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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미희건이나비 Feb 23. 2024

사과 주문

주문 언제 할까요

  사과 주문하던 농장에서 문자가 온다. 지난번에는 감이 많이 있다고 주문을 미루었다. 이번엔 뭐라 하지? 고민이 된다. 사실 사과는 가족 중에 아버님이랑 남편이 젤 좋아했다. 그런 아버님도 소천하시고 남편은 병원서 당화혈색소 수치가 높아 과일을 자제할 것을 권유받았다. 과일을 좋아해서 감이든, 귤이든 한자리에서 다섯 개는 기본이고, 사과도 하루 두 개는 뚝딱이다.  한 알 내지 반 개만 먹으라 하니 남편은 의욕을 상실했다. 그러니 나도 사과주문을 못하고 있다.


  “차라리 사과농장을 해봐라”라고 어머님께서  말씀하셨단다. 남편이 어렸을 때부터 사과를 너무 좋아하고 잘 먹으니 하신 농담이었다. 거기다 나도 사과를 좋아해서 우린 한때 “해볼까? “ 하는 생각도 잠시 가졌었다. 하지만 과일 중에 농약을 가장 많이 치는 것이 사과란다. 포기하고 돈 많이 벌어 좋은 거 사 먹자 했다.


  결혼하고 첫 생일이 되었을 때였다. 우린 아침에 사과 먹으면서 잠을 깨우는 루틴을 하고 있었다. 그날따라 내가 가지러 가기 싫어서 남편에게 사과 좀 가져오라고 부탁했다. 남편은 그럼 ‘가위 바위 보’ 하잔다. 나는 열에 아홉 번은  졌기 때문에 남편이 일부러 하자 했는데, 웬일로 내가 이겨버렸네? 

 나는 신난다 하고, 남편이 갖고 온 사과를 잘 먹었다. 그때 남편 안색이 별로인 이유를 냉장고 문을 열고서야 알았다. 세상에나 내가 아침에 가장 먼저 하는 일이 냉장고 문을 열고 사과를 가져오는 것이라, 그 안에 생일선물을 두었다. 눈치 없는 나는 그날따라 내기에 이겨 깜짝쇼를 못한 당신이 얼마나 찐 맛이 없었을까? 그렇게 사과는 우리에게 가장 친한 과일이었다.


  인류의 사과를 굳이 나열해 보자면 아담과 이브의 사과도 있고 빌헬름 텔의 사과, 뉴턴의 사과, 세잔느의 사과, 백설공주의 사과, 스피노자의 사과, 잡스의 사과등이 있다. 유독 사과와 관련된 일화가 많은 것은 그만큼 사과가 사랑받는 과일이었다는 것이다. 뉴욕에도 사과나무를 많이 심어 빅애플이라는 애칭이 있단다. 특히나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 한 사람인  잡스가 애플사의 이름을 짓기 전에 고민하면서 사과를 베어 물었는데 거기서 로고의 영감을 받았다는 얘기도 있다.


  건강에 좋은 것은 물론이고, 사과나무 밭 또한 너무 아름답다. 사과 예찬을 쓰려면 한참이 걸린다.  누구라도 사과하면 떠오르는 추억도 많이 있을 것이다. 유태인들은 사과가 익으면 아이들에 학교 갈 때 사과에 꿀을 발라서 도시락에 넣어준단다. 공부하는 것이, 배움이 그렇게 달콤한 것이라고 생각하도록 말이다. 이렇게 좋은 사과를 자제해야 하는 남편이 요즘 시무룩하다. 하지만 어쩌랴 건강이 우선이니 잘 따라와 준다. 박스로 사던 과일을 이제는 조금씩만 사게 된다. 변화는 늘 오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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