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영, 정현, 정연, 정령 그리고 콩용
내 이름은 정영이다. 한국인들에게도 어렵지만 외국인들에게는 매우 어려운 이름이다. 카페에서 이름을 물어보면 그냥 ‘영’이라고 대답하는데, 잔을 보면 항상 Yong 이라고 적혀있다. 그래도 로컬 친구들은 나를 제대로 기억해줬으면 하는 바람에 이름을 그대로 소개하지만, 이들이 나를 부르는 이름은 여전히 각양각색이다. 쩡영, 청영, 종용, 존욘 다양한데,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바로 콩용이다.
니스카를 처음 만난 날, 니스카는 다른 강습생들과 찍은 사진을 인스타에 올렸었다. “Where is congyong?” 이라는 글과 함께. 처음에는 콩용이 내 이름일 거라곤 상상도 못 했다. 같이 서핑하는 언니들과 인도네시아어 번역기도 돌려보고, 콩용의 정체가 뭔지 한참동안 고민하다가 문득 든 생각에, “이거 설마 제 이름은 아니겠죠…?”라고 말한 순간 그 곳은 웃음바다가 되었더라지. 알고 보니, 인도네시아에서 C는 ch로 발음된다고... 그래도 이 사건 이후로 오히려 난 콩용, 쩡영, 존욘 등으로 불리는게 더 좋다. 각각의 친구들이 기억 속에 더 특별하게 남는 것 같아서 말이다.
나 니아스로 돌아가
델은 한국어를 굉장히 잘하는 편이었는데, 외국인 특유의 발음으로 “니 콧쿠멍 창 커” 라든지… “내 코딱지 마싯소” 라고 말할 때는 해변에서도 내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을 만큼 크게 웃곤 했었다. 그리고 내 코 옆의 점을 보고는 ‘모스키토’라며 항상 내가 아닌 모스키토에게 인사를 하곤 했다.
그런데 그런 델이 갑자기 니아스로 돌아간단다. 아직도 발리에서의 시간이 많이 남아있었기에 니아스 보이즈와의 이별을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나였다. 바다 밖에서 만난 적조차 없는 친구들이었지만 두 달 동안 바다에서 인사하고, 이야기하고, 실없이 웃으며 장난쳤던 기억이 내게 너무나도 소중하게 남아 있었나보다. 캠프에서 만난 서퍼들이야 한국의 라인업에서 언제든지 다시 볼 수 있을 거란 믿음이 있기에 이별이 슬프지 않았지만, 니아스 보이즈는 달랐다. 그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들을 만날 기회는 아마 영영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기에 그 싱숭생숭하고 이상한 마음으로 델과 작별인사를 했더란다.
근데 이게 뭐람. 3일 뒤 바다에서 자신의 보드 뒤에 숨어서 나를 빼꼼 쳐다보고 있는 델을 발견하고야 말았다. 그렇다. 장난이었다. 이별이 아쉬웠던 만큼 배신감이 머리 끝까지 차 올라서 “야!!!!!” 하고 크게 소리를 지르며 쫓아갔지만, 이내 뭔지 모를 안도감과 함께 이에 속은 내가 너무 웃겨 함께 깔깔 거리며 웃고 말았다. 속은 것은 분하지만, 그래도 발리에서 보내는 일상, 그리고 그 일상을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을 수 있었기에 이 역시도 소중한 사건이다.
Summer ‘Marry’ Christmas
그 날의 분위기는 조금은 어수선했고, 조금은 들떠있었다. 날씨는 꽤나 흐렸고, 비가 살짝 흩날렸다. 야외 공간에 애써 꾸며놓은 하얀 천자락이 혹여나 떨어질까 마음을 졸였던 게 기억이 난다. 항상 바닷물에 절어 꾸밈이 소용 없었던 사람들은 오랜만에 머리를 하고 화장을 했고, 정장을 갖춰입는 대신 캐리어를 뒤져 가장 예쁜 옷을 꺼내입었다.
