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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영 Jun 05. 2019

긴 팔 래쉬가드와 비키니

바다로부터의 치유

긴 팔 래쉬가드와 비키니


 발리 바다에서의 몇 달은 자존감을 높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바다는 정직하다. 화장도 소용없고, 머리 손질도 필요 없다. 심지어 어떤 옷을 입어도 체형을 커버하기 보다는 그대로 드러나도록 만든다. 처음에는 이런 바다가 두려웠다. 화장으로, 옷으로 나의 단점을 꽁꽁 감추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이 말이다. 처음 꽤 오랜 시간 동안은 긴 팔 래쉬가드와 워터레깅스에 반바지까지 입어 몸을 꽁꽁 감추고 서핑을 했다. 소용 없는 것을 알면서도 화장을 하고 바다에 들어가보기도 했고, 며칠 동안 지속되는 눈썹과 입술 타투 펜을 사서 바르기도 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바다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굴이 어떻든, 몸매가 어떻든 자기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는 사람들을 말이다. 뱃살이 이만큼 튀어나와 있든, 겨드랑이에 군살이 있든, 다리가 짧든 굵든 예쁜 비키니를 입고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스러웠다. 그냥 그들 그 자체였다. 누군가가 그들을 이상하게 쳐다보지도 않았고, 평가하지도 않았다. 


 점점 남들 시선을 신경 쓰며 이렇게 나를 꽁꽁 숨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좋든 싫든 이게 난데 말이다. 그 이후, 하나씩 옷을 벗어갔다. 처음에는 워터레깅스를, 반바지를, 그리고 래쉬가드를. 사실 볼륨 없는 몸매와 군살들이 완전히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하면 아직은 거짓말이지만, 콤플렉스를 감추고 있던 옷들을 하나하나 벗어 던지는 건 나에게 큰 변화다. 




비키니는 나에게 단순한 노출이나, 
누군가에게 매력을 어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존감을 회복하는 수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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