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업이고 공부고 관심이 없었다. 교실에 억지로 앉아 있는 것은 고역이었다. 수업 시간에는 책상 위에 고개를 묻은 채 잤다. 잠들어 있는 나를 보며 대개는 그냥 모른 체했다.
방과 후. 아이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 여드름투성이 광식이가 화장실 뒤로 나를 끌고 갔다.
놈은 내 몸을 뒤져 돈을 찾았다. 내 몸엔 돈이 없었다.
화가 난 광식이가 내 복부를 가격하고 앞으로 꼬꾸라진 내 등을 내리쳤다.
나는 숨이 턱 막혀 바닥으로 주저앉았다.
"이 새꺄, 돈 좀 갖고 다녀. 이거 거지새끼 아냐? 너 내일까지 십만 원만 갖고 와. 알겠어?"
놈은 마치 나에게 돈을 맡겨둔 것처럼 당당하고 뻔뻔했다.
광식이는 내 주머니에서 휴대전화기까지 꺼내 갔다.
"당분간 압수야. 내일 돈 갖고 오면 돌려줄게."
"내가 돈이 어딨어? 그거 돌려줘. 맞는 건 얼마든지 할게."
"니깟 놈 때려서 뭐 해? 난 돈이 필요다고, 이 새꺄. 그깟 돈 십만 원을 못 구해? 말했다! 내일까지 못 구해오면 넌 죽을 줄 알아. 알았어?"
광식이는 발로 내 몸을 짓이겨대다가 등을 보이며 사라졌다.
나는 화장실 뒤쪽에서 흙투성이가 된 채로 쓰러져 있었다.
아무도 없는 화장실 뒤쪽은 적막했다. 뒤편 숲에서 솔향기가 스며들었다.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나는 아무도 보지 않은 게 차라리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일어나려고 하니 다리에 힘이 빠졌다. 심장이 두근거리고 숨이 찼다. 집으로 가야 한다는 것은 생각뿐, 주저앉아서 일어날 수가 없었다. 나는 쓰러지지 말자, 정신 차리자,라고 스스로 다짐했다. 간신히 일어나 흙투성이 옷을 벗어서 먼지를 털었다.
집에 들어가서도 광식이의 야비하게 번득이는 눈동자가 지워지지 않았다. 어떻게 돈을 구하나. 잠이 오지 않았다. 돈을 구할 길은 막막했다. 엄마에게 달라고 하면 주지 않을 게 뻔했다. 엄마는 한 달에 한 번 주는 용돈 외에는 추가로 돈을 주는 일이 없었다. 더구나 용도가 분명하지 않은 돈을 줄 리가 만무했다. 내 용돈은 이미 바닥이 난 상태였다. 어쨌든 핸드폰을 돌려받기 위해서라도 십만 원이 필요했다. 할 수 없이 그간 태블릿 PC를 사려고 모아 두었던 금쪽같은 내 돈을 세어봤다. 책 속에 몰래 숨겨두었던 이십오만 원 중 십만 원을 덜어냈다. 그동안 엄마가 주는 용돈을 조금씩 아껴서 모아 둔 돈이었다. 나는 분하고 아까워서 속이 쓰렸다.
방과 후, 광식이가 따라오라고 나에게 손짓했다.
나는 자석에 이끌린 것처럼 광식이를 따라갔다.
급식실 뒤편으로 간 광식이가 다짜고짜 물었다.
"가져왔어?"
나는 주머니 속에 있는 십만 원을 꺼내 광식이에게 주었다.
"이제 핸드폰 돌려줘. 이것도 간신히 구해 온 거야."
"됐고! 이번 주말에 여친 만나는데, 니가 좀 도와줘야겠다. 모레까지 이십만 원 콜? 핸드폰은 그때 줄게."
"안 돼, 핸드폰 돌려줘."
"죽을래?"
또다시 놈의 구타가 이어졌다. 놈은 얼굴은 때리지 않고 몸만 때렸다.
나는 온몸을 죽은 벌레처럼 구부려 말고 구타가 끝나기만을 기다렸다.
쓰러져 있는 나를 발로 짓이기며 광식이가 말했다.
"만약 니 엄마에게 불면 넌 그날로 죽을 줄 알아, 새꺄. 내 뒤에는 지켜주는 형들이 있어. 너 같은 건 감쪽같이 땅속에 묻어 버릴 수도 있다고. 알았냐? 이 씹새야."