누군가는 캠프 전체에 울려퍼지도록 연습했던 축가를 부르고, 누군가는 정성어린 축사를 읊고, 또 누군가는 진행을 했다. 그러다 그쳤나 싶던 빗방울이 다시 떨어지기 시작하자 다 함께 얼마 안되는 공간에 서서 비를 피하며 그들을 축복했다. 그 때 틀어두었던 음악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그 몽글몽글한 음악과 빗소리, 어수선한 듯 행복이 묻어나오는 사람들의 말소리, 박수소리... 그건 꼭 영화 어바웃 타임 속 결혼식의 한 장면이었다.
크리스마스 이브에 발리에서, 그리고 그들에게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서핑캠프에서, 두어 달 전만 해도 잘 몰랐던 사람들과 정성스레 만들어간 결혼식. 그 속에 있던 어느 누가 자신이 그 장면에 남게 되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내 친동생은 나를 따라 발리로 오자마자 그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었다. 그 쭈뼛쭈뼛한 자세와 얼떨떨한 표정은 내가 기억하는 그 날의 풍경 속 웃음포인트 중 하나이기도 하다. 꼬깃꼬깃한 종이에 진심을 담아 꾹꾹 눌러쓴 축사를 읊는 동안 하나둘 터지는 눈물에, 누군가 동생에게 넌 안 울었냐고 물었던가... 오늘 처음 봤는데 우는게 더 이상한게 아닐까요 라고 당황스러워 하며 대답했던 것 같은데, 그러게나 말이다. 오랜 기간을 알고 지냈던 것도 아니었던 언니오빠의 결혼식에 왜 다들 그렇게나 훌쩍였는지.
그 날 난 부케를 받았다. 왜 하필 제일 막내인 나에게 꽃다발이 떨어졌는지는 모르겠는데, 언니들에게 양보하려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있었던 탓인 것 같기도 하다. 내 인생 첫 부케는 그렇게 좀 이르게, 아주아주 특별한 결혼식에서 찾아왔다.
식이 끝나고는 마당에 빈백을 놓고 둘러앉아 발리에서 구할 수 있는 모든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었다. 다 함께 블루투스 마이크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고, 해가 질 때까지 수영장에 둘러앉아 맥주를 마셨다. 비가 완전히 그쳐 별이 많이 보였던 깜깜한 밤에는 수영장 벽에 빔프로젝터를 설치하고 다 함께 결혼식 영상을 보았다. 약간 몽롱한 상태에서 봤던 그 영상은 식이 끝나자마자 완성했다기엔 너무나도 완벽했고, 행복했고, 또 반짝거렸다.
그러다 그러다 신랑을 시작으로 하나 둘 수영장에 서로를 빠뜨리기 시작했다. 신랑 옷이 희고 얇아서 큰 사고(?)가 날 뻔 했는데, 부케가 가려준 덕에 모두가 배꼽을 잡고 웃었다. 난 설마 계단을 끌고 내려가진 않겠지 하는 생각으로 2층 도미토리에 숨어있다 양 팔다리를 붙잡혀 끌려나갔는데, 끌려 나가면서도 그게 너무 웃겨서 정신없이 웃었던 것 같다. 밤이라, 또 비가 왔던 날이라 기온이 떨어져 있었던 탓에 다음날부로 캠프에 강력한 감기바람이 불었던 건 비밀이다.
으리으리한 식장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반짝거리는 샹들리에나 엄청난 하객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진심으로 축복한 그 날의 결혼식은 그 어떤 결혼식보다도 소중하고 아름다운 결혼식이었고, 또 그럴 것이다. 지금은 호주에 있는 언니오빠에게 축하로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어 이렇게 기억을 꺼내놓아 본다. 신랑신부의 기억에 이 기억의 조각이 더해져 그 속에 더 오래 오래 행복을 담고 있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