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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리 Jul 01. 2022

사람을 못 알아보는 사장님

사람을 못 알아보는 사람이 장사를 할 때

나는 사람을 잘 못 알아본다. 조금 심하다 싶을 정도로.


그래서 이전에 어린이집에서 일을 할 때에는 새 학기마다 전쟁 같은 시간을 보냈다. 애들은 그래도 하루 종일 같이 지내니까 이 삼일이면 얼굴을 금방 외우는데, 부모님의 얼굴이 잘 외워지지 않았다.


대부분을 직장어린이집에서 근무한 탓에 등 하원을 학부모님들이 직접 했는데, 도대체 누구 부모님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럼 좀 뜸을 들여서 부모님 입에서 아이 이름이 나오길 기다렸다가 눈치껏 아이들 하원 시키거나, 메이트 선생님에게 "우리 반 같은데, 누구 어머님이시죠?"라고 재빠르게 속삭여서 묻곤 했다.


게다가 길을 걸을 때 앞에서 오는 사람의 얼굴을 잘 쳐다보지 않아서 길에서 가족을 마주쳐도 잘 알아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니 아는 사람을 못 알아보는 일도 잦았다. 그래서 모르는 척한다는 오해를 종종 받기도 했다.


이런 사람이 장사를 하게 되니까 손님을  알아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게다가 코로나 덕에 손님들이 마스크를 끼고 있어서  그래도 사람을  구분 못하는  같은 사람은 얼굴을 알아보기가 퀴즈를 맞히는 것처럼  어려운 일이 되었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장사가 안되거나, 혹은 책이 상하거나, 혹은 다른 문제들은 어느 정도 예상을 하거나 걱정을 했지만 손님을 못 알아보는 게 장사의 어려움이 될 거라는 건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한 일이었다


손님이 사장님을 기억하는 것과, 사장이 손님을 기억하는 것은 다른 난이도가 아닐까? 사장님이 손님을 기억하는 게 조금 더 어려운 일인 건 분명하다.


그렇지만 여러 번 책방을 찾아주는 손님을 기억하지 못하게 되니까 너무 미안하고,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책을 좋아해서 인지 조용한 손님이 많은데, 책을 열심히 추천했을 때 "저번에 추천해 주셔서 사갔어요"라고 수줍게 이야기하시는 분도 있었고, 올 때마다 아기의 나이를 물은 적도 있었다. 물론 올 때마다 아이는 자라고 있었으니까 개월 수가 계속 변하고 있었고, 그 덕에 처음 오신 손님 같았다. 이런저런 이야기가 오가고 나서야 '아! 오셨던 분이다'하고 깨닫게 됐다.


그럼 "죄송해요. 제가 사람을 잘 못 알아봐서요"라고 애써 변명 같은 말을 해야 했다. 아무리 사실이라도 내가 손님인데 매번 이런 이야기를 듣는다면 조금 서운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왜 인지는 모르겠지만, 길은 한 번만 가도 잊는 일이 거의 없다. 기억력도 좋은 편 이어서 오래된 일들도 제법 잘 기억한다. 그런데 왜 사람 얼굴을 기억하는 일은 이렇게 어려운지 모르겠다. 혹시 길을 잘 찾는 능력과 사람을 알아보는 능력은 둘 다 가질 수 없는 거라서 한 개만 잘하게 됐다거나, 머릿속에서 사람을 알아보는 부분이 조금 덜 생겼거나, 혹시 무슨 연유가 있어 사람을 못 알아보게 된 건 아닐까 정말 진지하게 고민을 했던 날들도 있었다.


사장이 손님을 잘 못 알아봅니다.


라고 써 놓을까 생각도 해봤다. 하지만 좀 부끄럽기도 뻔뻔하기도 한 것 같아 그건 접기로 했다. 그런 일이 종종 생기면 부끄러운 변명을 인스타에 올리거나, 지인들에게 털어놓았다.


마스크를 완전히 벗는 날이 온다면, 그동안 열심히 마스크 쓴 얼굴로 외워두었던 게 또 무용지물이 되고 안 그래도 사람을 못 알아보는 사장은 머리가 뒤죽박죽이 될게 분명한 일인데, 정말 큰일이 아닐 수 없다.


손님을 못 알아보는 사장님이라니 큰일이고 말고.


그렇지만 시간이 지나면 이것도 조금씩 늘지 않을까 하는 아주 작은 희망을 품고, 오늘도 손님을 맞이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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