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못 알아보는 사람이 장사를 할 때
나는 사람을 잘 못 알아본다.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그래서 이전에 어린이집에서 일을 할 때에는 새 학기마다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다. 애들은 그래도 하루 종일 같이 지내니까 이 삼일이면 얼굴을 금방 외우는데, 부모님의 얼굴이 잘 외워지지 않았다.
대부분을 직장어린이집에서 근무한 탓에 등 하원을 학부모님들이 직접 했는데, 도대체 누구 부모님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 좀 뜸을 들여서 부모님 입에서 아이 이름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눈치껏 아이들 하원 시키거나, 메이트 선생님에게 "우리 반 같은데, 누구 어머님이시죠?"라고 재빠르게 속삭여서 묻곤 했다.
게다가 길을 걸을 때 앞에서 오는 사람의 얼굴을 잘 쳐다보지 않아서 길에서 가족을 마주쳐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아는 사람을 못 알아보는 일도 잦았다. 그래서 모르는 척한다는 오해를 종종 받기도 했다.
이런 사람이 장사를 하게 되니까 손님을 못 알아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게다가 코로나 덕에 손님들이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안 그래도 사람을 잘 구분 못하는 나 같은 사람은 얼굴을 알아보기가 퀴즈를 맞히는 것처럼 더 어려운 일이 되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장사가 안되거나, 혹은 책이 상하거나, 혹은 다른 문제들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하거나 걱정을 했지만 손님을 못 알아보는 게 장사의 어려움이 될 거라는 건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손님이 사장님을 기억하는 것과, 사장이 손님을 기억하는 것은 다른 난이도가 아닐까? 사장님이 손님을 기억하는 게 조금 더 어려운 일인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여러 번 책방을 찾아주는 손님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니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책을 좋아해서 인지 조용한 손님이 많은데, 책을 열심히 추천했을 때 "저번에 추천해 주셔서 사갔어요"라고 수줍게 이야기하시는 분도 있었고, 올 때마다 아기의 나이를 물은 적도 있었다. 물론 올 때마다 아이는 자라고 있었으니까 개월 수가 계속 변하고 있었고, 그 덕에 처음 오신 손님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나서야 '아! 오셨던 분이다'하고 깨닫게 됐다.
그럼 "죄송해요. 제가 사람을 잘 못 알아봐서요"라고 애써 변명 같은 말을 해야 했다. 아무리 사실이라도 내가 손님인데 매번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조금 서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길은 한 번만 가도 잊는 일이 거의 없다. 기억력도 좋은 편 이어서 오래된 일들도 제법 잘 기억한다. 그런데 왜 사람 얼굴을 기억하는 일은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혹시 길을 잘 찾는 능력과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은 둘 다 가질 수 없는 거라서 한 개만 잘하게 됐다거나, 머릿속에서 사람을 알아보는 부분이 조금 덜 생겼거나, 혹시 무슨 연유가 있어 사람을 못 알아보게 된 건 아닐까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했던 날들도 있었다.
사장이 손님을 잘 못 알아봅니다.
라고 써 놓을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좀 부끄럽기도 뻔뻔하기도 한 것 같아 그건 접기로 했다. 그런 일이 종종 생기면 부끄러운 변명을 인스타에 올리거나, 지인들에게 털어놓았다.
마스크를 완전히 벗는 날이 온다면, 그동안 열심히 마스크 쓴 얼굴로 외워두었던 게 또 무용지물이 되고 안 그래도 사람을 못 알아보는 사장은 머리가 뒤죽박죽이 될게 분명한 일인데,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손님을 못 알아보는 사장님이라니 큰일이고 말고.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조금씩 늘지 않을까 하는 아주 작은 희망을 품고, 오늘도 손님을 맞이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