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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보리 May 05. 2022

사장이지만 백수입니다

영명(0명)의 날

 “오늘은 손님이 좀 있었어?” 카톡이 왔다. “아니, 오늘도 영명(0명)의 날이야, 이제 퇴근해야지!” 퇴근할 시간 즈음이면 , 언니가 카톡으로 오늘 어땠는지 물어본다. 언니뿐만은 아니다. 다들 종종, 꽤 자주 손님이 많은지 물어보고 나의 대답은 역시나 “아니”였다. ‘영명(0명)의 날’이 계속 이어지고 있었다. 이게 서점인지 내 작업실인지 분간이 안되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한다. 그래도 나는 꿋꿋하게 서점을 운영하고 있고, 월요일과 화요일 휴일을 제외하고는 열두 시쯤 나와 여섯 시 즈음 퇴근하고 있다.

 

 문경, 시골의 작은 읍내에 책방을 열게   ‘우연이었다. 원래 그림책을 좋아하고, 그림책 서점 같은  했으면 좋겠다는 아주 막연한 생각을  적이 있었는데 일을 하고 나이가 들고, 당장 먹고 살아가는 일이 바빠지면서  생각은  기억 속에 어딘가에 잠시 묻혀 있었던  같다.


문경에도 농사를 지으며 살아가려 내려왔고, 작년은 쉬어가자고 남편과 상의한 터라 그냥   내내 백수로 지내는 중이었다. 한참 한량같이 산으로 들로 남편과 함께 시골생활을 만끽하고 있을  우연히 ‘청년 정착사업 안내하는 현수막을 봤고, 그게 마감날이었다. 계획서를 거창하게 써낼 시간조차 없었다. 뭐라도  보고 싶은 마음과 낯선 도시에서의 두려움이 같이 밀려왔다. 환경이 바뀌어서 신기하게도 ‘도전정신이라는  올라왔던 것일까? 인터넷에서 공고를 찾아 자세히 읽어보고, 모집 파트에 있던 ‘서점이라는 글씨를 보자마자 머릿속에 묻혀있던 ‘그림책 서점 튀어 올라왔다. 대충 써서 급하게 서류를 냈는데 연락이 왔다. 그래서 지금 여기 문경읍내에서 그림책 서점을 운영하고 있다.


 제대로 장사라는  해본 적도 없었을뿐더러 직장생활 말고는 이렇게 주도적으로 내가 무언가를   경험이 처음이었다. 오히려 서점을 준비하는 동안 고치고 만들고, 몸으로 때우는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그건  마음대로   있는 일이었으니까, 내가 하고 싶을  하고,  속도대로 나아가면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림책방을 열고 나서였다.  도시에 책방을 위한 대한 데이터 따위는  머릿속에 없었다. 우연히 하게  서점에 시장조사는 계획에 없었다. 서점이 없는 동네는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그제야 들었다. 서점을 이용할 만한 인구가 있긴  건지, 사람들이  시부터  시까지 활동하는 동네인지 그런 것들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은 그저 내가  동내에 시댁을  사람이었을 ,   수준의 것이었다. 자주 오는 여행지 정도를 바라보는 시선이었을까? 내가 사랑하는 제주도보다 문경을  모르는  같았다.



 잘되던 가게들도 줄줄이 폐업한다던 기사가 연일 나오던 시점에, 난 원래도 비 주류였던 ‘서점’을 시작했다.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다. ‘도전정신’을 빙자한 ‘무모함’이 아녔을까? 젊은이들도 애들도 없는 동네에 그림책만 파는 서점이라니 손님들도 신기해했다. 장사가 되냐고 묻기도 하고, 어떻게 하다 이런 걸 시작했냐고 질문도 많이 받았다. 커피를 팔면 좀 나을 것 같다거나, 다른 물건을 팔라거나, 그림책 말고 베스트셀러는 좀 가져다 두는 게 어떻겠냐는 등, 손님들은 나를 걱정해서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 주기도 했다. 서점 앞으로 매일 지나다니는 할머니들은 인사를 드리면 웃으면서 대답은 해 주시지만 왠지 모를 안쓰러움이 눈빛에 고스란히 담겨있었다.



 문경새재 말고는 알려진  없는  동네에 코로나 시국까지 더해지면서 외지인들이   없었고,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니 책방을 보러 문경까지  사람은 더더욱 없었다. 인건비는 고사하고, 손에 푼돈조차  쥐어 가는 일이 매달 정산을  때마다 반복되어 가고 있었다.