나도 광식이를 죽도록 패고 싶었다. 죽이고 싶도록 광식이가 미웠다. 그런데 막상 광식이 주먹이 날아오면 몸이 얼어붙었다. 광식이를 죽도록 패주고 싶은 건 마음뿐, 내 몸은 마비된 것처럼 움직일 수가 없었다. 나는 그런 나 자신을 자책했다.
바보 같은 놈, 병신. 뒈져라, 이 병신새끼야.
그 후로도 나는 광식이의 협박에 시달렸다. 그럴 때마다 번번이 끌려다니며 점점 광식이의 노예가 되어갔다.
나는 학교 가기 싫다며 전학시켜 달라고 엄마에게 하소연했다.
"왜? 이유가 뭐야?"
"그냥, 전학시켜 주면 안 돼? 꼭 이유가 있어야 해?"
"아니, 고등학교 들어가자마자 두 달도 안 됐는데 전학시켜 달라니, 이유를 알아야 전학을 시키든지 말든지 할 거 아니야."
엄마는 내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도리어 아빠에게 말해 나를 곤경에 빠트렸다.
"선우, 왜 학교 가기 싫다는 건데?"
퇴근해 들어온 아빠가 이유를 물었다.
나는 아빠에게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왜 그래? 새 학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얘기해 봐."
입을 꾹 다물고 있는 나에게 아빠는 제발 철 좀 들라며 한숨을 쉬었다.
날마다 학교에 가는 일은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 같았다.
광식이는 날마다 돈을 요구했고, 나는 광식이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내 돈이 바닥이 나자, 돈을 마련하기 위해 엄마 돈을 훔치기로 했다. 별 뾰족한 수가 없었다. 나쁜 짓인 줄 알면서도 어쩔 수 없었다. 다음 날 학교에서 광식이에게 무서운 발길질을 당하느니, 도둑질을 하는 게 차라리 나았다.
나는 호시탐탐 밖을 노리며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주방에서 설거지하던 엄마가 쓰레기봉투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 틈을 타 엄마 방으로 들어갔다. 엄마 가방을 열었다. 심장이 세차게 뛰었다. 숨이 멎는 것 같았다. 떨리는 손으로 엄마 지갑을 열었다. 다행히 지갑 안에는 지폐들이 제법 들어있었다. 앞뒤 재고 말고 할 시간이 없었다. 재빨리 돈을 꺼냈다. 엄마가 금방이라도 들어올 것 같아 머리부터 발끝까지 얼어붙는 것 같았다. 엄마 방을 나와서도 두근거리는 가슴은 진정되지 않았다.
결국 그날 밤, 나는 엄마에게 들키고 말았다. 엄마는 추궁했고 나는 완강히 부인했다.
도리어 화를 내는 나에게, 엄마는 화를 내다가 기막혀하다가, 급기야는 울었다.
광식이의 눈동자는 CCTV처럼 어디서든 나를 지켜보며 쫓고 있었다. 나는 노이로제에 시달렸다. 광식이의 그림자는 한시도 놓아주지 않고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녔다. 금방이라도 어디선가 광식이가 불쑥 나타날 것만 같아 소스라치게 놀라곤 했다.
나는 막다른 길에 돌입했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돈 좀 줘!"
"어디에 쓸 건데? 너, 아침마다 도대체 왜 그래?"
"으악! 그냥 좀 주라고!"
나는 엄마에게 소리를 질렀다. 어떤 이성이나 논리가 통하지 않았다.
돈을 주지 않으면 물건들을 집어던졌다. 아침마다 엄마와 전쟁 같은 실랑이가 이어졌다.
학교가 끝나고 집에 들어가면 말을 하기 싫었다. 밥도 내 방으로 갖고 들어가서 문을 잠그고 먹었다. 엄마의 핀잔이 이어졌지만 혼자가 편했다. 날마다 우울해졌고 머리가 아팠다. 날이 갈수록 점점 왜 사는 건지도 모르겠고, 내가 누구인지, 나를 잃어버린 느낌이 들었다. 모든 게 귀찮고 기분이 가라앉았다. 그저 날마다 반복되는 삶에서 도망치고 싶었고 죽고 싶었다. 가족들은 내가 사춘기를 심하게 겪는다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귓속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낯선 소리가 주는 당혹감에 혼란스러웠다. 여러 가지 정체 모를 잡다한 소리가 잡음처럼 섞여 들려왔다. 마치 여러 사람이 모여 웅성거리는 소리 같기도 하고, 야구장 같은 곳에서 들리는 함성 같기도 했다. 나는 알아들을 수 없는 환청 때문에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밤에도 뜬눈으로 보냈다.
