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 속의 감정들
서핑할 때의 나는 오로지 그 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단 1초라도 잡고 있던 집중의 끈을 놓으면 파도를 놓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겠지. 그래서인지 어떤 우울이나 방황, 증오가 나를 지배하더라도 바다에 있는 동안에는 싹 잊어버리게 된다.
바깥에선 온통 얼룩덜룩했던 내 머릿속은, 바다로 뛰어드는 순간 손 끝을 지나며 부서지는 파도만큼 하얗게, 파도 하나 하나를 넘어갈 때마다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욕조에 물을 콸콸 틀어놓은 것처럼 점점 투명하게 바뀌어간다. 너무 맑아서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명확하게 보일 즈음까지. 그럼 그때부터 나는 투명한 머릿속에 유일하게 보이는 것을 쫓아갈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아마 오직 파도와 파도를 타는 사람들, 그리고 순간순간의 감정 정도가 전부일 테다.
그래서인지 바다에서는 자주 어린아이가 되기도 한다. 나이를 스물 세 개나 먹고 몰래 물 뿌리고 모른 척 하기, 장난감을 놓고 경쟁하는 아기들 마냥 좋은 파도가 오면 “아니야 이거 노 굿 가지맠ㅋㅋ” “돈 패들 정영! I go!!” 외치곤 깔깔거리며 있는 힘껏 패들하기, 그러다 둘 다 파도를 놓치면 서로 바보라고 놀리기. 이렇게나 모든 것에서 벗어나 호탕하게 웃어본 적이, 오로지 내 감정에만 충실했던 적이 있었을까. 옛날부터 웃을 때 얼굴을 막 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렇게나 얼굴을 망가뜨리며 마음껏 웃는 내 얼굴은 못 생겼지만,
그래서 나는 서핑할 때 가장 예쁘다.
긴 팔 래쉬가드와 비키니
발리 바다에서의 몇 달은 자존감을 높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바다는 정직하다. 화장도 소용없고, 머리 손질도 필요 없다. 심지어 어떤 옷을 입어도 체형을 커버하기 보다는 그대로 드러나도록 만든다. 처음에는 이런 바다가 두려웠다. 화장으로, 옷으로 나의 단점을 꽁꽁 감추는 것이 불가능해졌다는 사실이 말이다. 처음 꽤 오랜 시간 동안은 긴 팔 래쉬가드와 워터레깅스에 반바지까지 입어 몸을 꽁꽁 감추고 서핑을 했다. 소용 없는 것을 알면서도 화장을 하고 바다에 들어가보기도 했고, 며칠 동안 지속되는 눈썹과 입술 타투 펜을 사서 바르기도 했다.
근데 시간이 지나면서, 바다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굴이 어떻든, 몸매가 어떻든 자기 자신을 마음껏 드러내는 사람들을 말이다. 뱃살이 이만큼 튀어나와 있든, 겨드랑이에 군살이 있든, 다리가 짧든 굵든 예쁜 비키니를 입고 바다를 즐기는 사람들을 말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연스러웠다. 그냥 그들 그 자체였다. 누군가가 그들을 이상하게 쳐다보지도 않았고, 평가하지도 않았다.
점점 남들 시선을 신경 쓰며 이렇게 나를 꽁꽁 숨길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좋든 싫든 이게 난데 말이다. 그 이후, 하나씩 옷을 벗어갔다. 처음에는 워터레깅스를, 반바지를, 그리고 래쉬가드를. 사실 볼륨 없는 몸매와 군살들이 완전히 신경 쓰이지 않는다고 하면 아직은 거짓말이지만, 콤플렉스를 감추고 있던 옷들을 하나하나 벗어 던지는 건 나에게 큰 변화다.
비키니는 나에게 단순한 노출이나,
누군가에게 매력을 어필하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자존감을 회복하는 수단이다.
물 속의 시계열
큰 파도에 휘말리는 건 고통스럽다. 파도 갈고리에 발끝을 걸려 몸뚱아리가 바다 저 깊은 곳으로 대차게 내동댕이 쳐질 것이라는 것을 직감하는 그 순간, 목구멍으로 조그맣게 욕을 삼키고는 침착할 준비를 한다. 이런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침착해지는 것밖에 없다.
사실 숨을 쉬지 못하는 순간은 아주 잠깐이다. 한 10초는 되려나. 하지만 파도 속 시간의 시계열은 잔잔한 수영장에서 잠수 대결을 할 때와는 다르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세상에서 눈을 뜨면 보글거리는 기포가 정신없이 시야를 가린다. 마치 그 공기방울들이 폐포 줄기줄기마다 깊숙이 끼어 안그래도 빠듯한 숨의 통로를 막아버릴 것만 같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몸은 뻣뻣이 굳어 쉬이 발버둥을 칠 수도 없다.
물 밑에서의 시간 셈법을 잘 몰랐을 때는 온 근육에 힘을 주고 어떻게든 상승하려고 열심이었다. 하지만 애를 쓸수록 시간이 흐르는 속도는 느려져만 간다는걸, 그랬다가 남는 건 다리의 쥐밖에 없다는 걸 이제는 안다. 그저 떠다니는 미역이 된 듯 물결에 몸을 맡기면 숨을 옥죄었던 기포의 스침이 보드랍게 느껴지기까지도 한다.
그러다보면 수심이 어느정도인지도 모를 모래바닥에 발을 찧을 때도 있다. 분명 쨍쨍한 해가 나서 따가운 햇살이 살갗을 바짝바짝 태우던 날이었음에도 빛은 그 속까지 들지 않는다. 숨도 못 쉬게 가득한 물 분자와 부유하는 모래 알갱이를 지나며 빛줄기들이 작은 파장으로 바스스 퍼져버린 탓이다. 옅은 어둠이 주는 위압감은 생각보다 크게 나를 덮쳐온다. 수면이 쉽사리 가까워지지 않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 때는 더더욱. 그래도 디딜 곳이 있다는 건 큰 위안이다. 힘차게 발을 굴러 몸을 띄우고 나면 마음 한켠에 평화가 찾아온다.
그 작은 평화가 환희로 번지는 것도 순간이다. 물결의 찰랑임을 뚫고 새어드는 빛줄기는 그렇게 찬란할 수가 없다. 인어공주가 물 밖의 왕자에게 한눈에 반한 그 순간, 새어드는 빛의 역할이 3할은 됐을 거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보드 위에 다시 몸을 올리면 언제 그랬냐는 듯 햇살이 내리쬔다. 귀가 꽉 막힌 듯 아스라이 전해졌던 파도소리, 사람들의 들뜬 말소리, 웃음소리도 안경을 쓴 마냥 선명해진다. 이렇게 정상감각을 되찾는 순간은 내가 잠시 꿈을 꾸듯 이세계에 다녀왔나싶은 감상마저 불러일으킨다.
물론 올라오자마자 큰 파도에 처맞고 다시 바닥과 조우하는 수도 있다. 하지만 끝끝내 기어올라와 파도 위를 누비는 순간 그간의 고생은 물살에 바스러진다. 아니, 오히려 발버둥이 있었기에 마침내 영글은 단 몇초의 라이딩이 더 꿀맛같다. 그 짜릿한 감각이 당최 지워지지가 않아서 이렇게 나는 또 바다로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