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저지르고 본다.
가물다. 비가 안 온 지 너무 오래된 느낌이다.
콩을 심어보겠다고 호기롭게 밭을 임대했는데, 비가 안 와서 큰일이다. 이렇게 가물면 콩을 심어도 싹도 안 날 것 같다.
갑자기 콩이라니, 사실 얼떨결에 덜컥 신청한 건 맞다. 나는 사과농사를 지어야 하는데 지금 아주 작은 땅을 임대한 상태고, 사과농사를 지을 내 땅을 사야 하는데 도저히 적당한 땅이 없다. 가진돈도 없으니 청년 농부에게 해 주는 대출을 최대로 받는다고 해도 살 수 있는 땅의 크기가 작았다. 그런데 문제는 대출을 받아서 산다고 해도 마땅한 땅이 없다는 거다.
그런데다 땅도 물건이라 내 맘에 드는 걸 찾기가 너무 어려웠다. 땅이 마음에 들면 가격이 너무 비쌌고, 가격이 괜찮아서 가서 보면 땅이 엉망이었다. 한 번은 사과밭이 나왔다고 해서 보러 갔더니 비탈도 그런 비탈이 없었다. 트럭에 사과를 싣고 내려오다가 쏟게 생긴 위치에 사과밭이 있었다. 그런데도 부동산 사장님은 적당한 가격이라고, (3억!) 얼른 사야 된다고 말씀하셨다. 억 단위의 돈을 그렇게 쉽게 쓸 수는 없었다. 게다가 쉽게 사고팔 수 있는 게 아니니 더 신중해야 했다.
그러던 찰나에 농지은행에 밭이 나왔다. 콩은 손이 좀 덜 간다기에 덜컥 임대신청을 넣었다. 우선 사과밭은 천천히 구하기로 하고, 콩이라도 키워보자 싶었다. 며칠 뒤 승인 연락이 왔고 계약을 해서 1000평 정도의 땅을 5년 동안은 임대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콩과 마늘이나, 보리 같은 작물로 이모작을 하겠다고 호기로운 계획도 세워놓았다. 주소를 찾아가 보니 밭도 직사각형으로 깔끔하게 되어있었다. 임대지만 내 땅이라니 조금 신이 났다.
(농지은행 : 농어촌 공사에서 시행하는 사업으로. 농지은행에서 땅을 임대할 수 있어요)
남편도 나도 콩을 키워본 적도 없거니와 우린 가지고 있는 농기계 같은 것들도 없었다. 콩은 콩 콤바인이라는 걸로 수확하면 된다고 했고, 그건 농기계 임대사업소에 가면 해 준다기에 어떻게 되지 싶었다. 심지도 않았는데 수확부터 생각하다니 지금 생각해도 용감하다 싶다.
우선 음료수를 한 상자 사서 콩밭이 있는 동네 이장님부터 찾아뵈었다. 마을에 나와계신 할머님들이 이장님 댁을 알려주셨다. 이장님을 만나 인사를 드리고 혹시 밭을 갈아주실 분이 계신지 여쭤보았다.
"콩 농사는 지어봤어"
"아니요"
"허허 - 그래도 대단하네. 그래 도와줄 테니 한번 해봐"라고 말씀하시며 인상 좋으신 이상님이 호탕하게 웃으셨다.
밭은 이장님이 갈아주신다고 하셨는데, 비닐을 씌워야 하는 건지, 고랑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콩 씨앗을 신청하라고 하길래 농업인상담소에 가서 '대원'이라고 하는 노란 콩을 신청했다. 콩도 소독한 거랑 안 한 게 있다는데 뭐가 뭔지 몰라서 우선 소독을 안 한 걸로 신청했다. .
"근데 언니 거기 콩밭에 물 댈 곳은 있어요?"
"몰라요. 콩은 물 별로 안 줘도 된댔는데."
당당하게 이야기했다.
그동안 내가 보아온 콩들은 논두렁 같은 데나, 밭과 차길 사이의 좁은 흙에서도 혼자서 잘 자라는 것만 같았다. 콩 교육을 들으니 심고 나서는 제법 물을 줘야 한다고 했다. 그렇지 콩도 식물인데 물 없이 살다니 그럴 리가 없었다. 콩밭 근처에 개울 같은 건 없었다. 그럼 심고 나서 비라도 좀 내려야 콩이 싹을 틔울 텐데 이렇게 가물다면 큰일이다. 그냥 땅이 나왔다는 것만 보고 대책 없이 덜컥 임대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아마도 뭔가를 많이 알았다면 시작하지 못했을 일들이다. 어쩌면 몰라서 용감했던게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이러나저러나 하늘의 뜻에 맡겨야 한다. 콩을 심고 비가 오기를 매일 바라야 한다. 비가 안 와서 이렇게 걱정하는 걸 보니 농부가 맞긴 한 것 같은데, 어디가 좀 부족한 것 같아서 웃음이 난다.
모르면 용감하다더니, 좀 너무 용감했던 것 같다.
그래도 일단 저지른 일은 부딪혀서 해 보는 걸로 남편과는 잘 합의되었으니 그럼 됐다. 우선 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