎 떨어져 내리는 게 아니라 송이 채로 그냥 툭 떨어집니다. 온몸을 다해 사랑하다가 그 사랑이 멀어져 가면 온몸 다해 한순간에 목숨을 내어 놓는 정열의 지고지순함을 봅니다. 한참 동안 떨어져 있는 꽃송이들을 바라보다 다시 길을 걷습니다.
길을 걷다가 문득 발걸음을 멈춰 서서 오던 길을 뒤돌아 봅니다. 그건 앞만 보고 걷던 모습과는 확연히 다른 느낌입니다.
언젠가 맑고 밝은 이 섬에도 먹구름이 다시 끼겠지요. 영원한 것은 이 세상에 없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은 흘러가는 것이고 그래서 우리는 살아가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