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하나 특별할 게 없는
때는 바야흐로 20살. 원하는 대학에 붙어 집안의 독려와 후배들의 부러움을 사며 열심히 과 생활을 하던 찰나. 술도 먹고, 연애도 하고, 서울 구경도 다니고... 스스로를 구속하며 열심히 공부했던 고등학생 시절에 대한 해방감과 보상으로 자유로운 삶을 즐기던 어느날, 처음으로 남자친구의 절친들과 만나게 되었다.
시작은 첫 만남에 흔히 하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어떻게 만나게 되었냐, 어디가 좋냐, 잘 어울린다… 시댁에 인사라도 간 듯 얼어있던 나도 긴장을 풀고 생각보다 즐겁게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그럴 거라고 생각도 못했던 질문에 입이 턱 막히고 말았다.
넌 뭘 좋아해?
시사에 대한 견해를 묻는다거나 지식을 테스트하는 어려운 질문을 한 것도 아닌데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머릿속에 생각나는 거라곤 복숭아… 매운 음식… 그리곤 또다시 생각. '하하 이런 걸 물은 게 아닐 텐데…'
고등학교 때 한 거라곤 공부와 입시를 위한 활동이 전부였다. 야자 한 번 짼 적이 없었고, 방송부장이니 동아리 회장이니 학교에서 뭐든 열심히 하다 보니 선생님들은 며느리 감이라며 예뻐해주시기까지 했다. 근데 그래서일까, 대학이라는 결과 말고는 나의 삶을 설명할 무언가가 아무것도 없었다. 웃기고 비참한 건 3년을 모두 바쳐 얻어낸 그 결과조차 그들보다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것이다. 최상위권의 성적 외에도 영어, 제2외국어 실력을 가진 것은 물론 드럼, 보컬로 밴드 공연도 하고, 영화, 애니메이션도 즐겨보았던 그들보다 말이다.
그들은 아마 공감대를 형성하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곰곰이 생각만 하고 있으니 영화, 애니메이션, 음악 등 취향을 물어왔지만 끝끝내 난 이렇다할 대답을 하지 못 했다. 그랬더니 묻더라. 그럼 지금까지 뭘 하면서 살았냐고. 악의가 없이 농담으로 던진 질문인 줄은 알았지만,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그들이 그렇게 물었기 때문이 아니라, 정말 스스로도 답을 찾을 수가 없어서. 나름 아주 열심히 살았다고 생각했는데, 이뤄낸 것들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뭐 하나 특별할 게 없는'.
그 당시의 나는 이렇게밖에 수식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날 이후, 나를 찾는 여정이 시작되었다.
엄마, 나 서핑해보고 싶어
처음 서핑을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날은 아마 영화 ‘언더워터’를 본 날이었던 것 같다. 이 이야기를 하면 다들 의아하게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언더워터는 서핑을 하던 주인공이 상어의 공격을 받는 내용이기 때문이다.
나는 좀 특이하게 영화의 내용이나 연출보다 영화를 볼 당시의 감정이나 분위기 등 부수적인 요소를 더 많이 기억하는 편이다. 예를 들면 고등학교 자습 시간에 다 같이 좀비 영화를 봤을 때, 언제 어디서 좀비가 튀어나올지 몰라 친구들과 손 꼭 붙잡고 집중했던, 좀비가 놀래 킬 때마다 함께 꺅꺅 소리를 질렀던 상황, 그때의 스릴, 함께 해서 신나는 감정 따위를 말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좋아하는 영화가 뭐냐고 물으면 ‘월드워 Z’라고 대답하는데 대게 이해를 못하곤 한다.
하여튼 그래서인지 언더워터가 나에게 준 서핑에 대한 첫인상은 나쁘지 않았다. 주인공은 멋있었고 상어가 위협하는 장면의 스릴은 오히려 짜릿함이라는 순간의 느낌으로 남았다. “넌 그 영화를 보고도 서핑해보고 싶다는 말이 나오냐!” 하며 어이없게 나를 바라보던 엄마의 눈빛이 아직도 기억이 나지만, 뭐 어쩔 수 있겠는가, 재미있어 보이는걸. 영화를 본 이후 얼마 동안은 서핑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학교, 과제, 인간관계… 많은 것들에 치여 하루하루가 빠르게 지나갔다. 그러다 잠시 숨 돌릴 틈이 생기자, 그냥 문득 생각이 나더라. 그래서 수영도 못하는 주제에 그 넓은 바다로 무작정 뛰어들어갔다.
첫 만남
처음 서핑을 했던 그 짧은 며칠은 ‘황홀했다’는 표현이 어울리겠다. 처음으로 보드 위에 두 발로 섰던 순간은 너무나도 짜릿했고, 균형을 잃어 파도에 몸을 던지는 순간까지도 즐거웠다. 보드 위의 햇살, 바람, 파도 모든 것이 완벽했고, 밤바다의 불빛, 웃음소리, 몽롱함은 너무나도 꿈같았다. 나는 행복한 감정을 찰나의 순간으로 저장하곤 하는데, 이 기억은 마치 사진 몇 장 같으면서도, 슬로모션으로 찍은 영상처럼 흐릿하고 느리게 움직이며,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는 어떤 벅찬 것을 담고 있다.