유난히 겁이 많았던 나는 주위가 항상 무서웠다. 얼핏 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면, 건너편 집 지붕 위에서 여러 마리의 짐승들이 무서운 눈으로 내 방을 들여다보는 것 같았다. 창문을 굳게 잠그고, 커튼을 쳤지만 커튼 뒤로 금방이라도 불쑥 그 짐승들이 튀어나올 것만 같았다.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고 있던 어느 날 저녁이었다.
그날도 방문을 잠그고 혼자 TV를 보고 있었다. 별안간 TV에서 나를 비웃고 조롱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깜짝 놀라 두 눈을 부릅뜨고 TV를 노려봤다. 나는 내 귀를 의심했다. 뉴스 시간의 앵커까지 나를 비난하고 있다는 사실에 기가 막혔다. 화가 나서 앵커를 노려보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뉴스가 끝나자, 이번엔 쇼프로그램에 나온 연예인들이 또 나를 흉보며 깔깔거렸다.
"야, 씨발! 이 개새끼들아!"
나는 욕을 퍼부었다.
광식이가 나와서 나를 욕하며 비웃었다. 광식이의 비열한 웃음소리는 치가 떨렸다.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심장이 격렬하게 뛰었다.
"때려!부숴!때려,부숴!때려,부숴!때려,부숴!……."
귓속으로 그 목소리가 반복해서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내 마음 깊은 곳으로 파고들어 와 나를 괴롭혔다. 이미 내 몸은 내 몸이 아니었다.
나는 야구방망이로 TV 화면을 박살 냈다. TV 액정이 펑! 소리를 내며 구멍이 났다. 책상 의자를 후려치고, 거울을 깨부쉈다. 유리 파편들이 사방으로 튀었다. 답답했던 가슴이 시원하게 뚫리며 통쾌해졌다.
깜짝 놀란 형과 엄마가 밖에서 문을 두드렸다.
"선우야, 왜 그래! 문 좀 열어 봐."
나는 잠긴 방문을 열지 않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깨진 유리 파편들이 침대까지 튀었는지 피부에 닿아 쓰라렸다.
"어때? 때려 부수니 속이 시원하냐? 낄낄낄낄."
귓속에서 목소리가 나에게 웃음을 날렸다.
내 몸속까지 파고들어 와 나를 조종하는 놈에게 소름이 끼쳤다.
목소리에 또 휘둘렸다는 느낌이 들었지만,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 들었다.
한참 시간이 흘렀다. 집안은 조용했다. 나는 침대에 튄 유리 조각들을 털어냈다.
삐삐삐삐삐삐.
아빠가 퇴근해 들어오는 소리가 났다. 엄마와 얘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쾅쾅쾅!
"선우야, 문 좀 열어 봐!"
아빠가 문을 두들겼다.
나는 문을 열지 않았다.
"이선우. 문 열어! 문 못 열어?"
아빠는 부술 것 같은 기세로 문을 발로 쾅쾅 찼다.
아빠의 무게감은 달랐다. 불안했다. 무서워서 할 수 없이 문을 열었다.
방으로 들어온 아빠는 아수라장이 된 방안의 풍경을 보고 얼굴빛이 변했다. 순식간에 내 뺨으로 아빠의 주먹이 날아들었다. 이어서 복부와 머리로 주먹을 날리더니 웅크린 나에게 무차별적인 발길질을 했다.
"이럴 거면 차라리 죽어버려, 이 새끼야. 이건 자식이 아니라 웬수야!"
엄마와 형이 아빠를 말렸다.
"놔! 저 새끼 죽이고 나도 죽어 버릴 거야."
형이 아빠의 허리를 감싸 안은 채 밖으로 나갔다.
나는 방문을 잠그고, 침대 위에 웅크려 엎드렸다. 몸 여기저기가 욱신거리며 쑤셨다.
"병.신.새.끼, 니.아.빠.를. 죽.여! 니.아.빠.를. 찌.르.라.고!"
귓속에서 또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는 광식이 목소리 같기도 하고, 누군지 알 수 없는 목소리 같기도 했다. 목소리가 거듭될수록 더 혼란스러웠다.
"병신새끼죽어버려병신새끼죽어버려병신새끼죽어버려병신새끼죽어버려."
나는 목소리가 두려웠다. 그 목소리를 막기 위해 이어폰을 끼고 음악 볼륨을 높였다.
‘해는 높이 떠서 나를 찌르는데 작은 달팽이 한 마리가 어느새 다가와 내게 인사하네.