워낙 손님이 없는 탓에 사람들에게 ‘사장이지만 백수예요라고 말하고 다녔다. 그래도 핑계를 대기  좋은 구실이었다. 장사가  되는  어느 정도  ‘코로나때문이었다. 누가  되냐고 물어보면 ‘코로나 때문에 사람이 없어. 그리고 문경은 원래도 겨울에 사람이 없데라고 말하면 그만이었다.  운영의 미숙함과 나태함을 숨길  있는 좋은 핑곗거리였다. 매일 책을 주문하지 않아도 됐고, 처음에는 10시까지 했던 출근도 어느새 12시로 늦추었다. 때로는 퇴근시간보다 30 정도 조금 일찍 집에 가기도 했다. 그럼 약간의 죄책감과 함께 한편으로 신이 났다.


손님이 많지 않은 탓에, 일을 하면서 볼일을 언제든지   있었다.  쪽지   붙여놓고 은행을 가고, 커피 사러 근처 카페에 가서 수다도 떨다 오고, 장날은 읍내에 시장 구경도 갔다. 날이 좋으면 동네 산책도 다녔다. 손님이 없으니까 책도 읽고, 만들기도 하고, 근무시간에 내가 하고 싶은걸 마음껏   있었다. 어린이집을 다닐 때에는 상상도   일이었다. (버는 금액도 사실 상상도   일이었다) 그러니까 ‘사장이지만 백수 어느 정도 맞는 말이다.



 그렇지만 애송이 사장의 마음은 매주, 매일, 매 순간을 오르락내리락했다. 손님이 와서 해 주는 반가운 이야기를 들으면 서점의 가능성을 상상했다가, 이렇게 영명의 날이 반복될 때면 기분이 가라앉았다. 너무 손님 없는 날이 이어지니까 ‘내가 혹시 손님에게 무슨 실수를 해서 이 좁은 바닥에 안 좋은 소문이 났나?’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럴 때에는 근처 도시에서 작은 서점을 하고 있는 ‘동지’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서로 ‘사장님’이라 부르면서 그쪽은 좀 괜찮은지, 나만 이렇게 안 되는 건 아닌지, 애송이 사장들끼리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에 서로 안도하고, 위로를 하고, 또 공감하면서 그렇게 하루를 또 보내고 나면 기분이 좀 나아졌다.


 서점을 유지하기 위해 다른 일들을 시작해야 했다. 공간이 필요한 분에게 공간을 대여해 드리고 아주 적은 수입을 얻고, 일주일에 한 번 미술 수업을 해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또, 예전에 같이 일했던 선생님들이 아이들 수업에 쓸 교구를 만들어 달라고 하면 돈을 받고 최선을 다해 교구를 만들어 택배로 보내주기도 했다. 누가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냐고 물어보면 우선 긍정의 대답을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해야 했다. 지금까지 나의 전공과 경험과 능력치를 있는 대로 끌어올려서 살아내야 했다. 이미 문경까지 내려와서 시작한 일에 후퇴는 없었다. 무조건 밀고 나가야 했다.

 


 그래도 다행인 건 포기하고 싶은 마음은 들지 않는다는 것, 그리고 잘 버텨내고 있다는 것이었다. 사실 내가 잘 버텨내는지는 잘 몰랐다. 나는 조금은 게으르게, 또 매일 비슷하게 지내고 있었다. 시골의 겨울은 혹독하게 춥고 길었고, 코로나도 여전히 사그라들듯 하다 피어오르기를 반복하고, 그래서 나도 조금은 추운 겨울처럼 움츠러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잘 버티고 있다고, 견디는 힘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는 걸 보니 내가 잘 버티고 있나 보다. 그렇게 책방을 연지 벌써 6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책방 오픈 준비를 하고 있을 때 누군가 내게 말했었다. “책방을 운영하는 건 자발적 가난을 선택하는 거래요”라고, 뭐 틀린 말은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돈을 못 번다고 해서 당장 입에 풀칠을 못할 정도는 아니니 언젠간 나아지겠지 하는 마음이다.



 그럴듯한 핑계 덕에 살고 있지만, 더 이상 그 핑계가 통하지 않을 때가 와서 내 운영의 미숙함과 나태함이 원인이 되어 정말 손님이 없게 될까 두렵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책방에 나가 두시럭을 떨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그러다 손님을 맞이하고, 퇴근시간이 다가오면 간판 등에 불을 켜고, 문을 닫고, 집으로 돌아와 또 내일을 준비한다. 그렇게 매일을 견디어 내다보면  또 언젠가는 새로운 일들이 피어나겠지.  





 글은 개업한   개월이 지나지 않았을 작년 봄에  글입니다.  이후 가게 주인분이 나가라는 통보를 하셨고, 개업한    년이 되기 전에 근처로 이사를 해서 새로운 곳에서 책방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특별히 그때와 달라지지 않은 봄을 보내는 중입니다.



처음 얼떨결에 오픈한 아주 작고 아담한 책방
햇빛이 잘 드는 새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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