이 속에 스쳐 지나간 인연들도 소중했다. 여자, 남자, 어른, 아이, 초보, 실력자… 파도를 기다리는 동안 성별, 나이, 실력 모두 각기 다른 정말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다. 아마 그들과 나는 서로를 모르고 또 모를 것이기에 남은 건 이렇게 정체 모를 감정이지만, 죽기 직전 회상하는 내 삶의 한 구석에서 나는 그들을, 또 그 감정을 또렷하게 볼 수 있을 것 같다.
음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은 그냥 그만큼이나 행복하더라는 것.
서핑이 그렇게 좋아?
서핑을 하면서 가장 행복한 때는 보드 위에서 해질녘 바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그 황홀함을 고스란히 느끼는 순간이다. 분홍,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 그런 하늘에 물든 바다, 짠 내가 살짝 섞인 보드라운 바닷바람과 보드 아래를 훑어 지나가는 파도. 그리고 그 속에 깊숙이 녹아든 나와, 함께 녹아들어 있는 이름도 모르는 사람들.
기억이 아주 살짝 흐릿해진 지금, 처음 그 상황을 접했던 때를 떠올리면 진부한 표현이지만 마치 꿈이라도 꾼 것 같다. 그래서 한번 바다에 들어가면 해가 질 때까지 꽤 오랜 시간동안 나오지 않았다. 사실 체력은 이미 예전에 바닥나서 뭍으로 패들링해 나갈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는데도 말이다. 평소에는 서핑을 자주 못하니 바다를 떠나고 싶지 않아서이기도 했지만 그 기분 좋은 몇 분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처음 강습을 해줬던 코치님은 매번 낮에 바다로 들어가 해가 질 때 쯤에야 샵으로 돌아오는 나를 보고서 정말 열심히 한다고 체력 좋다고 칭찬해줬지만, 바다에서 나가기 싫어 그저 둥둥 떠다닌 시간이 더 많았다는 건 비밀이다.
사실 아직 하루에 파도 몇개 못 잡아타는 왕초보라 파도를 탈 때의 짜릿함보다 이런 순간이 더 행복한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근력도, 체력도 부족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실력이 잘 늘지 않는 나다. 서핑을 계속 하면서 언젠가 더 잘 타고 싶은 욕심이 커지고 뜻대로 몸이 움직여주지 않아 좌절하는 순간이 오더라도, 매일의 해질녘과 이 기분 좋은 바다는 변하지 않을 것 같아서 말이다.
행복할 준비, 준비, 또 준비
바다와 멀어져 지내는 일상은 좀 많이 바빴고, 많이 힘들었다. 해도 해도 끝나지 않는 과제, 팀플, 회의… 뭘 위해 내가 이러고 있나 하는 회의감이 들었다.
고등학생 때 역시 원하는 대학에 가려고 밤낮없이 공부했다. 그때는 대학만 가면 내 인생이 조금은 더 행복해질 거라 믿었고, 끝내는 원하는 목표를 이루긴 했다. 음, 근데 그래서 좀 행복해졌냐고 묻는다면, 솔직히 잘 모르겠다. 왜냐면 나는 아직도 행복할 준비 중이기 때문에. 취업해서 돈 잘 벌면 조금 더 행복하겠지 하면서 말이다. 항상 당장의 행복은 조금 미뤄두는 거다. 미루고 미루고 또 미뤄도 언젠가는 그 행복을 고스란히 손에 담을 날이 올 거라 믿으면서. 눈 앞의 행복을 잡고 싶은 생각을 떨칠 수 없어 괴로웠다. 내 행복은 어디까지 미뤄져 있을까, 행복하고 싶어 행복을 미루는 내 모습이 모순적인 것 아닌가 하면서 말이다. 그렇게 나는 어찌할 바를 모르고 고민만 하다 점점 지쳐갔다.
이런 날들 속 문득 겁이 났다. 정말 어렵게 하고 싶은 것을 찾았는데 이렇게 일 년에 단 몇 번 바다에 나가다 자연스레 멀어지는 건 아닐까. 그래서 더 서핑에 한번 미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리곤 결심했다. 내 행복을 좀 당겨와 보자고. 대학을 졸업하기 전, 이번 기회가 꽤 오랜 시간 한 가지에 몰두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라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다. 발리에서 4개월, 서핑에 한번 미쳐보자고.
어이, 김 발리!
동아리 친구들이 나를 부르는 별명이다. 처음에는 나 혼자 어떤 결심을 간직하는 것보다 남들에게 떠벌리고 다니면 어쨌든 성공할 거라는 생각에 발리로 서핑하러 갈 거라는 이야기를 많이 하고 다녔다. 민망하지만 블로그에도 그 결심을 남겼고 말이다. 그리고 드디어 휴학. 앞으로 몇 달간 동아리를 쉰다는 이야기에 다들 물어왔다. “휴학하고 뭘 할 건데?” “그렇게 오래 서핑'만’ 하러 간다고?” “서핑이 그렇게 좋아?” 그러면 나는 이야기했다. 짧은 며칠간 서핑을 하며 느꼈던 그 기분, 나에게 많이 행복했던 순간들을. 하여튼, 이렇게 물어보는 사람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내 결심에 대해 학교며, 동아리 친구들을 통틀어 한 백만번은 이야기한 것 같다. 그렇게 여행을 떠나기 직전, 나는 김 발리로 불리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