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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정영 Jun 05. 2019

물 속의 감정들

바다로부터의 치유


물 속의 감정들


 서핑할 때의 나는 오로지 그 순간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 단 1초라도 잡고 있던 집중의 끈을 놓으면 파도를 놓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겠지. 그래서인지 어떤 우울이나 방황, 증오가 나를 지배하더라도 바다에 있는 동안에는 싹 잊어버리게 된다. 

 

 바깥에선 온통 얼룩덜룩했던 내 머릿속은, 바다로 뛰어드는 순간 손 끝을 지나며 부서지는 파도만큼 하얗게, 파도 하나 하나를 넘어갈 때마다 푸른 물감을 풀어놓은 욕조에 물을 콸콸 틀어놓은 것처럼 점점 투명하게 바뀌어간다. 너무 맑아서 그 속에 무엇이 들었는지 명확하게 보일 즈음까지. 그럼 그때부터 나는 투명한 머릿속에 유일하게 보이는 것을 쫓아갈 수 있게 된다. 그것은 아마 오직 파도와 파도를 타는 사람들, 그리고 순간순간의 감정 정도가 전부일 테다. 


 그래서인지 바다에서는 자주 어린아이가 되기도 한다. 나이를 스물 세 개나 먹고 몰래 물 뿌리고 모른 척 하기, 장난감을 놓고 경쟁하는 아기들 마냥 좋은 파도가 오면 “아니야 이거 노 굿 가지맠ㅋㅋ” “돈 패들 정영! I go!!” 외치곤 깔깔거리며 있는 힘껏 패들하기, 그러다 둘 다 파도를 놓치면 서로 바보라고 놀리기. 이렇게나 모든 것에서 벗어나 호탕하게 웃어본 적이, 오로지 내 감정에만 충실했던 적이 있었을까. 옛날부터 웃을 때 얼굴을 막 쓴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이렇게나 얼굴을 망가뜨리며 마음껏 웃는 내 얼굴은 못 생겼지만,




그래서 나는 서핑할 때 가장 예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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