아무도 못 봤지만, 기억 속 어딘가 들리는 파도 소리 따라서 나는 영원히 갈래.’
나는 침대 위에 웅크리고 앉아 오랫동안 창밖을 바라보았다. 창문을 푸르게 물들이며 동이 트고 있었다.
가족들의 설득 끝에 나는 부모님과 함께 동네 신경정신과에서 검진받기로 했다.
병원에 가는 조건으로 학교는 자퇴하고 다니던 미술학원만 그대로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엄마는 내 뜻대로 해주었다.
병원 검사 결과는 조현병이라는 판정이 내려졌다.
담당 의사는 말했다.
"몸에 감기가 들듯이 뇌 속에 감기가 든 겁니다. 감기가 들면 콧물이 나고 목이 붓고 기침이 나듯이, 뇌 속에 있는 전두엽이라는 곳에 고장이 생겼어요. 약 잘 먹고 치료하면 나을 수 있으니, 약을 거르면 안 됩니다."
나는 의사가 주는 약을 받아들고 집으로 왔다.
의사의 말이 믿기지 않았고, 약을 왜 먹어야 하는지도 이해되지 않았다. 현실을 부정하고 도망치고 싶었다.
엄마는 그날 저녁부터 나에게 약을 먹으라고 성화였다. 약을 먹으니 불안감은 많이 사그라들었다. 하지만 머릿속이 뿌연 안개에 휩싸인 것처럼 멍해졌다. 몸이 둔하고 중심을 잡지 못해 뒤뚱거릴 때도 있었다.
아침마다 엄마는 식탁 위에 알약들을 챙겨놓았다.
엄마는 내가 약을 먹었는지 빠트렸는지 호시탐탐 나를 지켜봤다.
알약을 먹으면 입이 마르고 자꾸 갈증이 났다. 입안에 침들이 찐득하게 달라붙었다. 물을 마셔도 소용없었다. 그 알약들은 나를 둔하게 만들었다. 머릿속 생각들이 한 템포 씩 느리게 다가왔다. 마치 머릿속에 벌레가 들어앉아 내 생각의 길목을 막고 있는 것 같았다. 하염없이 늘어지고 기운이 아래로 가라앉았다. 나는 몸속 이상 기류들로 견디기가 어려웠다.
엄마가 지켜볼 때면 알약들을 입속에 넣었다. 나는 삼키지 않았다. 알약들을 내 혀 밑에 숨겨두고 물만 삼켰다. 엄마 몰래 화장실 변기에 알약들을 뱉어내고 물을 내렸다. 엄마는 전혀 눈치채지 못했고, 내가 알약을 잘 복용하는 줄 알고 있었다.
미술학원을 마치고 집으로 가는 길이었다.
아파트 입구에 광식이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 몸은 악마를 보듯 소름이 돋았다.
"너, 자퇴했다며? 돈줄이 막히니 답답하기도 하고, 니 얼굴이 보고 싶기도 하고. 킥킥킥!"
광식이가 내 주머니에 손을 댔다.
내 속에서 뜨거운 것이 밀려 올라왔다.
나는 거칠게 광식이를 밀쳐내며 소리를 질렀다.
"이 미친 새끼야. 저리 꺼져! "
"어쭈, 제법인데?"
광식이는 나를 제압하고 바닥에 팽개쳐 눕혔다.
놈은 내 몸을 깔아뭉개고 내 위에 올라탔다.
나는 광식이 밑에 깔려서 꼼짝할 수가 없었다.
"이 새끼, 이게 겁대가리가 실종됐어. 진짜 죽고 싶냐?"
놈은 내 지갑을 뒤져 돈을 꺼낸 뒤 유유히 사라졌다.
나는 멀어져 가는 광식이에게 욕을 퍼부었다.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어금니 사이로 쓰디쓴 침들이 솟아올랐다. 아파트 벽에 머리를 기대고 한동안 서 있었다. 사람들이 힐끔거리며 지나갔다.
"왜 사냐? 나 같으면 진작 죽었겠다. 병신 새끼, 죽지도 못하냐?"
귓속에서 목소리가 나에게 이죽거렸다.
목소리는 때로 간교하기까지 했다.
어떤 날은 달콤하게 내 귓속을 속삭이며 날 유혹했다.
"괜찮아, 기분이 한결 나아질걸."
나는 목소리가 시키는 대로 수음을 했다.
쾌락의 끝은 나를 더 깊은 우울감에 빠지게 했다.
목소리는 킬킬대며 내 곁을 떠나지 않았고, 나는 점점 목소리의 꼭두각시가 돼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