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보리 Sep 09. 2022

헌 트럭을 주는 시아버지의 마음

헌 차인데, 새 차 같은 트럭

시아버지는 정말 '경상도 남자'같은 분이다. 말수도 적으시고, 뭔가 감정 표현이 많지도 않으시다. 우리 엄마 아빠에 비해 연세도 많으신 편이어서 약간 할아버지같이 느껴진다.


문경에 내려오기 전에 종종 명절이나 일이 있어 문경에 내려가면 "왔냐", "조심해서 잘 가라"가 전부일만큼 말수가 적으셨다. 게다가 아들 셋만 있는 시댁은 서로 말이 많이 오가지도 않았다. 딸이 두 명이고, 막내아들도 딸처럼 종알거리는 우리 집과는 분위기가 달라서 처음엔 그게 좀 이상해 보이기도 했고, 그 분위기가 참 어색했는데 이제 적응이 되어 그 나름대로 편안하게 느껴진다.


시어머니도, 시아버지도 따로 전화를 잘하지 않으신다. 결혼을 하고도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실 법도 한데, 찾아오신다거나 하지 않으셨다. 오산에 남편의 외삼촌이 계셨는데 우리가 수원에 살 때에도 들르실 법도 한데 연락도 안 하시고 조용히 오셨다 가셨다. "그냥 너희 둘 말 잘 살면 되지"가 항상 하시는 말씀이었다.


문경에 내려오고 나서도  부모님 모두  해에 한번 집에 오시고는 여태 따로 찾아오시거나 하신 적이 거의 없다. 오히려 엄마나 언니네 식구들이 훨씬 자주 문경에 내려왔었다. 사실 그게 며느리로서 편하기도 했지만 가끔은  전화도 잘 안 하시고 집에  오시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아니면 그냥 팔자 좋은 며느리의 복에 겨운 생각인가 싶기도 했다.


런데 문경에 내려왔더니 조금 많이 하신다. 시댁에  때마다 "요샌 -   하고 있냐?"라고 물어보셨다. 그럼 책방은 어떤지, 농사 준비는 얼마큼 됐는지, 남편은 종종 어떤 일들을 하는지 이야기해 드리기도 하고 근황을 이야기해 드렸다.


막내라 그런가 내 나이가 마흔을 코앞에 두고 있는데도 마냥 어린애들 같이 어떻게 먹고 사는지 걱정하시는 것 같았다.


봄에 사과밭을 사려고 열심히 돌아다녔는데, 도대체 적당한 밭이라고는 보이지가 않았다. 가격이 좀 저렴하면 너무 비탈이거나 밭 상태가 엉망이었고, 사과밭의 상태가 괜찮으면 터무니없이 비쌌다. 그러다가 좀 마음에 드는 밭이 나왔는데 좋은 건지 모르겠어서 아버님께 밭을 좀 봐달라고 부탁드렸고, 같이 사과밭에 간 아버님은 가타부타 없이 "이 밭은 못써"이렇게 얘기하셨다. 그래서 깔끔하게 포기했다.


돌아오는 길에 "저 밭은 3억이고요. 저 밭은 평당 30만 원 달라고 했어요"이렇게 얘기하면 아버님은 "너무 비싸. 그렇게 팔면 평생 안 팔리고 지땅 하는 거야"이렇게 말씀하셨다. 딱 필요한 말만 짧게 하시고는 더 이상 말하지 않으셨다.


예전보다는 말씀이 많아지셨지만 여전히 필요한 만큼만 말씀하셨다. 막내며느리 인 데다가 딸이 없는 집이라 내가 좀 더 어색하셨을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아버님은 명절에 음식을 만들고 나면  수고했다고 말씀하시면서 용돈을 주시고, 설날에는 조카들이랑 같이 막내며느리 세뱃돈도  챙겨주신다.





시골에는 어느 집이나 트럭 한대쯤은 있는데 아직 우리는 트럭을 살 정도는 되지 않아서 그런대로 버티고 있었다. 아버님이 새 트럭을 사신다는 말은 들었는데, 얼마 지나 아버님이 남편한테 전화를 하셨다.


"트럭 고쳐놨다. 가져가라"


오래 탄 차라 여기저기 손볼 곳들이 있어 수리를 해서 주신다고 하셨는데 수리가 끝난 것 같았다. 차를 가지러 시댁으로 남편과 함께 차를 타고 갔더니 헌 차인데 새 차가 있었다. 낡고 녹슨 차를 그냥 주시기 뭐하셨는지 수리하시면서 도색까지 해서 가져다 놓으셨다. 겉만 봐서는 오래되지 않은 차 같이 보였다.


수리에 도색까지 하느라 비용도 꽤 나왔을 법했다. 생각해 주신 마음이 너무 감사했다.


나는 타고 간 승용차를 운전하고 남편은 트럭을 타고 집으로 왔다. 차 안을 깨끗하게 닦고, 청소했다. 마당에 트럭을 세워놓고 거실에 앉아 창밖의 트럭을 계속 쳐다봤다. 이제 트럭이 생겨서 그런지 마음이 든든했다. 이제 큰 짐도, 흙이 묻은 짐들도, 농기계를 빌릴 때에도 차 때문에 우왕좌왕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더니 무적이 된 것 같았다.



헌 차인데 새 차가 된 트럭을 보고 있자니 마음이 좀 이상했다. 나는 아직 부모가 되지 않아서 낡은 트럭을 주시는 시아버지의 마음이 어떠셨을까 짐작은 잘 되지 않았다. 그렇지만 오래된 낡은 트럭은 다시 주인을 만나 새 차가 되었으니, 조심히 잘 타야겠다고, 저 트럭으로 많은 것들을 싣고 많은 것들을 만들어 내야겠다고 생각했다.



새 트럭. 마음이 든든하다.





이전 12화 3달에 한번 시어머니와 하는 서울여행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