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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리 Jun 02. 2022

도시가 그립지 않다면 그건 거짓말

가끔 그때의 소란스러움이 그립다.



얼마 전에 밤에 편의점에 갈 일이 있어 차를 타고 읍내를 나갔다.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는데 이미 읍내에는 불빛이 거의 없었다. 9시가 넘으면 치킨집도 모두 닫는다. 그나마 요 몇 년 생긴 편의점 몇 개가 있어 불빛이 보였다.


생각해 보니 이 생활에 이미 너무 익숙해져서 9시가 넘는 시간에 뭘 시킨다거나 사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았었다. 너무 자연스럽게 익숙해져서 불편한지도 모르게 지내다가 가끔 이렇게 새삼스럽게 느껴질 때가 있다. 그럼 낮이고 밤이고 없는 게 없던 도시가 생각난다.



문경에 내려온 지도 2년이 지났고 3년 차가 되어 간다. 해마다 계절이 돌아왔을 때 어떤 모습으로 변하는지 이제 시골의 삶에 조금 익숙 해 졌다.  그렇게 세 번째 여름을 맞이하고 있다.


문경은 언제나 조용하고, 한가롭다. 그게 참 여유롭고 마음이 편하다.



그런데 가끔 소란스러움이 그리울 때가 있다.  


강남의 북적거리는 사람들이, 그 분주함과 복잡함이 그립다. 그럼 대학시절을 같이 보낸 친구에게 연락해서 이야기를 나눈다. 강남에서 술을 먹던 일들, 홍대 거리를 돌아다니던 그 시절을. 사람으로 길이 꽉 차서 그 사이를 끼어서 지나다니던 그 이야기들을 하며 ‘그립다’는 표현을 한다.



교통이 좋은 동네에 살았던 탓에 광역버스를 타면 강남은 40분 정도면 나갈 수 있었다. (교통편이 아주 쾌적한 경기도인 이었다.) 동네엔 친구도 없었고, 여러 곳에 흩어져 사는 친구들을 만나기엔 강남만큼 좋은 곳은 없었다. 20대의 우리들은 강남에서 만나서 시간을 보냈다. 만나서 밥을 먹고, 인기가 있는 술집과 카페를 가고 그렇게 여느 20대들처럼 소란스러운 시절을 보냈다.


불안했지만 그 시절은 그래도 마냥 즐거웠다. 나는 다시 대학을 가겠다고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선릉역에 있는 미술학원을 다니며 그림을 그렸다. 물감이 잔뜩 묻은 앞치마를 입고 학원 쉬는 시간마다 수많은 직장인들과 사람들 사이를 돌아다녔다. 결국 입시는 실패했고 눈물로 끝났지만 인생을 살면서 제일 열심히 살았던 시간이었다.




얼마 전에 전화로만 이야기하던 그 시절처럼 소위 '핫'하다는 소란스러운 동네에 가기로 약속을 했다. 악속 만으로도 몇 주 전부터 신이 났다. 주변 사람들 한테 "나 서울 가서 술 먹을 거야!"라고 이야기했고, 남편한테도 서울에 가서 놀고 친구 집에서 잘 거라고 미리 이야기해 두었다. 주말 책방을 조금 일찍 마무리하고 버스를 타고 서울로 향했다. 오랜만에 설레는 기분으로 서울에 도착했다.   



먼저 도착한 친구에게 문자가 왔다.

"야, 사람이 너무 많아. "



지하철에 내릴 때부터 심상치 않았는데,  주말의 서울은 정말 엄청났다. 사람이 너무 많아 무서울 지경이었다.  가득, 골목골목 어디서 그렇게 많은 사람이 나왔는지 우스개 소리로 친구에게 " 문경에서   동안  사람들 오늘 이미  본거 같아"라고 이야기했다. 적당한 가서 자리를 잡고 저녁  반주를 했는데 도저히 시끄럽고 소란스러워서 밥이 어디로 넘어가는지 정신이 없었다.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서둘러 밥을 먹고 사람이 많은 핫한 동네를 살짝 돌아본  친구 집으로 가서 편하게 술을 한잔  했다.



생각해 보니 문경을 내려오기 전에도 이미 사람이 많은 곳은 피해 다닌 지 오래였다.  시골에 살아서 마냥 도시가 그리운 거라고 착각했다. 무언가를 잊었던 것 같다.



도시가 아니라 소란스럽게 지냈던 그 시절이 그리웠던 건 아닐까 생각하며 친구와 그 시절을 한참 이야기하며 그날 밤을 보냈고, 다음에는 좀 더 조용한 곳으로 가자고 이야기하며 큰 소리로 웃었다.



그렇게 소란스러운 도시의 밤을 보내고, 다시 조용한 문경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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